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1세기 초강대국?!

장제스의 국민당 몰락이 미국에 일으킨 엄청난 파장

朱雀 2011. 1.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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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총통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요즘 읽고 있는 <콜디스트 윈터>는 무려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대작이다. 무엇보다 천 페이지가 넘는 육중함 덕분에 위기의 순간에는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다음은 뉴저널리즘의 창시자로 일컫어지는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무려 10년간에 걸쳐 한줄 한줄 집필한 덕분에 6.25전쟁에 대해 입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미국에게 6.25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콜디스트 윈터>를 보면 인상적인 구절이 하나 있다. 그가 한 주립도서관을 찾아갔는데, 베트남 관련 서적은 88권정도 있었지만, 정작 6.25전쟁에 대해선 겨우 4권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는 단적으로 미국이 6.25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기억하기 싫어하는 수치스런 기억이다. 엄청난 물량을 동원하고도 결국 실패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6.25 전쟁은 그냥 ‘잊혀진 전쟁’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럴까? 1950년 당시 미국의 트루먼 정권은 ‘전쟁이냐?’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경찰 업무’라고 애매한 표현을 했다. 말장난이라면 마오쩌둥 역시 지지 않았다. 100만명이 넘는 중공군을 투입하고도 ‘지원군’이라고 표현했으니 말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이런 표현을 한 것은 미국은 소련을, 중국은 미국을 자극하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이 받는 입장 때문에 서글퍼질 것이고, 미국의 입장에선 6.25전쟁은 엄청난 오판을 했고, 결과도 최악에 가까웠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미국이 아시아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함으로써 소련과 중국 등을 오해하게 만들었고, 개전 초기부터 끝까지 오판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콜디스트 윈터>를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이 몇 있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장제스 국민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 중국에선 미국입장에선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바로 장제스 정권이 몰락해서 대만으로 떠나고,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1949년)을 선포한 사건이었다.

 

이는 미국인들과 정치권에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왜일까? 소련에서 공산당이 집권했을 때와 중국 공산당이 집권했을 때 미국의 반응은 확연하게 달랐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우선 그 이유를 ‘중국’에 대한 환상에서 찾는다.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당시 미국인들에게 중국은 유순한 농부들이 논밭에서 일하고, 미국을 선망의 눈길로 쳐다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한다는 말도 안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선입견은 장제스와 그의 부인인 쑹메이링이 더욱 부채질했다. 송가황조라 불리는 집안의 셋째딸인 쑹메이링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학한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장제스는 국민당에서 집권하기 위해 첫째부인을 버리고, 쑹메이링과 결혼했고 송가집안 덕분에 미국인들에게 연이 닿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원조를 받게 된다.

 

당시 미국인들은 미국인 선교사 수천명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선교를 했고, 이들은 상당수가 미국 본토의 유력 가문등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환상은 커졌고, 그들은 중국을 지원하면 언젠가 ‘미국화’되리라는 환상을 더욱 증대시켰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도 장제스 정권이 부패하고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장제스 정권을 돕기 위해 파견된 군사 고문 조지프 스틸웰이 1942년부터 말했기 때문이다. 많은 미국의 정치가들과 군인들이 장제스 치하의 중국을 찾아와 그의 무능함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면 ‘장제스는 잘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기존에 중국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커서 바른 말을 했다가는 유력 정치가들과 대립하게 되고, 자신의 경력이 끝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실제로 바른 말을 했던 기자와 정치가들은 상당히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장제스를 도왔다. 첫 번째는 세계대전에 참가한 것 -전적으로 중국에 있는 일본군하고만 싸웠고, 그것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두 번째는 자신이 갖고 있는 환상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장제스가 훌륭한 정치가가 되리라는 허황된 믿음이었다.

 

루스벨트에 이어 트루먼이 대통령이 되기 불과 몇 달전에 장제스의 국민당은 몰락했고, 이것은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혼란을 촉발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의 아버지가 피땀을 흘려 선교한 나라가 공산화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소련에 이어 엄청난 영토와 인구 수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붉은 깃발이 휘두르는 사실은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 정계를 휩쓸고, 스탈린과 김일성의 예측과 달리 미국이 6.25전쟁에 참여한 것은 장제스 정권의 몰락에 의한 결과였다. 미국은 장제스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마오쩌둥이 미국과 곧바로 수교하길 원할거라 기대했다니, 얼마나 중국에 대해 오판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2차 대전이후 세계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그렇게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믿는 엉성한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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