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1세기 초강대국?!

중국에서 기술혁신은 절대 불가능하다?!

朱雀 2011. 1.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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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 기관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2005년 닭의 해, 프랑스학자 기 소르망은 특별한 결심을 한다. 바로 ‘중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 1년간 직접 살기로 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기 소르망은 굳이 중국을 알기 위해 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주 (이전까지 누구보다) 중국을 방문했으며,  오랜 시간 연구해온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중국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 굳이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기 소르망은 ‘실천하는 지식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중국이라는 거짓말>은 그가 1년간 중국에서 외면 받는 이들, 그러니까 반체제 인사부터 평범한 농부, 에이즈에 걸린 근로자 등등을 직접 인터뷰하며 얻은 나름대로의 결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중국이라는 거짓말>은 시종일관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기 소르망은 오늘날 중국에선 ‘기술혁신은 절대 불가능하다!’라고 못박는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중국공산당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부패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종교활동 조차 공산당의 허락과 입회하에 가능하다. 공산당은 그야말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인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당간부와 사장들은 ‘돈’만을 추구한다. 하여 서로 뇌물을 주고 일을 진행하면서, 근로자들의 희생을 강요한다. 우리 생각엔 ‘근로자들이 뭉쳐서 항의나 투쟁을 하면 바뀌지 않을까?’싶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행위를 하는 것을 진저리 칠 만큼 싫어하는 공산당은 요구를 묵살하며 총칼등으로 진압하기 일쑤다. 따라서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기술이 발달한 나라의 기술을 합법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기 소르망은 그런 방법은 인정한다. -실제로 그러고 있으니까- 그건 혁신이 아니라 모방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넘어가 버린다.

 

위조품 천국인 중국의 내부 사정에 대해선 ‘모방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모방에서 창조’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특허가 전혀 인정되지 않으며, 중국공산당을 찬양만 하는 앵무새로 만드는 교육 때문에 창의성이 절대 발달할 수 없다며 더욱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변호한다.

 

정말 중국에선 기술혁신이 불가능할까? 개인적으로 기 소르망의 의견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기 소르망의 지적은 그가 관찰해서 얻은 결론인 만큼 상당히 신빙성 있고, 무섭게 떠오르는 중국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매우 솔깃한 의견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기술 혁신’이 가능하다고 본다. 우선 그 원동력은 중국의 수 많은 유학생에서 찾는다. 한해 중국에서 미국-일본-유럽 등으로 떠나는 유학생 수는 2009년 기준으로 약 22만5천명에 달하고 있다. 기 소르망에 따르면 이중 절반정도가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창의성은 하루 아침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느 순간 생겨난다고 본다. 해외 유학을 떠나는 중국 유학생들은 대다수 고위 간부거나 대기업가의 자녀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중국인들에 비해 자유롭고, 해외 유학생활을 거치면서 다양한 기술과 가치를 배워온다. 이들 가운데는 충분히 ‘기술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인재가 있지 않을까?

 

다음은 ‘돈’이다! 세계에서 지전을 태워서 넋을 위로하는 이들은 오로지 중국인들 밖에 없다! 돈에 대한 중국인의 집착은 전 세계최고라고 해도 좋다. 이는 중국의 역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끊임없는 전란에 시달린 이들은 ‘돈’에 얽매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음식을 사든, 도망을 가든 결국 돈으로 귀결되니까- 따라서 목숨처럼 소중한 돈을 벌기 위해 중국인들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뇌물을 바치고, 다른 나라의 기업까지 사들이는 이들이라면,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기술자를 사거나, (필요하다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비슷한 예로 중국엔 ‘짝퉁’이라 불리는 모방품을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이들은 전자제품부터 명품백까지 못 만들어내는 것이 없다. ‘창의성’은 모방부터 시작된다. 만약 이들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돈’만 된다면 말이다.

 

오늘날 중국인은 시장경제의 맛을 충분히 본 상태다. 따라서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 토양에서 창의성의 발현이 더욱 쉽다. 그러나 아무리 통제된 상황이라고 해도 인간의 간절한 욕망은 모든 난관을 뛰어넘기 마련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우리가 보기엔 요상하기 그지 없는 제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돈을 절실하게 원하고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라면 ‘기술 혁신’역시 어느 정도까진 가능하지 않을까?

 

기 소르망은 <중국이라는 거짓말>에서 ‘중국은 환상’이며,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는다. 나는 그 말을 기 소르망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것은 1789년이다. 따라서 그때부터 쳐도 프랑스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은 겨우 2백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이전까지 중국에 비해 모든 문명이 뒤처지던 서구유럽의 처지를 역전시켜 놓았다.

 

기 소르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살아오고 향유한 가치만을 ‘선’으로 여긴 게 아닐까? 유럽 역시 아동과 여성의 과도한 노동과 낮은 임금 그리고 환경오염 등을 비롯한 갖가지 문제와 모순을 극복해내고 풍요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중국 역시 갖가지 문제점을 지니고도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 소르망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은 아닐지 책을 읽는 내내, 그에게 묻고 싶었다. 
 

참고: <중국이라는 거짓말> <중국 읽어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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