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임진왜란은 왜 불행한 역사의 사건인가? ‘차이나는 도올’

朱雀 2016. 5.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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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도올’ 11화에선 ‘명량’의 김한민 감독을 초대해서 ‘임진왜란의 뒷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먼저 시작되었다. 1592년 4월 13일 오후 4시 부산을 통해서 약 500여척에 5만여명의 왜군이 쳐들어왔다.



만약 이때 부산을 지키던 장수가 무려 20시간이 넘게 현해탄을 건너온 왜군의 움직임을 수상하게 여기고, 김용옥 교수의 표현대로 ‘불화살만 제대로 날렸더라도’ 어쩌면 하룻만에 임진왜란은 끝날 수 있었다. 상륙을 했더라도 호남지방을 이순신 장군이 철통같이 지켜서 보급로를 완전히 끊었기에, 한강에서 제대로 막아냈다면?



쉽게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역사에선?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북으로 북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선조는 조선사에서 최초로 적자가 아닌 서자가 왕이 된 케이스였다. 그런 탓이었을까? 선조는 컴플렉스 덩어리였다. 그래서 율곡 이이 같은 현명한 신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고, 이순신 장군처럼 정말 기적처럼 조선에 나온 장수를 의심하고 질투했다.



자신이 도성을 버리고 피난길에서 백성들의 야유를 받는 것과 달리 이순신 장군은 연전연승하며 백성들의 환호가 올라가니 반란을 획책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그려진 것처럼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받고 투옥되어 무려 세 차례에 걸쳐 고문을 당했다.






상식이 있는 왕이라면 조선수군의 유일한 장수에게 모진 고문을 가할 수 있었을까?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조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명이 불가능한 인물이다. 그저 컴플렉스 똘똘 뭉쳐진 삐뚤어진 인간일 뿐이다.



그가 임진왜란이 끝난후 공신록 ‘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의 내용을 보면 ‘어이가 없네’라는 유아인의 명대사를 계속해서 내뱉을 수 밖에 없다. ‘이번 왜란의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명나라 군대의 공에 의한 것’으로 시작하는 공식기록엔 이순신 장군의 권율 장군의 공마저 비하해서 적고 있다.



선조는 오로지 자신이 명나라 군대를 요청했기에 임진왜란을 끝낼 수 있었고, ‘이순신 장군의 공보다 피난 당시 자신의 말을 끈 내관 김응수의 공이 더 크다’라며 어처구니없는 공신책봉을 한다.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찾지 못했기에 38년후 ‘병자호란’같은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또 겪게 된 것이리라.





역사를 살펴보면 청나라는 초기에 조선과 전쟁할 뜻이 없었다. 따라서 광해군이 그랬던 것처럼 외교적으로 적당한 자세만 취했다면 병자호란은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조선은 오판했고,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해야만 했다.



우린 효종의 북벌론에 왠지 가슴이 뛴다. 그러나 조금만 냉정하게 보자. 청나라는 당시 매우 강성한 국가였다. 겨우 조선따위가 10만 군사를 양병한다고 해서 게임이 될 상대가 아니었다.  재조지은(再造之恩)이란 말도 안되는 논리로, 효종은 ‘멸망한 명나라를 위해 청나라를 친다’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여기엔 아버지 인조의 피맺힌 원한도 있었을 것이다. 효종은 말그대로 효자였으니까.



그러나 도올 김용옥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미친’이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정세에서 강대국의 흥망을 보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지 고심하고 행동해야할 이가 누구던가? 바로 왕이고 대신들이 아니던가? 그런 수뇌부들이 전혀 실현가능성 없는 허무맹랑한 ‘북벌’에 힘을 쏟았고, 명나라가 망했는데도 고종때까지 ‘숭정’이란 연호를 쓴 것은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일 뿐이다.





임진왜란은 무척이나 끔찍한 사건이었고, 무려 7년에 걸쳐서 백성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선조는 이에 대해 전혀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고, 피난길에 자신을 야유한 백성들에 대해 분노만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과 같은 관군과 스스로 일어난 의병들이 일치단결하여 물리쳤다.



이는 정말 ‘위대한 승리의 역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될 조정이 북으로 북으로 도망간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오죽하면 도올 김용옥 교수는 이를 ‘세월호 참사’에 비교했을까? 지도자란 왜 존재하는가? 조정이 왜 존재하고,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 



위기에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하고 최대한 국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조선왕조의 왕과 신하들이 보여주는 선택과 행동은 그저 후손들인 우리가 보기에 분통과 울분이 터질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다. 거기서 교훈을 얻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임진왜란을 겪고도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기에 조선왕조는 병자호란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역시 마찬가지다. 전혀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고 세상의 변화에 무지했기에 우린 나라를 잃어야만 했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웠는가?’란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는 게 무척이나 안타깝다. ‘차이나는 도올’을 보면서 유난히 가슴 아프고 눈물나는 방송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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