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우리에겐 왜 파티문화가 없을까?

朱雀 2010. 11.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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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생뚱맞다’라고 생각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냐? 우리도 엄연히 파티문화가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동네 잔치를 열고 함께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노래 부르고, 어깨춤을 추는 문화가 있다’라고 반론을 제기할 분이 있을 지 모르겠다.

 

적절한 반론이라고 생각된다. 근데 그거 되게 옛날 일이다. 우리 부모 세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만 해도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는 것은 어딘가 ‘촌스럽고’ ‘어색한’ 문화로 여기게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설마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그렇게 노는 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많지 않을 거라고 본다-

 

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대기업 총수나 부자들이 연주자들을 불러 현악 4중주를 켜고, 우아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건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화투도 보고 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선 ‘파티’라는 것엔 동의한다.

 

그러나 같이 화투를 치며 명화를 감상하고, 남의 뒷이야기나 연예인의 소문을 말하면서 웃는 것을 과연 ‘파티’라고 할 만할까? 물론 ‘파티’란 광의의 개념이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므로 무엇이 ‘옳다’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조금 이야기를 바꿔보자! 우린 정말 제대로 놀고 있는가? 이 말에 대뜸 남자가 술집에서 여자를 옆에 끼고 노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건 정말 한국 사회의 ‘병폐’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제공: 맥팬(www.macpan.co.kr)

‘논다’라는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어딘가 천시된 느낌이 강하다. 1950년대 6.25 전쟁을 겪고, 피폐해진 국토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며 1970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우리는 정신없이 ‘경제발전’이란 명제하에 정신없이 살아왔다. 어린이들은 시험을 위한 ‘공부’에만 매진할 것을, 직장인은 휴일을 반납하고 일할 것을 강요당했다.

 

그 결과 21세기 우린 선진국 문턱에 올라와 있다. 그래서 우린 잘 살고 있는가? ‘복지’니 ‘부의 재분배’는 골치 아프고 정치적인 문제가 많이 개입되므로 여기선 언급치 않겠다.

 

내가 관심을 두고 말하고 싶은 화두는 ‘놀이’다. 파티다! 요즘 청소년들은 ‘게임’에 익숙하다. 물론 게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서 레벨 업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혼자 하는 놀이’라는 점이다. 물론 온라인 게임은 비록 인터넷상이지만 다른 이들과 어울려서 하지만, 결국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혼자 노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그런 규칙마저 지킬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혼자서 즐기는 게임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린이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즐기던 놀이문화가 사라졌다.

 

어른들은? 직장인들은 대다수가 회식을 하면 1차는 밥 먹고 술 먹고 2차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는 순이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비싼 술집에서 다른 서비스를 즐기기도 하지만, 이는 건전한 놀이문화라고 보기 어렵다.

 

하기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외국 영화를 보면, 흔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즐기는 장면들이 나온다. 거기선 70세 먹은 노인이 20세의 아리따운 아가씨랑 춤을 추기도 하고, 아빠가 딸과 춤을 추기도 한다. 물론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만나 함께 춤추면서 사랑의 감정을 키우기도 한다.

 

또한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을 향해 덕담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 어떤 일에 대해 상의를 하는 등의 모습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파티 문화란 그런 것이다. 파티란 대부분 축하할 일이 생겨서 모인 자리다. 우린 그런 자리에서 덕담을 나누고 재밌게 놀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가 오늘날에는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물론 여유가 있는 이들은 전문 업체에게 맡겨서 사회자가 재밌게 상황을 진행하고, 갖가지 이벤트가 벌어진다.

 

근데 만약 이런 광경을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조선 시대 조상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이것들이 놀 줄 몰라서 이런 데까지 돈쓰냐?’할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숨가쁘게 ‘경제 발전’이란 명제하에 ‘노는 문화’가 실종되어 버렸다.

 

이젠 어린이들도 방과하면 3-4개의 학원을 다니고 녹초가 되어 밤늦게 집에 들어오기 일쑤다. 그들이 놀이문화와 거리가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논다’는 행위는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게 아니다. 놀이문화에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고, 그 규칙 위에서 서로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우린 놀이를 통해 사회의 규칙을 익히고, 다른 이와 교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문화는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행위라고만 할 수 없다.

 


-사진제공: 맥팬(www.macpan.co.kr)

‘파티 문화’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이와 ‘격의없이 어울리게 해주는’ 데 있다. 외국의 파티의 경우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해 함께 춤추면서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게임도 즐긴다. 이런 파티 문화는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더더욱 필요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30대 직장인들은 최근 ‘동호회’활동을 통해 ‘놀이’나 ‘파티’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10-20대들은 ‘할로윈 파티’나 힙합등 다양한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그들만의 파티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이런 움직임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여전히 우리사회엔 가난한 이들이 많고,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그러나 그렇게 죽을 때까지 돈만 벌어서 무얼 할 텐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는 돈. 일만 하다가 심한 스트레스에 성인병이나 암에 걸린다면 누가 보상해줄 텐가? 아무리 억 단위의 돈을 준다고 해도 그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건전한 놀이와 파티 문화는 바쁜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라고 본다. 또한 그런 문화는 자칫 딱딱하고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쉬운 요즘 사회에 ‘좋은 윤활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우리의 좋은 전통 놀이와 파티 문화는 아쉽게도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사라져버렸다. 물론 할 수 있다면, 그런 문화를 되살릴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다른 나라의 파티문화를 적절히 우리에게 맞게 수정해서 적용한다면 훌륭한 시작이 되지 않을까?

 

예전에 ‘족보를 가져오라’고 학교 선생님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족보가 없는 집’을 위해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족보가 없다면, 지금 할아버지, 아버지, 자신까지 쓸 수 있는 데까지 써서 후손에게 전해라. 그게 쌓이면 나중엔 멋진 족보가 될 것이다’라고. 그 말은 지금도 내 뇌리에 생생하다. 그 말을 그대로 되돌리고 싶다.

 

‘만약 우리에게 파티 문화가 없다면,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가져와 쓰면 어떻겠는가?' 그걸 어느 정도 수용해서 놀면서 바꿔가다 보면 그게 발전해서 멋진 파티문화가 발생하지 않을까?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집어넣어 멋진 우리만의 힙합 공연문화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겐 충분히 그만한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필자가 최근에 가입한 살사 동호회 ‘더 살사’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살사’는 비록 쿠바에서 뿌리를 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발생한 문화지만,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파티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로 훌륭하다고 본다. 강습 첫날은 누구나 무료로 배우고 상담할 수 있다고 하니, 한번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

 더 살사’는 상업적인 단체나 아카데미가 아니라, 순수 취미 동호회 단체라는 사실을 혹시나 싶어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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