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국민당 7

오성홍기에 영향을 끼친 양계초

현대 중국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양계초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우리 역사를 보면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일이 있다. 중국 근대사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다. 바로 ‘무술변법’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광서제가 적극 후원하고 강유위를 비롯하여 양계초를 비롯한 변법파가 참여했다는 것이다. 광서제는 말이 좋아 청나라의 황제였지, 서태후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28세의 성인이 된 황제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제국을 경영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서구열강들의 위력을 직접 확인하고 굴욕적인 조약을 계속해서 맺고 있는 황제는 부국강병책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양계초의 스승인 강유위는 좋게 말해 대사상가지만, 부풀려진 경향이 크다. 이에 반해 제자인 양계초는 강유위보..

장학량은 왜 장개석 총통을 감금했는가?

청년 시절의 장학량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역사는 때때로 한 사람에 의해 큰 흐름이 바뀔 때가 있다. 중국의 근대사는 여러 인물들로 인해 그 흐름이 크게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도 장개석과 모택동의 명운을 크게 바꾼 사건을 들라면 아마도 1936년 12월 12일 벌어진 ‘서안사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산군 토벌을 격려차 온 장개석을 장학량이 섬서성에서 체포하여 감금한 사건으로 중국 전체를 들었다 논 일이었다. 이는 당시 장학량이 남경정부의 부사령관이며, 장개석의 부하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하극상’이란 초유의 사태다. 게다가 당시 장개석이 국민당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정을 고려했을 때,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야기는 장학량의 아버지 장작림이 폭사를 당..

한국전에서 미군은 왜 중공군에게 밀렸을까?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6.25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할 당시 상황은 전적으로 불리했다. 우선 중공군은 해군과 공군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오로지 순수하게 육군으로 막강한 미군에 대항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처음엔 원조를 약속한 소련은 말을 바꿔 발을 빼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중공군은 매튜 리지웨이가 사령관으로 오기 전까지 압록강과 청천강에서 미군을 대파하며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만약 누군가가 중공군이 미군을 밀어낼 것이라 이야기했다면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우선 당시 중공군이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겪은 실전 경험이 그야말로 풍부한 전력이란 사실을 우선 상기해야 한다. 중공군은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국민당과 달리 ‘자력갱생’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중공군은 (미국조차 쩔쩔맨..

중국이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는 이유

중국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외환보유고가 무려 2조8500억 달러에 달한다. 2위인 일본이 약 1조 달러 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다. 개인적으론 왜 이렇게 중국이 미련할 정도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흔히 외환보유고는 ‘많이 쌓을수록 좋은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외환보유고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기 쉽다. -대외자산과 대외부채를 동시에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중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의 입장에선 ‘위안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다. 중국 지도부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왜 이토록 높은 외환보유고를 고집하는 것일까? 관련기사: 中 12월 기준 외환보유고 2조8500억弗 나는 그 이유를 지난 ..

마오쩌둥과 진시황제는 닮았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 -사진 출처: 위키백과 진시황제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불로장생의 약을 애타게 찾은 황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 호화로운 궁전인 아방궁을 짓게 만든 장본인? 1974년 3월 발견된 이래 계속해서 발굴중인 진시황릉의 주인? 분서갱유? 만리장성? 아마도 진시황제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그 정도에서 멈출 것이다. 진시황제는 이름 그대로 ‘최초의 황제’를 뜻한다. 진시황제는 춘추전국시대(BC 770-221)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로, 진나라의 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이 대단하다고 여겨 전설로 내려오는 군주인 삼황오제에서 따와 ‘황제’라고 칭했다. 사실 진시황제의 업적은 대단하긴 하다. 진시황제 이전까지 중국의 역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은-주의 세 왕조가 등장하긴 하..

현대중국을 알려면 청나라를 보라!

‘결혼을 하려면 장모를 보라’는 말이 있다. 딸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머니를 통해 그녀의 다른 면을 알게 되고, (그녀의) 미래 모습을 대충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격언은 결혼을 앞둔 남성에겐 매우 유용한 충고라 할 것이다. 최근 라는 책을 보고 있다. 중국만 30년을 넘게 연구해온 예일대의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명나라 말기부터 현재 중국까지의 역사를 훑어내려간다. 무려 400년의 시간이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통해 현대 중국을 재조명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어떤 국가나 민족도 역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따라서 그 나라의 역사를 알면, 현재의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굳이 400여년전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교수의 열정을 처음엔 이..

당신이 생각하는 중국문화란 없다!

유학의 시조인 공자의 초상 출처: 위키백과 풍경 1: 현재 중국 전역에서는 설날 아침에 차례나 제사를 일체 지내지 않는다. 1949년 모택동이 중국인민공화국을 세우고 제사 등을 미신으로 규정하며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선 제사 지내는 것이 불법이다. 출처 : 교회신문 풍경 2 : 2004년 중국 산동성 곡부에선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 의식이 치러졌다. 중국공산당이 직접 주관하고, CCTV를 통해 국내외에 무려 4시간에 걸쳐 방송되었다. 참고 : 해럴드 경제 오늘은 간단한 문제로 시작하겠다. ‘풍경 1’을 보면 알겠지만, 중국에선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물론, 제사지내는 방법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데 ‘풍경 2’를 보면 중국 공산당이 직접 주도하에 공자에게 제사를 지냈..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