TV를 말하다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드라마 '친구'

朱雀 2009. 7. 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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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찬란한 유산>을 보고나면 채널을 MBC로 돌려 <친구>를 보고 있다. 시간대가 애매하게 겹쳐서 초반 부분을 놓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것까지 챙겨볼 정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킬킬댄다. 사실 내 또래엔 롤러장에서 논 기억이 조금 밖에 없다. 아마 나보다 몇 살 더 위에 분들에게 더욱 익숙한 광경일 듯 싶다. 지금보면 촌스럽기 이를데 없는 춤이고 패션이지만, 당시로선 최첨단이고 유행의 끝이었다.

<친구>는 촌스러운 드라마다. 세련된 <찬란한 유산>을 보고 바로 보는 탓일까? 더더욱 촌스러워 보인다. 그렇다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거나, 많이 부족하단 이야기는 아니다. <찬란한 유산>을 잘 만들어진 퓨전 한식이라면, <친구>는 소박한 밥상에 비견될 만 하다.

부산에 살았던 네 친구들이 서로 툭탁거리면서 지낸 학창시절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내는 곽경택 감독의 솜씨는 ‘대가’보다는 고집센 장인의 채취가 물신 풍긴다.

특히 이번 3, 4화에서 눈에 띈 것은 영화에선 그저 장식(?)에 지나지 않았던 진숙이 살아났다는 사실이다. 3화에선 풋풋한 여고시절을 보내는 진숙, 은지, 성애의 삼총사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덕분에 드라마 <친구>는 영화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들을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변모시켰다.

같이 캠핑을 갔던 4화는 또 어떤가? 피끓는 청춘남녀가 서로 눈이 맞고 다소 복잡한 애정관계를 맺는 이야기는 지극히 사실적이라 공감이 저절로 갔다. 물론 <친구>를 보다보면 불편한 구석도 많다. 장차 깡패의 길을 걷게 되는 준석과 동수는 드라마에서 유독 멋지게 그려진다.

특히 친구간의 의리를 중시하고 나름 폭력에 대해 미학을 가진 준석과 제어되지 못하는 젊음의 열기를 가진 동수는 폭력을 통해 그들의 존재을 시청자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4화에서 롤러장에 갔다가 폭력배에 걸린 상태를 구해주는 준석의 대사는 폭력에 대한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적당히 하면 안돼. 상대방이 오줌을 찔끔 쌀 정도로 해줘야지. 확실히 용서하고 내편을 만들던가, 아님 반병신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뒷탈없다”란 식의 대화는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 때문에 몸서리를 치게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이분법적 사고는 광복 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라 부정할 길도 없다. 영화에선 동수와 준석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이해 ‘폭력이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그려지는 과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의 모습이 멋져 보이는 것은 없다. 수컷인 탓일까? 실제론 누구한테 주먹질 못하겠지만, 브라운관 속에서 주인공들이 시원시원하게 상대방을 제압하는 모습은 응원하게 된다. 어떤 블로거가 주장한 것처럼 ‘깡패물’이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 <친구>는 70-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으며, 4화까지 봤을땐 드라마적인 진행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러나 너무 늦게 나왔다. 영화 <친구>가 히트하고 몇해 뒤에 나왔다면 열렬한 호응을 얻었을 것인데.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 영화 <친구>를 보며 느꼈던 아쉬움을 드라마로 충족하고 있으니까. 늦은 방영도 장점은 있다. 유오성과 장동건을 잊고 새로운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이 쉬워지는 부분도 있으니 말이다.

<다모>에서 어색한 대사를 날리던 김민준은 한층 여유롭고 능글 맞아졌고, 현빈은 날카롭고 껄렁껄렁해졌다. 진숙을 연기하는 왕지혜는 불행한 집안사정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잘 그려지고 있다. 또한 훗날 김충호와 맺어지는 박성애 역시 왈가닥 그녀를 무난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서 익숙한 장면 사이사이로 상영시간 때문에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그려내는 <친구>는 7080세대에겐 선물이고, 영화 <친구>를 본 이들에겐 친절한 보충설명서 노릇을 해주고 있다고 본다.

세련되고 멋진 작품들 사이로 이런 <친구>같은 투박하고 질박한 느낌의 드라마도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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