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공연 전시

쟈쟈바냐 - 100년을 넘어선 문학의 힘!

朱雀 2010. 5. 5. 09:39
728x90
반응형



 

올해는 안톤 체홉이 탄생한지 150주년이 되는 해란다! 그리하여 대학로에선 그의 작품들이 무대에 차례차례 올려지고 있다. 내가 본 <쟈쟈바냐>는 그의 작품 중 올해 게릴라 극장에 세 번째로 올려지는 작품이다. 무려 2시간 30분에 걸쳐 펼쳐지는 연극은 한 교수 부부가 시골에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연극을 관람할 당시에는 도대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해설을 듣고 나서야,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왜 1세기가 넘은 작가의 작품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올려질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쟈쟈는 러시아어로 삼촌 혹은 아저씨를 뜻한다고 한다. 바냐는 소냐의 삼촌이자, 세랴브랴코프 교수(이하 교수)와는 동서지간이다. 그러나 자신의 동생은 소냐만 낳고 죽고, 교수는 젊고 예쁜 엘레나를 새로 맞아들인다.

 

바냐는 그 엘레나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엘레나는 바냐에겐 별 다른 마음이 없다. 오히려 그녀가 마음에 두고 있는 인물은 아스뜨로프 의사다.

아스뜨로프는 지난 10년간 이곳저곳을 다니며, 환자들을 치료해왔지만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고, 변화되길 갈망한다.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던 중 그는 엘레나를 보고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된다.

아스뜨로프는 안톱 체홉이 스스로를 투영한 인물이다. 실제로 의사기도 했던 체홉은 아스뜨로프를 통해 지식인의 의지를 그려낸다. 그는 1세기 전의 인물임에도 벌써 환경문제에 큰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말만 앞세울 뿐, 행동은 없다. 그는 취미로 초원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 숲이 없어져 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는다.

 

엘레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삶에 대해 아무런 능동적인 대처를 할 줄 모른다. 아스뜨로프를 좋아하지만, 교수와 이혼할 생각따위는 하지 못한다. 자신의 사람을 지긋지긋해할 뿐, 뭐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무능력한 존재다.

<쟈쟈바냐>에서 제일 불쌍한 인물은 소냐다! 교수의 딸인 소냐는 못생겼다. 그 탓엔 아스뜨로프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내 무시한다. 소냐는 어린 시절부터 내내 농장의 모든 일을 하며,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고 집안을 운영해왔다. 어떤 면에서 소냐는 젊은이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나라와 노년 세대를 말하고 있다 할 것이다.

<쟈쟈바냐>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삶에 무기력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도, 벗어날 용기도 없다! <쟈쟈바냐>은 총 4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떻게 보면 커다란 사건은 교수가 집의 땅을 팔고 유가증권으로 교체할 것을 제안하자, 이를 오해한 바냐가 총으로 쏴서 죽이려고 하는 정도가 큰 사건이다.

 

그러나 교수와 가족들은 이 사건을 그냥 묻어버리고, 바냐는 스스로의 행동에 후회를 하면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쟈쟈바냐>가 ‘희극’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1세기 전에 이미 체홉은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현대인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모습을 그려냈다. 우린 모두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우리의 삶은 바뀌질 않는다. 왜? 우리가 무언가 의지를 가지고, 삶을 바꿔보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말로만 바뀌길 원할 뿐, 실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쟈쟈바냐>는 쉽게 볼 수 있는 연극은 아니다. 오늘날 쉽고 재밌는 작품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지겹기’까지 한 작품이다. 듣기론 요새 1막은 15분을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헌데 <쟈쟈바냐>는 무려 30분에 달한다. 그 30분 동안 연극은 작품의 기초설정에 대해 충실한 설명을 하고 있다.

 

심지어 연극 <쟈쟈바냐>는 국내에 번역된 책에조차 없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연출가 차태호가 러시아 유학 생활에서 구해온 원본을 최대한 그대로 번역한 탓이다. 따라서 현재 공연중인 <쟈쟈바냐>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오리지널 버전에 가깝게 볼 수 있는 기회다.

현재 대학로 게릴라 극장에서 5월 16일까지 상영되는 <쟈쟈바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줄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재밌고 쉬운 작품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불꽃 튀는 출연배우들의 연기력을 보고 싶다면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자, 의미있는 시간이 되리라 여겨진다. 꼭 한번 보시길 강력 추천하고 싶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