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열전

재발견된 이민정의 아쉬운 영화속 연기

朱雀 2009. 11. 1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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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일 개봉예정인 <백야행>에서 회장비서 시영역을 맡아 열연한 이민정

개인적으로 올해 재발견된 여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이민정을 들고 싶다. <꽃남>에서 재벌 2세로 분해 순식간에 인기와 명성을 쥐어진 그녀를 필자는 처음엔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꽃남>의 인기를 등에 업고 여러 편의 CF를 찍은 그녀를 보면서 벼락스타라는 강한 편견을 갖게 되었다. 한 때의 인기를 업고 쉽게 큰 돈을 버는 인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 웃어요>에서 연기를 보면서 필자의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비록 ‘재벌 2세’라는 측면은 비슷했으나, 쫄딱 망해 자신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얹혀 사는 집의 강현수(정경호)와 알콩달콩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그녀의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드는 탓이었다.

<그대 웃어요>를 통해 필자는 이민정의 만만찮은 연기내공과 작품을 보는 심미안을 깨닫게 되었다. 성균관대 연기 예술학부에서 연출을 전공한 이민정은 지도교수의 눈에 띄여 뒤늦게 연기에 발을 들였고, 오랫동안 연극무대에서 제법 연기력을 쌓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밑바탕이 오늘날의 녹록치 않은 연기력을 보여주는 그녀를 만들었다고 여겨졌다.

<펜트하우스 코끼리>에서 성형외과의사의 부인으로 남편 친구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수연을 연기한 이민정. 예상과 달리 팜므파탈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여, 올 하반기에 출연한 두편의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와 <백야행>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몹시 기대되었다. <펜트하우스 코끼리>에서 그녀가 맡은 수연역은 바람둥이 성형외과 부인으로 남편의 친한 친구와 불륜에 빠지는 ‘팜므파탈’로 소개되었다. 또한 손예진-고수-한석규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백야행>에서 그녀는 회장비서로 출연해, 이전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되었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난 지금은 솔직히 상당히 실망스럽다. 따지고 보면 그녀가 연기를 못한 것도 아니고, 뭔가 잘못된 설정을 지닌 것도 아니다. 기대가 너무 컷던 탓일까? 아무래도 실망스럽다는 느낌을 감출수가 없다.

우선 <펜트하우스 코끼리>의 경우, 마치 ‘야한’ 영화처럼 포스터가 제작되고 시중에 홍보되었지만 실은 그리 녹록한 영화가 아니다.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감독의 ‘망상’이 그대로 영상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영화적 문법을 거의 무시하고, 기승전결식 이야기구성도 없다. 영화는 사이코물에서 SF로 코믹으로 심리극으로 널뛰기를 한다.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줄거리도 네러티브도 거의 의미가 없다.

이 작품을 보고 난뒤 대다수의 관객들은 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작품이 만만한 작품이냐? 하면 것도 아니다. 쓰인 CG도 제법 정교하고, 뭔가를 확실히 노리고 찍은 장면들은 나름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마디로 걸작이나 수작이나 쓰레기등으로 쉽게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바로 ‘괴작’이다. 도무지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작품.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수 없는 요상한 영화. 그게 <펜트하우스 코끼리>다!

여기서 이민정이 맡은 수연역은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남편 민석은 성공한 성형외과의사다. 몹시 아내를 사랑하지만, 채울수 없는 상실감에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섹스를 하지만, 항상 뭔가 허전함을 느끼는 정신적인 문제가 큰 인물이다. 이민정은 남편과의 관계에서 회의를 느끼고 12년만에 나타난 진혁과 걷잡을 수 없는 불륜 관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홍보된 것과 달리 이민정이 보여주는 모습은 팜므 파탈이 아니다. 그녀는 그저 불륜에 빠져있는 남편을 증오하고, 12년전 첫사랑을 끔찍이 생각하는 여성일 뿐이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안정된 삶을 지극히 사랑하는 속물적인 여성이다. 이민정이 분한 수연은 너무 평범하다. 인물 자체는 나름 고민도 많고 내적 갈등도 심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기존의 그녀의 모습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펜트하우스 코끼리> - 이민정의 베드신은 언론에 노출된 것에 비해 (영화속 다른 베드신과 비교해) 수위가 현저히 낮았다. TV에서 방영할 수 있는 정도 수준?

물론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난해한 영화다. 그런 탓인지 ‘출연배우들도 과연 이해하고 연기할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표정은 애매모호했다. 그러나 이민정이 분한 수연은 ‘구원’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유리처럼 깨지기 쉬워 보이는 상류층 여성의 보이길 바랬는데, 이민정의 연기는 너무 평범했다. 심하게 말해 그저 이민정의 평범한 연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고 할까?

<백야행>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조연급인 <펜트하우스 코끼리>와 달리, <백야행>에서 이민정이 맡은 회장비서는 중요한 키(key)를 갖고 있지만, 현저하게 극에서 비중이 낮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미스테리한 인물 유미호(손예진)의 결정적인 과거의 단서를 캐내는 인물로 나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민정은 뭔가 회장비서역만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그저 이민정 특유의 목소리와 톡톡튀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였다. 사실 어떤 면에서 이민정은 억울할 수 있다. <펜트하우스 코끼리>와 <백야행> 모두 그녀는 기존의 연기를 답습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꽃남>과 <그대 웃어요>에서 신세대 여성의 톡톡 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중독(?)되어 나도 모르게 영화에 등장하는 그녀에게 덧씌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민정이 만약 다른 팔색조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펜트하우스 코끼리>와 <백야행>모두 자신만의 다른 개성을 심었어야 옳다고 본다. <펜트하우스 코끼리>와 <백야행>은 장르가 전혀 다르다! 또한 그녀가 맡은 역도 다르다! 따라서 이민정은 두 영화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 연기를 보여줬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펜트하우스 코끼리>에선 풍요로움에 빠진 속물적인 여성이 사랑을 갈구하다 파멸직전까지 가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백야행>에선 회장비서로서 전문직 여성의 프로페셔널함과 마치 탐정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민정의 색다른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던 필자에게 두 영화에서 각각 보인 연기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렇다 해도 작품에 욕심을 내고 자꾸만 출연해보는 이민정의 자세는 높이 평가한다. 또한 장르와 배역의 중요도를 따지지 않고 출연하는 것 역시 좋게 본다. 다만, 다음번에는 철저한 자기 배역의 연구를 통해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성장하는 배우를 보는 것만큼 팬의 입장에서 즐거운 일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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