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방송을 시작한 밤 11시에 하는 수목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 4화까지 보았다. 이런 말을 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엔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이거 대박감인데?’
<인현왕후의 남자>는 중의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남자 주인공인 김붕도(지현우)는 홍문관 교리로서 서인이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폐위된 인현왕후의 복위다. 따라서 그는 ‘인현왕후의 남자’이다. 동시에 그는 21세기 서울에서 <신(新) 장희빈>에서 인현왕후역을 맡은 여배우 최희진(유인나)와 우연히 계속 만나게 되면서 서로 인연을 쌓게 된다.
이것이 <인현왕후의 남자>란 제목이 지니는 또 다른 의미이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인현왕후의 복위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붕도가 우연히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부적을 얻으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타임슬립’이란 소재만 놓고 보면 왠지 <옥탑방 왕세자>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옥탑방 왕세자>는 1화에서 우연한 사고(?)로 왕세자 이각이 21세기 박하의 옥탑방에 온 이후로 줄곧 ‘환생’을 부르짖고 있다.
따라서 ‘환생물(?)’이라고 보는 게 더욱 적합할 듯 싶다. 이에 반해 <인현왕후의 남자>는 주인공인 김붕도가 계속해서 1694년 숙종시대와 2012년 서울을 왔다갔다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이전까지 국내 드라마로선 보기 드문 예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인현왕후의 남자>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1화에서 지현우는 화려한 칼솜씨를 선보였다! 그는 인현왕후를 암살하려는 남인세력이 보낸 자객들을 단숨에 처치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뿐인가? 자신을 쫓는 자객들로부터 숨기 위해 말과 함께 숲에 넘어져 있다가, 다시 함께 일어서는 묘기(?)까지 선보였다.
2화에서도 엿보이지만, CG를 비롯한 특수효과 역시 드라마를 넘어서 ‘TV무비’급이다! 2화 마지막 장면에선 김붕도가 21세기로 다시 넘어오는데, 남인 세력이 보낸 자객과 함께 오게 된다.
김붕도는 대결하는 과정에서 자객을 베게 되고, 이때 피가 최희진의 원피스에 튀게 된다. 그런데 자객이 죽자마자 튄 피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죽은 시체역시 마치 미라처럼 변하더니 이내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야말로 현란한 CG였다!
이런 식의 CG는 여러차례 등장한다! 김붕도가 조선시대에서 21세기로 오는 방법을 알기 위해 하인에게 일부러 화살을 쏘게 하자 연기처럼 사라지고, 21세기 광화문을 보고 혼란스러워 하던 그가 1694년 조선시대를 떠올리면서 빌딩과 도로가 사라지고 조선시대 풍경들이 되살아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볼거리를 선사한다.
여기까지 말하면 <인현왕후의 남자>가 마치 볼거리에만 치중한 것 같지만, 무엇보다 <인현왕후의 남자>의 가장 큰 장점은 치밀하고 전개가 빠른 대본에 있다!
2화에서 김붕도를 도와주던 윤월이란 기생은 남인의 거두 우의정 민암에게 정체가 발각되어서 바로 붙잡혀 간다. 그뿐인가? 4화에선 남녀주인공인 김붕도와 최희진이 키스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공중파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개속도가 매우 빨라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한 미드에 익숙해진 20~30대에게 <인현왕후의 남자>의 전개는 아마 구미에 딱 맞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조선시대와 21세기 현대를 오고가는 데도 딱히 이상한 대목을 찾을 수 없는 대목은 정말 칭찬하고 싶다! 이를테면 김붕도는 서인의 몇 안남은 세력으로 거대한 남인세력과 대항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21세기 서울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실마라를 찾고자 애쓰는 그의 모습에선 저절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아울러 조선시대에는 액션사극으로, 21세기 서울에선 코믹멜로로 두 가지 장르를 혼합한 제작진의 도전엔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다. 얼핏 들어선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조합이 현실로 가능해졌다!
이를테면 김붕도가 사는 숙종시대는 남인이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김붕도를 비롯한 서인세력을 몰살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따라서 음모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칼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긴장감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세월을 건너 뛰어 서울에 도착하면 김붕도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은 없다. 거기엔 자신을 두고 ‘미인’이라고 말하고, 내내 툴툴거리는 귀여운 최희진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긴장을 풀고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21세기에 적응하면서 ‘조선왕조실록’등을 읽으면서, 앞으로 대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은 충분히 시청자의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두 남녀주인공의 연기 역시 상당하다! 유인나는 현대극에서 주로 통통 튀는 말괄량이 역을 맡아왔다. 물론 이번에도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그녀는 5년간 무명여배우였다가, 어렵게 <신 장희빈>에서 인현왕후역을 맡았다. 따라서 그녀가 최선을 얼마나 하는지는 눈에 선하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숙종시대 인물인 김붕도를 만나서 믿지 못하고 내내 의심하다가, 결국 도와주면서 자꾸만 그의 매력에 빠져드는 자신을 보면서 ‘이러면 안돼’라고 말할 때는 그녀의 기존의 백치미와 더불어 특유의 순수한 매력이 더해져서 그야말로 이전까지 그녀가 맡았던 배역에선 볼 수 없었던 아우라를 뿜어낸다.
지현우는 또 어떠한가? 2화까지만 해도 사극에서 너무 현대틱한 말투를 구사하는 그를 보며 ‘아!’라고 탄성을 내쉬었다. 그러나 3화로 건너오자 그는 여유를 가지더니 자신을 보고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최희진을 향해 ‘나는 여기선 바보오. 그대 마음대로 생각하구료. 나도 믿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설명하겠소’ 등의 대사를 정말 300년을 점프한 과거인물처럼 내뱉었다.
<인현왕후의 남자>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무엇보다 디테일이다! 300년을 뛰어넘은 김붕도가 21세기에 적응하기란 사실상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가 ‘천재’라는 설정이 보태졌다. 그는 3화에서 경복궁에서 스탭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몰래 그들의 옷을 훔쳐내서 흉내내서 입음으로써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김붕도가 상대해야할 남인의 거두 우의정 민암역의 엄효섭. <선덕여왕>에서 염종역으로 보여준 내공을 다시 한번 선보인다!
지현우는 300년을 뛰어넘는 김붕도의 어리둥절함과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연기해낸다!
4화에서 그는 최희진이 하는 행동을 잘 보았다가, 아라비아 숫자를 읽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동차에 올라타서 안전띠를 메는 등의 행동을 통해 관찰력과 통찰력 무엇보다 기억력이 좋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은 이후 그가 현대에 적응해서 보여줄 모습에 대해 상당한 근거를 제시해서 시청자가 드라마를 볼 맛을 더욱 느끼게 했다.
지현우의 부드러운 미소와 목소리는 국내 드라마 최초인 9등신 꽃미남이 현실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그런 지현우를 보며 빗속에서 반하는 유인나의 눈빛엔 정말 사랑이 아로새겨진 느낌을 팍팍 받게끔 한다. 그야말로 편집과 대본과 배우들의 연기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진 드라마였다!
<해품달>을 비롯한 최근 작품들을 보면 시간 탓인지 무슨 사정인지 전개속도는 늘어지고, 배우들의 로맨스만 강조되고, 편집은 엉망인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인현왕후의 남자>는 전개도 빠르고 편집도 완벽하며 배우들의 연기까지 조화로운 그야말로 최상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공중파에서 흉내내기조차 어려운 완성도를 4화에서 이미 보여준 <인현왕후의 남자>가 앞으로 어떤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지 더욱 기대된다. 케이블 방송인 tvN에서 이번에 제대로 한번 사고를 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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