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가희 루저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朱雀 2010. 7. 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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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논란 이후 가희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들. 그녀의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읽혀진다.

어제 하룻동안 인터넷을 달군 최고의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가희의 루저 논란일 것이다. 그러나 가희가 자신의 트위터에서도 밝혔지만, 그녀는 ‘루저’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적이 없다.

문제가 된 <세바퀴>의 내용을 살펴보면, 박미선이 그녀의 이상형을 물었고, 그 과정에서 ‘183센티 이상이면 좋겠다. 저보다 키작은 남자는 싫어요’라는 정도의 답변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얼마전 <미수다>에 출연한 대학생이 별다른 생각없이 ‘180이하는 루저’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기억하는데서 기인한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해당 방송분량을 삭제했거나 하다못해 ‘저보다 키작은 남자는 싫어요’라는 부분만 삭제했어도 지금처럼 후폭풍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남성들이 ‘180센티 이하는 싫다’라는 연예인의 말이나 출연자의 말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라는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만약 시청자들의 마음이 넉넉하다면 그런 말을 들어도 그냥 ‘풋’하고 웃고 넘어가면 그만 일텐데, 마음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선 여기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무한경쟁인 탓이 클 것이다.

중-고등학교도 부족해 대학까지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한 젊은이들의 무한 경쟁은 정말 처절하기 이를 데 없다. 각종 과외를 섭렵하고 그것도 부족해 봉사활동과 각종 인턴십을 거쳐아 하는 젊은이들은 이제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그런데 스펙 쌓기도 부족해 ‘키’까지 운운하는 방송계의 말은 그런 그들에게 ‘이젠 키까지 늘리라는 거냐?’라는 격렬한 반응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키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선천적인 조건이므로, 더욱 반발심은 커진다-

 

게다가 인구비율로 따져도 180센티 이상의 남성은 불과 1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젊은 여성들이 흔히 ‘180센티 이상’을 첫째 조건으로 삼는 것에 남자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미적 가치관이 서구사회를 쫓아가면서, 여성들은 S라인이나 깡마른 몸매에 집착하게 된 것처럼, 남자들은 근육질 몸매와 180센티 이상의 큰 키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180센티가 되고 싶어도, 한국인은 신체구조상 180센티 이상이 되기 어렵다. 거기에 더해 180센티 이상은 국내 남성 인구중 불과 10%밖에 되지 않아, ‘선택된 소수’라는 피해감을 건드린다.

또한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180센티 이하의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고, 스스로 위축되기까지 한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군대와 더불어 키 문제는 터부시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나나와 함께 출연한 가희는 출연진과 시청자를 위해 김완선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드럼을 치면서 웨이브를 선보이는 등의 멋진 무대를 보여줬다. 말하지도 않은 ‘루저’ 논란으로 그녀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무대를 꾸몄는지 알려지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

 

여기에서 애프터스쿨의 가희가 억울한 대목은 그녀의 발언을 그저 <세바퀴>를 재밌게 하기 위한 제작진의 의도로 인해 왜곡되었 다는 데 있다. 여기에 <미수다>의 ‘루저 논란’에 상처를 입은 몇몇 네티즌들이 ‘루저’운운(하지도 않은)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세바퀴>를 제대로 보지 않은 이들까지 마구잡이로 가희를 ‘마녀사냥’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우리가 흔히 쓰게 되는 ‘마녀사냥’이란 단어는, 중세시대에 생겨난 말이다. 아무런 죄없는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이란 끔찍한 방법으로 단죄까지 했던 중세시대에도,  마녀로 의심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희생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 약 50%는 무고로 풀려났었다.

그런데 오늘날 인터넷 ‘마녀사냥’에는 예외가 없다.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여론재판엔 피고의 항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정확한 사실조사 없이 이뤄지는 오늘날의 마녀사냥은 한 사람의 인생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그녀의 티 없이 밝은 웃음을 계속 볼 수 있을까? 부디 계속해서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사람에 대한 각종 나쁜 소문이 인터넷을 횡횡하고, 미니홈피는 해킹당하고 수시로 그 사람에 대해 각종 근거 없는 비난이 난무한다. 그것도 부족해 무슨 일만 벌어지면 예전일을 들추어내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험담하기 바쁘다.

그런 일은 당연하지만 당사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고,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번진다. 입장을 바꿔서 다수가 익명을 앞에 내세우고 그런 짓을 자신에게 한다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삐뚤어진 정의감과 인터넷의 패거리 문화는 약자인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이미 많은 연예인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오직 인터넷 여론 재판에 의해 ‘마녀’로 몰려 그들의 삶이 지옥으로 변했다. 최민수는 노인을 폭행했다는 소문에 시달려 한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 했고, 몇몇 연예인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했다. 우린 이런 일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잘못된 일에 대해 비판해야겠지만(그걸로 끝나야 한다!), 확실한 근거없이 루머만 가지고 ‘단죄’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더더군다나 상대가 연약한 여자 연예인이라면 루머를 들었을 때, 한번쯤 더 생각해볼 것은 주문하고 싶다. 단순히 화려한 조명아래 춤추는 연예인이 아니라, 그들 역시 우리처럼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란 사실을 상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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