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아이돌 시대의 겁 없는 모던 록 밴드 ‘아일랜드 시티’

朱雀 2010. 10. 2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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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걸그룹을 사랑한다. 슈퍼모델 못지 않은 긴 다리와 팔로 시원시원한 안무를 보여주는 애프터스쿨도 좋아하고, ‘오빠’를 외치는 소녀시대도 좋아하고, 엉덩이춤을 추면서 최선을 다하는 카라도 좋아하고, 걸그룹으론 드물게 파워풀한 힙합에 가까운 춤을 보여주는 포미닛도 좋아한다.

 

하여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 진출해서 오리콘 차트에 나란히 1,2위로 입성하고, 원더걸스가 미국에 진출해 빌보드 차트에 당당히 입성하는 소식을 들으면 마치 내일인양 기분 좋고 뿌듯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런 내 자신을 볼때마다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론, 미국은 그렇다쳐도 댄스부터 록은 물론이요 다양한 음악 장르의 가수가 공존하고 인기를 끄는 일본 음악 시장을 보면서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주류 음악 시장도 한때는 삐삐밴드니 체리필터 등이 주류에서 힘을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90%는 아이돌이 주도하는 댄스음악이 차지하는 나머지는 발라드, 그리고 약간을 그 외의 음악들이 구성하는 시장이 되어버렸다.

 

현대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른바 주류에선 음악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록’마저 사라져버린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런 탓에 <라라라>처럼 비록 심야에 하지만, 가수를 예능인이 아니라 음악인으로 대우하는 프로가 상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바뀐 방송지형 탓에 이제 가수는 ‘노래’만 잘해선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개인기로 무장하고, 기본적으로 탄탄한 복근과 S라인 몸매를 가꿔 시청자에게 보여줘야만 어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제 <라라라>에선 그런 주류 시장에서 보기 힘든 록밴드가 하나 출연했다. 바로 ‘아일랜드 시티’였다.

 

한명의 남자와 세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이 밴드는 2006년 데뷔한 이래 언더에선 나름 인지도를 키워온 것 같다. -비록 ‘심야’지만 <라라라>에 출연하고 가요순위 프로에 출연했다면 꽤 성공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원래 김범수 때문에 본 <라라라>는 아일랜드시티 때문에 더 흥미롭게 보게 되었다. 그들이 첫 번째로 부른 ‘난 당신의 유쾌한 공주를 꿈꾼다’는 첫 번째 앨범인 ‘Love Story'의 타이틀 곡이었다. 듣는 순간, 내가 잊고 있었던 록밴드의 경쾌함과 여성 보컬의 힘있는 목소리가 인상적인 곡이었다.

 

특히 현대시 같은 제목의 ‘난 당신의 유쾌한 공주를 꿈꾼다’라는 노랫말은 경쾌한 연주와 호소력 있는 보컬의 매력이 뒤엉켜 이 젊고 패기만만한 록밴드를 관심있게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곡을 부른 후 아일랜드시티 멤버들은 특유의 편안하고 감성적인 진행이 돋보이는 김창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상적인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일랜드시티의 리더는 유일한 남성멤버인 정연수다! 근데 그가 리더가 된 사연이 몹시 재밌다. 원래 ‘아일랜드 시티’를 결성한 이는 보컬인 이지희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베이스기타를 치는 서아름과 스쿨밴드 활동을 했고, 대학교때 드럼을 치는 엄상민을 만나 2004년쯤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남아있던 자리를 위해 오디션을 봤는데, 그때 참가한 이가 정연수 였다.

 

당시 오디션을 보던 정연수는 기타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이야기라도 해서 오디션에 붙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2시간여에 걸친 이야기 끝(?)에 나머지 멤버를 설득시켜 리더까지 되는, 그야말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아일랜드시티’라는 팀명도 좋아하는 U2의 앨범의 음반사 이름에 영감을 받아 작명하는 센스를 보여주고, 낼모레 30살인데 전화만 받으면 ‘엄마바꿔줄래?’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서아름의 이야기는 나름 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역시 아일랜드 시티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공연할 때였다! 2년 만에 낸 정규앨범 1집에 수록된 ‘다시 돌아갈 수 없어’는 델리 스파이스의 김민규가 맡았다는 점에서 기대를 자아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편안하면서도 모던 록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도시의 우울함을 활달하게 그려낸 듯한 느낌의 곡이었다. ‘난 당신의 유쾌한 공주를 꿈꾼다’이 겁 없는 신인의 풋풋함이 느껴진다면, ‘다시 돌아갈 수 없어’는 세상의 쓴맛을 어느 정도 맛본 록밴드의 관록이 묻어나는 곡이었다.

 

마지막으로 부른 ‘Nothing'은 노랫말처럼 힘들고 어려운 현대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위로와 꿈을 전해주는 곡이었다. 6분여에 이르는 기타의 반주와 지친 도시인을 토닥이는 노랫말은 내가 흔히 록밴드 영화에서 들은 순기능을 제대로 발현하는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라라라>를 통해 아이돌이 판치는 가요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모던 록밴드 ‘아일랜드시티’를 만나 반가운 시간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처럼 보석 같은 밴드를 보여주고, 가수가 예능인이 아니라 음악인으로 설 수 있는 몇안되는 무대인 <라라라>가 11월부턴 폐지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에 방송을 하는 탓에 별로 찾아보질 못했는데, 폐지라니 그저 안타깝다. 그래도 폐지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아일랜드시티’처럼 재능있는 밴드가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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