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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21세기 초강대국?!

통일 중국을 놓고 장개석과 끝까지 겨룬 장작림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장개석은 분열되어있던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장작림과 마지막까지 싸워야했다.


장작림은 동북왕으로 불리긴 했지만, 그의 야심은 만주의 패자가 아니었다. 바로 중국을 통일한 패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야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적이었던 오패부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장개석의 국민혁명군이 승승장구하자 북진해오자, 이를 기회로 삼아 192597일 북경에 입국하고, 1130일 안국군 총사령관에 취임한다.

 

그리고 마침내 1927618일 북경에서 대원수로 취임했다. 장작림이 급하게 대원수에 취임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군의 무력이 너무나 강했다. 장작림과 연합한 군벌 손전방과 장종창이 형편없이 밀려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야 했다. 장개석과 장작림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군벌 염석산은, 추가 기울었다고 보고 장개석의 밑으로 들어가길 마다하지 않았다.

 

따라서 장작림은 북경정부를 선포해서 정통성을 인정받아, 안으로는 민심을 끌어 모으고, 밖으로는 서구열강들의 추인을 받고자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실패했다. 우선 장작림은 대원수 취임당시 북경시민들이 실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삼엄한 경비와 교통을 통제했다. 게다가 그의 뒤에 일본이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서구열강들은 당시 장개석이 이끄는 남경정부와 좌파가 이끄는 무한정부 그리고 장작림의 북경정부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쪽에 붙기 위해 관망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따라서 장작림의 대원수 취임은 평생의 염원을 풀었다는 개인적인 소원 성취외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어쨌든 장작림은 승승장구하는 장개석을 맞이해서 일생일대의 승부를 겨뤄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80만 대군과 새롭게 의형제를 맺은 손전방과 장종창을 믿었다.

 

그러나 그건 철저한 오판이었다! 우선 손전방과 장종창은 너무나 무능하고 부패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군에게 패배를 거듭했다. 처음에는 상해에서 시작해서 안휘성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이는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군이 신식무기와 교육을 받은 강군인 탓도 컷지만(더불어 전략에서 장개석은 장작림보다 한수위 였다), 손전방과 장종창이 군사와 국민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군벌인 탓이 컸다.

 

손전방과 장종창은 중요 자리에 실력이 아니라 인맥을 기용해서 사람을 뽑았고,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다. 그런 탓에 군인들에게 주어야할 급료가 없어서, 월급이 몇 달치가 밀리고, 이는 군인들이 화가 나서 장개석의 국민군이 오면 무조건 투항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울러 부패한 군인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의 주민들의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등의 행태를 부려 민심을 잃게 되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은 승승장구하던 장개석의 국민군은 북벌이 완성되기도 전에 1926320중산함 사건을 일으켜 공산당권과 진보인사를 살해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공산당과 국민당 내의 좌파세력은 반발했고, 무한에 정부를 세워 다투는 결과를 초래했다.

 

손문의 사망이후, 급속히 대권을 차지해가던 장개석이 일찍 마각을 드러낸 탓에, 장작림은 한숨 돌릴 수 있었고, 그 때를 틈타 대원수에 취임하여 반격을 노렸다. 그러나 부패한 군벌들과의 연합은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1928222일 장개석은 마침내 주석이 되어 모든 권한을 가졌고, 228일 북벌군을 재조직해서 48일 총공격을 실시했다. 장작림은 장개석을 맞아서 최선을 다했지만 판단 착오를 범했다. 장개석이 이끄는 강군앞에 손전방과 장종창의 군대를 투입시킨 것이었다.

 

군사회의 때 산동 중부가 중요하니 예비 전력을 투입시켜 만약을 대비하자고 했지만, 장종창은 자신의 세력권에 다른 이들이 간섭하는 것이 싫어서 반대했고 어리석게도 장작림은 이걸 받아들였다. 만약 그의 아들인 장학량이 이끄는 강군이 참여했다면, 적어도 패하지 않을 가능성은 높았다. 그러나 손전방과 장종창이 지키고 있던 봉천-산동 지역에서 장개석군에게 패배함으로써 결국 장작림은 59일 휴전을 제의할 정도로 전선은 급속하게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장개석은 장작림을 믿을 수 없어서 북벌을 계속 단행했고, 견딜 수 없었던 장작림은 자신의 세력지인 동북3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차를 탔다가, 64일 일본군에 의해 폭사당하면서, 너무나 어이없게 그의 일생을 끝마치고 만다.

 

 

참고: <만주군벌 장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