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정글의 법칙’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朱雀 2010. 11.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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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위키백과


“정글의 법칙 몰라? 승자가 모든 걸 갖는 거야!”

 

3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 말은 실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성공한 기업인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때, 성공한 기업인들은 정치인과 적당히 결탁하고, 또한 이른바 ‘성공’을 위해 상대방 기업을 무너뜨리고 갖은 모략과 수법(때로는 치사하고 야비한 수법을 통해) 흡수-통합하는 형태로 몸집을 부풀리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인정하고 있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참 난감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대다수는 이런 식의 기업의 활동이 ‘옳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더러운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냐?’고 오히려 되물으며 적당한 수준에서 인정하려 든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국내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날처럼 무한 경쟁 시대에선 가능한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 이겨야한다고 말하면서 ‘정글의 법칙’이니, ‘약육강식’이니 하는 것을 들먹인다.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양심은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들이 신봉하는 ‘정글의 법칙’이니 ‘약육강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철저한 허구의 산물이다!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2009년은 ‘진화론’이란 혁명적인 이론을 선보인 다윈이 탄생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출판계에선 다양한 관련서적을 선보였다.

 

마침 ‘진화론’에 대해 궁금했던 때라, <다윈의 식탁>, <다윈의 대답>, <이기적 유전자>, <대담>,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등의 관련서적들을 한동안 탐독한 적이 있었다.

 

그런 서적을 읽으면서 ‘얼마나 진화론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는지, 동물의 세계에 대해 얼마나 오해했는지’ 뼈저리게 반성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중 ‘약육강식’에 대해 말해보겠다!

 

LONDON, ENGLAND - JUNE 02: An original copy of The Origin of Species which forms part of 'The Royal Society:350 Years of Science' exhibition is displayed in front of a portrait of Charles Darwin on June 2, 2010 in London, England. The exhibition at The Royal Society's headquarters forms part of The Society's 350th anniversary year celebrations and displays material from the Society's foundation in 1660 to the present day. (Photo by Peter Macdiarmid/Getty Images)


우린 흔히 동물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육식동물인 사자 같은 동물이 토끼와 사슴 등을 마구 잡아먹으면서 사는 세계를 떠올린다. 그런데 말이다. 사자 같은 동물도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수컷끼리 싸울 때도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흔히 짝짓기 계절이 돌아오면 암컷을 놓고 수컷 두 마리가 다투는 일은 흔한 일이다. 자손을 퍼트려야 하는 수컷의 입장에서 ‘암컷’을 놓고 벌이는 투쟁은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무리 격렬한 투쟁이라도, 어느 정도 승패가 결정되면 패한 쪽이 꼬리를 내밀고 내뺀다. 승자 역시 어느 정도 쫓아내는 선에서 이를 마무리 짓는다.

 

왜 그럴까? 승자나 패자나 정말 죽을 때까지 다투게 되면 한쪽이 이기더라도 큰 상처를 입게 되어 이후, 다른 수컷이 싸움을 걸어오면 방어를 할 수 없게 된다. 지는 쪽이나 이기는 쪽이나 그런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항상 투쟁은 마무리 된다.

 

이번엔 무리를 이루는 늑대로 잠시 이야기를 돌려보자. 늑대 무리를 이끄는 수컷을 흔히 ‘알파 늑대’라고 한다. 알파 늑대는 어떤 기준으로 뽑힐까? 힘이 세고 제일 용감한 늑대? 땡! 가장 현명하고 무리의 존경을 받는 늑대가 뽑힌다. 그리고 베타늑대라고 해서 힘이 센 늑대는, 무리의 말을 듣지 않는 말썽쟁이를 혼낼 때 나선다. 그나마도 혼내는 정도가 주둥이를 가볍게 무는 정도의 수준이다.

 

굳이 ‘악어와 악어새’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물의 세계에선 ‘공존공생’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건 사자와 늑대같은 육식동물부터 토끼나 거북이처럼 초식동물까지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우린 흔히 동물들이 힘을 내세워 함부로 자신보다 약한 짐승을 죽이고 괴롭히는 등의 상상을 하지만, 그건 우리 머릿속에서나 일어나는 판타지다! 사실은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동물들은 서로의 지혜와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하물며 동물도 그런데, 사람은 어때야 할까? 오늘날 우리식 자본주의는 흔히 ‘승자 독식주의’니 ‘천민자본주의’라는 식으로 불린다. 1등에게 모든 영광과 포상이 돌아가는 방식의 주입식 교육을 받은 우리는 사회에 나와 직장에 들어가면, 팀원과 함께 힘을 모으기 보단, 서로 경쟁상대로 여기고 투쟁을 벌이기 일쑤다. 다른 기업과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덕분에 같은 나라의 대기업끼리 해외에서 서로 상대방을 헐뜯고 심지어 사업을 번번이 방해한 일도 비일비재하다.

 

우린 흔히 ‘짐승만도 못한 놈’이란 욕할 때가 있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를 살펴보면 실제론 우리 인간이 짐승보다 못할 경우를 더 많이 목격할 때가 훨씬 많다. 동물마저 살아가기 위해 서로 힘을 함치고 지혜를 모으는데, 자본주의 사회를 ‘정글’에 비유하며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기려고만 하는 우리를 볼 땐,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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