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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제 4

청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천재, 좌종당

청나라 말기에 유일한 승리를 가져다준 좌종당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증국번과 이홍장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 중에도 좌종당의 이름을 들어본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좌종당은 1842년 난징조약 이후 ‘굴욕의 100년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다. 바로 1865년 일리를 제외한 신강 전역을 정복한 야쿱 벡 정권을 2년 만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는 오직 좌종당의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가 빛난 결정체, 그 자체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 중국은 서구열강의 먹이감으로 전락해서 시달림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신강지역의 이슬람인들이 반란을 획책해서 정권을 세웠을 때,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 등과 국교를 가질 정도로 지원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말이 쉽지 쇠퇴기에 접어든 청나라가 머나먼 신강지역까지 원정을..

장개석과 모택동이 모두 존경하는 증국번

태평천국운동과 염군의 난을 진압한 증국번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의 최고위층이 존경하는 인물로는 흔히 강희제를 꼽는다. 그렇다면 현 중국 공산당의 영원한 주석이라 할 만한 모택동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태평천국운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청나라 정계의 거목이 된 증국번이다. 근데 재밌는 점은 국민당을 이끌면서 그와 대결을 펼친 장개석 총통 역시 증국번을 존경한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가치관도 다르고 첨예하게 이해가 대립되는 두 사람이 근대격변기의 인물인 증국번을 존경하는 것일까? 태평천국운동은 한동안 중국 공산당에선 위대한 농민운동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이를 진압하고 청나라 조정을 대표한 증국번과 이홍장등은 반대급부로 비판을 받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중국 근대화의 시조, 임칙서

한인관료 최초의 흠차대신 임칙서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임칙서’라고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역사에 대해 조금 아는 이라면 ‘아편전쟁’을 떠올릴 것이고, 좀 더 아는 이라면 그가 편찬에 일조해서 훗날 한중일의 개화사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까지 알 것이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 임칙서는 시골 훈장의 아들로 태어나 군사를 이끌 수 있는 흠차대신에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청나라에선 임칙서 이전까지, 한인 관료가 문관이 되어도 군사를 이끌 수 있는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멸만흥한’의 기치를 남몰래 항상 지니고 있는 한족을 청조정에서 못미더워한 까닭이다.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청조정이 한인관료를 우대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임칙서는 4세때부터 공..

손문과 신해혁명이 근대중국을 망쳤다?

대만과 중국에서 모두 국부로 추앙받는 손문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최근 읽고 있는 에 재밌는 주장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1839-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로 중국은 100년이 넘도록 암흑기를 지나왔다. 따라서 이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양이의 기술만 들여오자’는 양이파와 ‘기술뿐만 아니라 제도까지 들여오자’는 변법파, 그리고 ‘서양식으로 모든 것을 갈아엎자’라는 혁명파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흔히 우리는 당시 청나라가 부정부패했고, 과학기술이 서구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서 서구열강의 먹이감이 되고, 끝내는 일본에게 절반 이상 먹히는 수모를 겪었다가,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언하고 나서야 혼란기를 멈추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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