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땅에 떨어진 한국의 도덕, 어찌하오리까?

朱雀 2011. 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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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연히 지하철에서 한 모자간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나 이번에 우리 딸 남자친구 반대다.”

“네. 너무 착하게 생겼더라구요.”

“그래. 무능력하고, 제 앞가림 못하겠더라. 사람이 좀 약아야지. 요즘 세상 같은 세상에... 쯔쯔쯔.”

 

‘착하다’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조짐이 안 좋긴 했지만, 설마 딸 남자친구를 반대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니... 듣는 순간 눈물이 날 정도로 서글퍼졌다. 오늘날 대한민국 도덕의 현주소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덕목은 ‘경제력’이다. 가끔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성공을 위해선 어느 정도 비리’를 저질러도 용납하는 태도를 볼 수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이의를 제기하면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쯤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를 감수해야 했다.

 

답답했다. 지난 2010년을 가장 뜨겁게 달군 화제작인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인문학 도서로는 드물게 70만부 이상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왜 도덕인가?> 역시 약 1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안다. 내가 두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수준이 이렇게 높았나?’였다.

 
 

거꾸로 해석해서 이런 어려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정의’와 ‘도덕’에 대한 갈망이 상당하다는 반영일 것이다. 우린 흔히 누군가의 ‘안티’를 주장하면서 손쉽게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다.

 

어떤 이는 정치인에게, 어떤 이는 북한정권에게, 어떤 이는 재벌에게 각각 ‘안티’를 외치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쉽게 개개인의 정당성은 획득될 수 있는 것일까?

 

‘정의란 결국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정의란 무엇인가?>에선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왜 도덕인가?>란 책은 필연적이다. 정의를 논하기 위해선 그 바탕이 되는 도덕을 알아야 하고, 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하다’라는 말이 한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무능을 뜻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쥐식빵’ 사건처럼 자신의 이득을 위해 기꺼이 양심을 속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뿐인가? 경춘선 복선전철화로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춘천을 찾자, 일부 상인들은 춘천닭갈비와 막국수의 값을 1천원 이상 슬그머니 올려버렸다.

 

쥐식빵 사건과 이번 춘천닭갈비 인상건은 우리의 도덕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두 사건에는 각각 경중이 있다. 쥐식빵건은 자작극이 드러났으니 처벌을 면키 어렵고, 춘천닭갈비 인상건은 약간의 손가락질을 받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보면, 둘 다 똑같이 잘못된 일이다. 그 책임은 우리 모두 면키 어렵다. 우선 ‘쥐식빵’건을 생각해보자. 사건을 일으킨 이는 뚜레쥬르 체인점을 운영하면서 빚지게 된 돈을 빨리 갚기 위해, 인근의 파리바게트 체인점들에게 타격을 줄 목적으로 일부러 죽은 쥐를 넣고 식빵을 구웠다.

 

생각해보자! 이는 유치원생에게 물어봐도 ‘그건 나쁜 짓이에요’라고 (0.1초의 생각도 하지 않고) 답이 돌아올 일이다. 즉 사건 당사자가 이런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

 

만약 현재 많은 사람들이 프랜차이즈 빵집이 아니라 동네 빵집을 이용했다면? 경제적 이득보다 도덕을 우리가 중요시 여겼다면? 그래도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춘천닭갈비건도 당장의 눈앞의 이득을 위해 춘천을 찾아오는 이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는 데서, 도덕적인 부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필자는 과연 우리에게 ‘도덕’과 ‘정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회의적이다! 그러나 절망만으론 현 상황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질 못한다. 어떤 이는 우리 사회가 개인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바뀌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린 쥐식빵 사건과 닭갈비 건을 보면서 몹시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여기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린 지금이라도 땅에 떨어진 도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보편 상식적인 것들이 통용되는 세상이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린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론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착하다’라는 말이 비난이 아니라 칭찬이 될 때, 비로소 도덕의 기초가 세워졌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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