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주접떨기(시사)

노대통령님, 벌써부터 당신이 그립습니다...

朱雀 2009. 5. 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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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TV를 봤습니다.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거기엔 온통 당신의 서거에 관한 기사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믿기질 않았습니다. 한바탕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낮잠을 청했습니다.

깨어나서 다시 인터넷을 보고 TV를 봤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평행우주에 온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살아있는 현재 세계와 다른 차원에 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공원에서 산책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뒷목덜미가 서늘해지면서 당신의 죽음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지난 몇 달간 겪었을 고초와 자괴, 모멸감 등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허나 나는 당신이 그걸 견뎌내 주길 바랐습니다. 항상 그랬듯 승부사 기질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주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자살’이란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취했습니다. 어떤 것이 당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나요? 그 어떤 것이 당신을 이토록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세상에서 지워지도록 했나요?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이 기억에 선합니다. 그때 나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신이 지고 이회창 후보가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우린 서로 얼굴을 보며 “역시 어쩔 수 없는 건가?”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긴 여러 가지 사정이 당신에게 좋지 않았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일은 바로 정몽준 후보의 지지철회였죠. 어려운 과정을 거쳐 단일 후보가 되었건만 그는 당신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러나 웬걸? 당신은 후반으로 갈수록 뒷심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선되었습니다. 당신께서 당선되던 날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 중의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습니다. 그건 또 다른 승리였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권력의 정점에 섰건만,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도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건은 탄핵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탄핵이 되어 대통령직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지요.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일어서서 당신을 지지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을 재직하던 5년 동안, 실망한 적도 있고 분노한 적도 있고 괴로워한 적도 있습니다. 항상 당신에게 섭섭했습니다. 당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봉하로 돌아가던 날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봉하마을로 돌아가 국민들을 만났습니다. 항상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당신을 만나기 위해 봉하로 가면 되었습니다. 우린 거기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난 그걸로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여태까지 우리가 가져보지 못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모두들 구중궁궐에 들어앉아 전경들이 진을 치고 철통같이 보호했습니다. 국민들이 그들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스스로 증명한 셈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달랐습니다. 몇 명의 경호원과 수행원을 대동한 것 외엔 자유롭게 돌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만나면 기뻐했고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당신은 우리나라 역사상 우리가 가져본 가장 낮은 곳에 임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당신을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기회는 영영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아이들과 장난치고 썰매를 타던 모습들은 내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 노대통령님. 나는 당신의 정책을 100% 지지 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에 대해 반대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론 당신을 존경합니다.

썩을대로 썩은 한국 정치계에서 당신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아니 정치가라면 가야할 길을 밝혔고 어때야 하는지 가장 이상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과 만난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하나의 밀알이 되어 앞으로 당신보다 더욱 훌륭한 대통령과 정치가들이 나올거라 나는 믿습니다. 2009년 5월 23일을 나는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사상 최초로 애정과 존경을 가졌던 당신을 잃은 오늘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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