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공연 전시

된장찌개의 맛, '마누래꽃동산'

朱雀 2010. 9.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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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3시, 신사역 근처에 위치한 강남동양아트홀에선 <마누래꽃동산>이 공연되었다. 나 주작은 꽤 편안한 객석에 앉아 이 멋진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얼마전 아무런 정보없이 연극을 보러갔다가 난해한 작품에 질린 이후로, 재밌는 작품만 골라보는 탓에, 혹시 이번에도 ‘뽑기 운’이 나쁜 건 아닌지 지레겁먹은 탓이었다.

 

그러나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원작이 좋다는 말에 보게 되었고, 이내 감동하게 되었다. <마누래 꽃동산>의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거기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만만치 않다.

 

마치 유명한 맛집이라고 찾아가보니, 달랑 김치 하나에 된장찌개 하나만 내놓았는데, 먹어보니 천하 제일의 맛이랄까? 우리가 흔히 먹지 않는 음식으로 소문나긴 쉽다. 그러나 흔히 먹는 김치와 된장찌개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긴 쉽지 않다. 왜냐면 누구나 집에서 해먹을 수 있고,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맛이니 말이다.

 

그런데 <마누래꽃동산>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마누래 꽃동산>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았던 이야기다. 젊은 시절 난봉꾼으로 지내던 박씨는 마누라가 죽을 고비가 넘기고 나서야 철이 든다.

 

그의 아내 순자는 자신이 아픈 것을 내색하지 않고, 평생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를 한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다. 착하디착한 남편 때문에 속을 끓이는 딸을 보며, ‘참아라’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어머니 혹은 할머니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순종적이며 가족을 위해 생계를 직접 꾸리시는 그런 강인한 모습 등이 말이다. 여기에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박씨와 어머니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영순과 시집 온지 얼마 안되어 남편을 잃고도 시부모를 찾아오는 명숙의 모습등은 마치 오래된 드라마 속 내용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오래전 본 듯한 내용은 딱 거기까지다! <마누래 꽃동산>은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폭발한다. 거의 매 신마다 등장인물의 감정은 폭발한다. 딸과 말을 주고받던 어머니 순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말하고, 너무나 착한 줄 알았던 어머니에겐 사실 좋아하던 이가 있었다는 이야기 등은 관객에게 충격적인 반전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더해 각종 상을 휩쓴 이현순-고인배-이영석-배상돈-김성미-황세원 등의 노련한 연기자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그저 ‘감탄사’만 나오게 한다.

 

<마누래 꽃동산>에는 우리 부모님과 주부모님 세대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거기엔 남편의 폭력과 바람 앞에서도 순종적이기만 했던 어머니 혹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강화도 사투리는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내 우리 어머니 이상 세대의 이야기가 녹아들면서 정감있게 들리게 된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자식, 가족을 내팽개치고 젊은 시절 방탕하게 지냈던 아버지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라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신장이 떨어져나갈 듯 고통을 소주 한잔으로 이겨내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라 더욱 가슴이 아프다.

 

<마누래 꽃동산>는 문학작품과 비슷한 면이 많다. 그러나 함부로 멋을 내거나, 쉽게 인생을 말하지 않는다. 장윤진 작가가 이름을 붙여준 순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지금 당장 강화로 가서 5일장에서 우린 다른 이름의 순자를 만날 수 있다. 뙤약볕 아래 우산 하나만 놓고, 지나가는 이들을 향해 정겨운 말투를 건네는 그런 이들을.

 

허나 <마누래 꽃동산>은 또한 비범하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암시와 복선이 깔려 있다. 등장인물의 대사는 사투리를 섞어놨음에도, 의미전달이 하나도 빠지지 않으며, 반전을 심어 놓았다. 그렇다고 <마누래 꽃동산>에 커다란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생을 살다보면 있을 법한 어쩌면 커다란 어쩌면 소소한 사건들에 모두의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마누래 꽃동산>은 소문난 맛집의 된장찌개와 같다. 그냥 와서 맛있게 먹고 갈 수 있고, 궁금해서 왔다가 그 엄청난 맛에 감동하게 될 수도 있다. <마누래 꽃동산>은 당신의 알고 있는 만큼, 삶을 살아온 만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감히 추천하고 싶다! 이런 멋진 작품과 멋진 배우들의 조화를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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