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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말하다

중국은 과연 존재하는가? ‘차이나는 도올'

조금 도발적인 제목을 달아보았다. 어제 ‘차이나는 도올’에서 도올은 ‘중국은 있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도올의 말처럼 19세기만 해도 중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청나라가 있을 뿐이다.



두번째 질문은 더 난감하다. ‘공자가 중국 사람인가?’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공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노나라 사람이었다.



노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작은 도시국가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따라서 공자는 오늘날의 개념인 중국이란 틀로 대입하면 중국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오늘날의 개념으로 역사를 논한다는 것은 상당한 오류의 가능성을 안을 수 밖에 없다. 








도올이 목소리 높여서 말한 것처럼 역사란 ‘관점’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한국 역사와 중국 역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동북 아시아에서 벌어진 역사를 어디까지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국가’라는 20세기의 산물로 역사를 논하면 엄청난 오류의 가능성을 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면서 도올 김용옥 교수는 조선 최고의 사상가인 이율곡이 19세때 경험담을 적고 이야기했다. 16세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돌아가시고, 19세때 이율곡은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어느날 그는 한 고승과 마주하게 된다. 그와 논박하면서 엄청난 말들이 오고간다. 이율곡은 불교를 ‘오랑캐의 가르침’이라면서 유교와 비교할 수 있는지 도발한다. 이에 대해 고승은 ‘중국의 가장 존경받는 성군 순임금도 동쪽 오랑캐고, 주 문왕 역시 서쪽 오랑캐요’라고 반격한다.







그 뒤에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지만 그 이야기는 논점에서 다소 벗어나기 때문에 좀 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이율곡과 고승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어제 방송을 찾아보기를-. 우린 ‘삼국지’등의 고전을 읽어서 ‘흩어지면 뭉치고, 뭉쳐지면 흩어진다’는 식의 중국식 논법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 중국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이 중원대륙을 통일한 경우는 전체역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한나라와 명나라 정도로 알고 있다. 수나라는 이민족이었고, 그 뒤를 이은 당나라 역시 이민족이다(한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명나라의 뒤를 이은 청나라는 동이족이었다. 따지고 보면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우리와 조상이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만주족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에 편입될 수 있을까? 오늘날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킨 원나라를 보자.



원나라는 몽고족이 세웠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그리고 몽고족의 후손들은 ‘몽골’이란 나라를 세우고 자신들의 문화와 풍속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제쳐두고 ‘원나라를 중국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아무리 봐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상하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이민족들이 중원을 통일하고 왕조를 이어가다가 스러지고, 다시 통일하는 식으로 반복했다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그걸 ‘중국의 역사’로만 규정하기에는 분명히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그런 역사 서술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어떻게 봐야 할지 좀더 심도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가면 고대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중국이 있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것엔 고대 역사를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 안타까워서 일 것이다.



우리에게 고조선은 전설에 가깝고, 부여, 9백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진 고구려 그리고 발해에 대해선 너무나 자료가 부족하고 이에 대한 연구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도올의 지적대로 ‘우리 민족의 위상은 무엇이고,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우리 역사학의 최대 과제일 듯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이란 있을 수 없다.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면 우리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할지 많은 고민과 건설적인 토론과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선입견이나 편견없는 시선 역시 매우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