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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양군 3

결국 황제에 올라 파멸을 자초하는 원세개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손문은 비록 원세개에게 총통직을 양보했지만, 견제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 그래서 몇 가지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하나는 임시정부의 수도를 남경으로 정한 것이고, 참의원이 결정한 새로운 대총통은 남경에 와서 취임할 때 현 총통과 국무원들을 해임하는 것, 마지막은 ‘중화민국임시약법’은 참의원에서 제정한 것으로 대총통이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세개는 처음에는 기뻐했으나, 손문의 요구조건을 듣고는 곧 의미를 어느 정도 깨달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세개의 세력권은 북경을 비롯한 북쪽지방이었다. 따라서 그가 손문의 홈그라운드인 남경으로 간다면, 그 위세는 초라해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참의원들이 정한 임시약법에 따른 것은 총통이 생각보다 그다지 권한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원세개..

원세개는 어떻게 손문을 밀어내고 총통이 되었는가?

중화민국의 초대 임시총통을 지낸 손문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개인적으로 중국근대사를 읽으면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바로 1911년 신해혁명이후 임시총통이 된 손문이 원세개에게 총통직을 양보한 일이었다. 간략하게 서술한 역사서에선 원세개는 단순히 ‘군벌’정도로 소개되어 있었기에, 그간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군사력이 남다른 것만 가지고는 아무리 허약한 중화민국 초기라해도, 민중의 엄청난 지지를 받는 손문을 밀어내고 총통이 되기란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는가? 이후, 원세개는 심각한 착각을 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가 파멸을 자초했지만, 그럴 수 있을만큼 그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 안의 사정은 어때했던 것일까? 자! 이제 이야기를 신해혁명보다 조금 앞선 시기인 1909년 1월 6..

배신으로 청조정의 1인자가 되는 원세개

원세개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1895년 원세개는 하남을 관장하는 순무에게서 전보를 받는다. 바로 광서제를 알현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조정은 청일전쟁의 패배 이후로, 군을 새롭게 개혁해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광서제는 당시 유능한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는데, 권력에 항상 줄을 대고 뇌물을 바치고 아부를 일삼던 원세개가 ‘유능한 신하’라는 일부의 주장 덕분에 만나게 된 것이었다. 누구보다 서구열강들의 신식군대의 위력을 가장 가까이서 체험한 원세개는 군의 개혁을 소리 높여 주장했고, 광서제는 그를 높이 평가해서 군기처에 장경으로 임명했다. 장경의 일이란 ‘고문’ 정도로 그저 2-3일에 한번 정도 군기처에 나가면 되는 한가한 직책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권력지향적인 원세개는 이런 직책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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