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소셜 네트워크는 장및빛 미래를 약속하는가?

朱雀 2010. 11.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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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BBQ 4번 언급하면 1천만원’ 듣는 순간 부러워지는 이 이야기는 소설가 이외수의 실제 광고료다! 이외수는 광고를 찍었거나 자신의 초상권을 내준 것이 아니다. 그가 이런 광고료를 매달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는 다름 아닌 ‘트위터’다!

 

이외수의 팔로우는 11월 4일 현재 약 456,447명에 이른다. 그가 한번 말하면 약 456,447명의 팔로워가 모두 듣게 되는 것이다. 그뿐인가? 다른 트위터리안과 달리 이외수는 소설가로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누구보다 트위터를 열심히 이용하고 있기에 그의 팔로워들은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내가 알기론 한 개인의 트위터를 가지고 광고료를 지급한 사례는 BBQ가 처음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트위터를 광고로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소설가 이외수의 사례는 실제적인 연구사례가 될 수 있다.

 

그뿐인가?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트위터를 잘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도 기초 단체장을 뽑는 선거에서 투표독려를 위해 스타들과 명사들이 트위터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사례로 넘어가면, 버스에서 자신에게 어깨를 빌려준 남성을 찾는다는 한 여성의 애교 넘치는 사례를 우린 기분좋게 RT를 날려주며, 사고로 급히 혈액을 찾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RT를 누르면서 해결되길 바라고, 실종된 이들을 찾기 위한 타임라인의 글들을 보면서 역시 RT를 해주며 뭔가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때문에 우린 이전보다 정보를 훨씬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빠르게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소셜 네트워크의 혁명은 우리에게 ‘장및빛 미래’를 꿈꾸게 한다. 어떤 비양심적인 과자 회사가 벌레나 쥐가 들어간 과자가 시중에 유통되게 만들었을 때, 이걸 소셜 네트워크에 올림으로써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 받아낸다.

 

이전에도 꿈도 꾸지 못했던 유력정치인이나 학자와 연예인들의 소식을 직접 듣고,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한층 가까워진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과연 이런 소셜 네트워크의 혁명이 우리에게 장및빛 미래를 가져다 줄까? 우리나라 트위터 계정에 들어가면 가장 짜증나는 일 중에 하나는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역설하는 이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의 팔로워들을 마치 ‘추종세력’으로 착각해서, ‘어떻게 하라’고 지시할 경우가 많다. 조금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들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안티’를 외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근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발전이란 흔히 말하는 ‘피의 댓가’로 인해 얻어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실제적 행동이 따르지 않는 정치적 구호는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절대 아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을 탄압할 때, 트위터를 통해 사실을 알린다고 해도 그 사건을 막을 수 있을까?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동을 위해, 명예살인이란 끔찍한 일을 당하는 중동의 여성을 위해 소셜 네트워크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기술이 우릴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란 착각이다. 20세기 때 과학은 우리가 맞닥뜨린 모든 문제를 마치 해결해줄 것 같았다. 심지어 어떤 과학자는 TV에 출연해 ‘식량문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과실이 몇십 배 더 열리는 작물을 통해 해결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물론 그 이후 유전자조작을 통해 그런 작물이 실제 나오긴 했지만, 그만큼 대지에서 양분을 빨아들여 오히려 황폐하게 만들어버렸다.

 

소셜 네트워트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무엇일까? 첫 번째 소셜 네트워크 업체가 ‘기업’이란 사실을 우리가 잊는다는 것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결코 ‘자선업체’가 아니다. 그들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특정 정보를 넘겨줄 수 있다. 실제로 이 시간에도 각국 정보는 소셜 네트워크 업체들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이용자들의 정보를 얻어내고자, 정보를 통제하고자 애쓰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용

트위터에서 아무리 최고의 파워 트위터리안이라 할지라도, 운영자를 이길 수는 없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네오도, 설계자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두 번째는 ‘신뢰성’의 문제다! 정보란 단순히 빠르다고 해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정보가 믿을 만 해야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소식을 옆집 아줌아에게 듣는 것과 9시 뉴스에서 듣는 것은 ‘권위’에서 엄청난 차이를 발생한다.

 

세 번째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 상황에서의 ‘파급력’ 부분이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확실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 일지라도 실제로 사회에서 생활에서 ‘활동력’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말짱 도루묵’이다!

 

오늘날 사회는 그 어떤 시절보다 ‘개인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다! 대의명분에 사람들이 줄서는 1970-80년대와는 다른 시절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피부에 와닿는 확실한 구호에 줄을 선다. 그나마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없을 때 가능하다. 만약 시위를 하거나, 실제 행동에 옮겼을 때 고소나 고발 같은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런 소식 역시 트위터를 통해 순식간에 알려지고, 대중은 공포감에 휩싸이게 된다.

 

소셜 네트워크는 단지 하나의 기술 일 뿐이다. 물론 우린 이전까지 이렇게까지 강력한 ‘유통수단’을 가지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블로그처럼 개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이걸 트위터와 같은 SNS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에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혁명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혁명적인 일이 실제로 우리 사회를 바꾸고 장및빛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선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 기술은 우리를 편리하게 해줄 뿐,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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