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치앙마이 표류기

낭만적인(?) 치앙마이 멕시코 음식점의 추억, ‘더 살사 키친’

朱雀 2013. 2.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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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의 일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태국까지 와서 이곳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는 건 바보(?)라고 생각했다. 치앙마이엔 손쉽게 일식집을 비롯해서 파스타를 파는 곳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곳들을 밖에서 보면 외국인들이 주요 고객인 경우가 많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더 살사 키친(THE SALSA KITCHEN)’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국까지 와서 남미음식을? 이상하잖아?’라고 생각했었다.


 


호기심에 밖에 나와있는 메뉴판의 가격을 보니 치앙마이 물가를 고려하면 비싼 편이지만, 먹음직스러워 보이니 세트메뉴가 200바트로 약 8천원도 되질 않았다. 


그래서 태국음식이 슬슬 물려질 때쯤 찾아가 보았다. 태국인들도 파스타나 일식집 등을 많이 찾아가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에선 단 한명의 현지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태국인의 입맛엔 딱히 달지도 않고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는데, 터무니 없이 비싼(?) 멕시코 음식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별 생각없이 199바트짜리 세트메뉴를 시키고 나니, 아뿔싸! 이건 1인분의 양이 아니었다.

 


큼직한 타바스코에 부리또에 나초에 게다가 밥과 샐러드까지. 이건 하나를 시켜서 둘이 먹어도 배를 팅팅 칠 정도의 양이었다. 한국이라면 양이 제법 된다고 알려줬을 텐데, 외국인들은 혼자서 세트메뉴를 시키서 무리없이 잘 먹으니 상대적으로 왜소한 우리 역시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알려주지 않았나 보다. -어쩌면 종업원의 입장에선 매출에 도움이 되니까 힌트(?)를 안 준지도 모르겠다-


작은 한숨을 쉬고 조금 먹고 있으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지 보름만에 처음 비를 봤는데, 그 귀한 비(?)가 연 이틀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비가 갑자기 많이 오자, 식당안이 깜깜해졌다! 정전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당황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그러려니’하고 하던대로 식사를 했다. 다들 처음 겪어보는 일이 아닌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친구가 별 생각없이 장난삼아 작은 목소리로 ‘키스타임’이라고 외쳤는데, 남자끼리인 내 입장에선 갑자기 친구를 남겨놓고 도망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어쩔 수 없이 어둠속에서 식사를 조금 하고 있으려니, 안에서 촛불을 가져다가 식탁에 올려주었다. 깜깜한 식당안에서 촛불만이 켜 있으니 낭만적이었지만, 남자 둘이서 그러고 있으려니 이곳저곳 안 가려운 곳이 없었다. 연인끼리라면 모를까 남자 단 둘이서 촛불아래 서로 마주본 상태에서 있으려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다. 


둘다 서둘러 마치고 식당문을 나섰는데,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친구를 먼저 보내고 잠시 동안 밖을 구경했다. 


비가 귀한 탓일까? 가랑비 정도로 내리는 비를 거의 대다수가 우산없이 맞으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휴양을 위해 온 도시인 치앙마이에서 지나가는 사람의 절반정도는 관광객으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었다.


굉음을 내면서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 차량들의 헤드라이트에 비춘 빗방울들. 어두운 차도에서 요령껏 차도를 건너는 사람들. 치앙마이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더 살사 키친’의 음식 맛은 괜찮았다! 199바트에 이르는 살인적인 가격(?)을 고려해도 충분히 그러했다. 남미까지 갔다온 친구가 ‘남미보다 낫다’라고 했으니, 괜찮은 수준이리라.


그러나 생각해보니 한편 웃기기도 했다. 태국 치앙마이로 관광온 외국인이 태국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멕시코 음식점에서 부리또를 먹는다니. 뭔가 이질적인 것들이 몇가지가 섞여서 코미디 같은 상황이 된 것 같았다.


깟산까우 바로 앞 맞은편 거리에는 ‘더 살사 키친’말고도 일식집과 한국 갈비집을 비롯해서 손쉽게 외국(?) 요리점을 찾을 수 있다. 관광의 나라 태국인 만큼 다양한 입맛의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음식점은 널려 있다. 


태국 전통 음식점은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30~50바트 정도로 저렴하며 맛도 괜찮다. 나 같은 외국인들은 그런 음식도 먹지만, 이렇게 태국과 아무런 상관없는 비싼 요리(?)를 사 먹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쉽게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건 편리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동시에 뭔가 모순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나라를 가는 것은 그 나라를 더 잘 알기 위한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식문화는 가장 중요한 부분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태국의 너무나 잘 발달된 시스템을 이용하면, 마음만 먹으면 태국음식은 단 한개도 먹지 않을 수 있을 정도다.


쇼핑과 음식점만 놓고 따지자면 그 종류와 가격 그리고 맛에서 너무나 큰  경쟁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장점이 역으로 태국적인 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서 숙소에 도착해보니 한 가지 아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의 숙소 역시 정전이 된 구역에 속해있었던 것. 저녁 7시쯤 시작된 정전은 9시쯤 되어서 회복되었는데, 그 동안 필자는 어둠 속에서 앉아 있어야만 했다. 태국 치앙마이 정전의 추억(?)은 나름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어떤 면에선 낭만적인,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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