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책마저 인스턴트화 되버린 시대

朱雀 2010. 11.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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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프레셔스~”

 

<반지의 제왕> 1편을 시청역 근처에 위치한 레퍼런스 극장인 씨넥스에서 보고 나는 벅찬 감동을 받았다. 거대한 원작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멋지게 영상화시켜낸 피터 잭슨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국내 번역된 원작을 다시 읽기 위해 집었다. 마치 절대반지의 마력에 취한 골룸처럼.

 

2001년 당시 갖고 있던 판본은 <반지전쟁>이란 제목으로 예문에서 출판한 3권짜리였다. 허나 나는 조금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독서 습관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반지전쟁>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절친한 친구가 추천해주었고, 그걸 읽으면서 엄청난 재미를 느꼈다. 두꺼운 3권짜리 책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읽을 만큼 재미있었다. 그런 책을 왜 나는 다시 읽을 수 없었을까?

 

바로 그 사이 읽은 책들의 패턴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읽은 책들은 일본이나 국내 소설이 주류를 이뤘다. 잘 알겠지만 요새 일본소설 특징은 문체는 간결하고 책장은 잘 넘어갔다. 미국현대소설 역시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 앞에서 확확 지나간다. 국내소설 역시 책장이 잘 넘어가도록 진행속도도 빠르고 읽기에 편하게 진화했다. 그러나 <반지전쟁>은 아니었다!

 

새 번역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반지전쟁>의 경우엔, 프로도가 호빗마을에서 벗어나는 데만 한참 걸린다. 영화에선 프로도가 갠달프를 만나 생일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순식간에 빨리 지나갔지만, 사실 책에선 한참이나 걸린다. 게다가 족보이야기가 나오면, 정말 그걸로 몇 페이지는 뚝딱 해치워버린다.

 

정말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탓인지, 등장인물들은 여유롭고, 전개 역시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아니 더디게 진행된다. 요새 기준으로 보면 속이 터질 정도로).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킬 만큼 빠른 전개와 쉬운 문체에 길들어진 나는 그런 <반지전쟁>을 다시 읽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세는 점점 심해져 가는 것 같다. 요새 국내소설은 일본 소설과 미국 소설의 장점을 많이 수용해간다. 점점 읽기 쉬워지고 전개도 영화 못잖다. 소설이 발달한 미국과 일본은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식의 발전(?)이 나쁘다고 생각진 않는다. 우리나라 성인 한달 평균 독서량은 불과 0.8권 수준이다. 1권도 되지 않는 참담한 현실에서 출판계가 보다 잘 읽히는 책을 제작하기 애쓰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쉬우면서 문학성까지 갖춘 작품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책에 길들여버린 나머지, 불과 몇십년 전의 책들은 잘 읽을 수가 없게 되는 게 문제다! 호흡이 지금보다 조금만 길어지면, 전개가 조금만 느려지면 요즘 독자들은 금방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해리포터> 시리즈는 책장이 잘 넘어간다. 중간에 의문점이 생기면 바로바로 친절하게 알려준다. 전 세계에서 3억부 이상이 팔린 시리즈지만, 안타깝게도 독서량 증가에는 기여를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뉴욕 타임즈를 인용한 2007년 7월 국내 언론 보도

  

해리 포터 ‘마법’ 독서습관 향상에 안통했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공전의 인기를 끌면서 어린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정작 어린이들의 독서습관을 길러주는 데는 마법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내에서 실시된 조사 결과, 해리 포터 시리즈가 나오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독서를 즐기는 학생비율이 줄어들기는 마찬가지인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미 교육진전평가센터에 따르면 해리 포터 시리즈 1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출간된 지난 1998년 조사에서 매일 독서를 하는 학생비율이 4학년 43%에서 8학년 19%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2005년 조사에서도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에서 멀어지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활동과 학습을 위한 독서량이 증가하고 책 이외의 다른 방법을 통해 즐거움을 찾는 경향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뉴욕 타임즈의 분석을 보면 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게임기와 아이팟 그리고 변화된 교육환경 등을 들지만, 내 생각엔 위에서 언급한 너무 쉽고 빠른 <해리포터> 시리즈의 전개방식 탓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으면 비슷한 판타지 물을 찾거나 다른 책에도 흥미가 생길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은 <해피포터>를 읽은 이들이 다른 책을 집어드는 경우는 없었다! 이건 <해피포터>는 ‘<해피포터> 독자들을 위해 최적화되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빠른 전개와 파격적인 설정은 분명히 요즘처럼 책에 관심없는 이들까지 호응을 자아냈지만, 그 이상은 일으켜 내지 못했다. 자그마치 3억부 이상 팔린 소설이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 사실은 전 세계적인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겠다! 쉽고 재밌게 전개하는 요즘 소설을 비롯한 책의 변화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변화된 환경에 맞춘 올바른 전개라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쉽고 재밌고 자극적인 책에 익숙해버린 나머지, 다른 스타일의 책을 읽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 -심한 경우 <해리포터>처럼 아예 다른 책을 손에 잡지 않게 된다. 오직 그 시리즈만 보게 된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화’ 시키는 자본주의의 특징은 책마저 그렇게 변화시킨 게 아닐까? 나는 그 변화가 한편으로 반가우면서, 다른 한편으론 씁쓸하기 짝이 없다. 참을성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흥미위주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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