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이미숙을 보고 조커를 떠올린 이유, ‘신데렐라 언니’

朱雀 2010. 4. 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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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방송된 <신데렐라 언니>의 말미에선 꽤 흥미로운 대사가 오고 갔다. 극중 송강숙(이미숙)은 그동안 몰래 이어온 털보 장씨와의 만남을 끝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만난다. 여기서 두 사람이 받는 대사는 꽤 흥미롭다. 특히 마지막에 돈을 주면서 한 대사는 압권이었다!

 ...나 내 남편한테 충성할거야. 개처럼.

 하. 사랑은 내랑 하고 충성은 니 남편한테 하고.

 네가 무슨 말을 지껄여도 상관없는데, 내가 너하고 같은 종자라고 말하는 건 관둬라. 입을 찢어놓기 전에.

 이 가스나. 말하는 것 좀 봐. 입도 참 깨끗하다.

 내 영감 죽으면 나 헛거돼. 미쳤어? 어떻게 가졌는데, 어떻게 만든건데. (돈을 건넨다)

 먹고 떨어져라. 이 말이가?

 어.

 강숙아.

 나 가고 나서 그 돈 꺼내서 세봐. 입이 쩍 벌어질꺼야. 은조 몫으로 꼬불쳐 둔거, 한켠 헐어서 내온거니까. 너 그걸로 술지랄 하지말고, 전세방이라도 얻고 사람답게 살아.

 니 대신 돈을 가져라 이말이가? 니 우에 나한테. 니 네를 우에 보고?

 나 가고나서 그돈 세보고, 그러고도 그 돈하고 나하고 받고 싶지 않으면, 따라나와서 나 잡아봐. 같이 살아줄게.


 

 송강숙이 나가고 털보 장씨가 봉투를 열어보면 천만원짜리 수표가 무려 세장이나 들어있다. 이는 화면 상에 잡힌 것으로,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이 들어있을 가능성도 높다. 과연 그는 돈을 포기하고 송강숙을 잡을 수 있을까?

근데 이 가정은 애초에 몇 가지 모순을 안고 있다. 털보 장씨는 이전에 송강숙과 함께 산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송강숙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녀가 도망치고 싶어할 만큼 무능력한 인물이었다.

이전에 그는 구대성에게 재취한 송강숙이 너무 그리워서 그녀를 찾기 위해 대성도가에 왔다가, 대궐 같은 집의 안주인으로 행복한 그녀를 보고, 뒤로 돌아선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미 그때, 자신의 행복과 송강숙의 행복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한 인물이다.

여하튼 송강숙이 털보 장씨에게 던져주는 ‘딜레마’적인 선택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히스 레져의 미친 연기력이 빛난 <다크 나이트>를 떠올리게 되었다. 극중 조커는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딜레마를 던져놓곤, 그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매우 즐겁게 쳐다보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각각 민간인과 죄수들이 탄 배에 서로 상대방의 폭파 스위치를 주고는, 일정 시간이 되기까지 먼저 터트리면 한쪽은 살려주겠다고 약속한 장면이었다. 여기서 양쪽배는 혼란에 빠진다. 죄수들이 탄 배는 금새 교도관을 제압하고, 민간인의 배를 폭파하려고 한다. 민간인들이 탄 배에선 ‘죄수들은 죽어도 된다’면서, 언쟁이 벌어진다.

비록 죄수와 민간인이라는 구분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동일한 ‘인간’이다. 또한 생명에는 귀천이 없다. 따라서, 조커가 이들에게 던진 딜레마는 사실 매우 난감한 선택의 문제다. 만약 일반적인 상황에서 두 쪽중 어느 쪽의 목숨이 더 중하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양쪽 다 소중하다.라고 답할 것이다. 이건 굳이 국민윤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이다.

그러나 ‘내가 사느냐? 네가 사느냐?’의 기로에 서게 한다음. 선택을 강요하는 조커의 무자비함은 우리의 알량한 양심이나 윤리를 벗겨내고, 사람은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해내려고 한다.

양쪽다 폭파스위치를 누른다음, 변명거리는 충분하다. ‘모두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민간인측은 ‘죄인보다 우리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일반 대중의 지지를 받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양심은, 우리 속에 내재된 진실의 목소리는 그것이 ‘거짓’임을 끊임없이 속삭일 것이다.

다행히 영화에선 양쪽 다 마지막 순간에 스위치를 누르기를 포기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이었다면, 아마 둘중 한 곳은 다른 쪽의 폭파스위치를 누르거나, 양쪽다 폭파스위치를 누르는 최악의 상황까지 갔을 것이다.

 

자! 다시 <신데렐라 언니>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 애초에 송강숙은 털보 장씨에게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 그녀는 털보 장씨가 자신을 잡지 않을거라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그녀는 장씨가 몇천만원에 이르는 돈을 두고,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거라 볼 수 있다. 장씨는 드라마상에서 나오지 않지만 별다른 직업이 없어보인다. 있다해도 막노동 이상은 해보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기 급급할 것이다. 그런 그가 돈대신 자신을 선택할리 없다고 봤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장씨가 자신을 진정 사랑한다면, 잡지 않을거라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송강숙이 그동안 장씨를 만나준 것은 모질지 못한 것도 있지만, 대성도가의 안주인으로써 숨막히는 생활을 하는 데 대한 반발도 있었다.

허나 장씨를 만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누설이 된다면 그녀는 자멸하게 될테니 말이다. 그러나 지난 8년간 아무런 일이 없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강숙은 그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얼마전 남편을 잃을 뻔 했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남편에게 죄를 짓지 않고 살기 위해 ‘최후통첩’을 하기 위해 온 것이었고, 그 결과는 오늘 밤 알게 될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송강숙이 털보 장씨에게 돈을 건네주는 장면은 꽤 신선했다. 물론 드라마와 영화에서 누군가에게 돈봉투를 건네는 장면은 너무나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 대상이 사랑하는 당사자인데다, ‘딜레마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데렐라 언니>는 식상할 수 있는 장면에 몇가지 추가설정을 더함으로써 더할 수 없이 드라마의 격을 높였다. 물론 여기에는 이미숙과 서현철의 훌륭한 연기가 뒷받침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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