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1928년 6월 4일 장작림은 북경에서 심천으로 향하던 열차를 타고 가던 중에 차량폭발로 죽고 만다. 이는 당시 일본 관동군이 모의해서 실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군은 장작림을 ‘폭사’라는 끔찍한 형태로 제거했을까? 장작림은 잘 알려진 대로 친일파 인사였다. 그는 일본계 인사들과 친분을 두텁게 함으로써 장개석과 최후까지 ‘중국’을 놓고 다툰 일세의 효웅이 되었다. 그러나 장작림은 비록 친일파 인사였지만,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는 짓’까진 하지 않았다. 장작림은 위태로운 시기에 일본에게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다스리는 만주지역의 철도권을 넘겨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우선 이는 중국인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문제였다. 또한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