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김치맛이 아닌 스시맛이 나는 스릴러 ‘백야행’

朱雀 2009. 11.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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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김치맛이 아닌 스시맛이 나는 스릴러 영화. 그게 <백야행>에 대한 간단평이다. 영화의 시작은 한쪽에선 고수가 한 남자를 목 졸라 죽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쪽에선 손예진이 한 남자와 섹스를 하고 있다.

<백야행>이란 제목처럼 영화는 철저하게 흑과 백으로 구분된다. 빛속에 있는 손예진이 철저하게 흰색의 이미지를 고집한다면, 그녀의 그림자로 청부살인을 하며 어둡게 살아가는 고수는 블랙 계열의 옷만 입고 나온다.

<백야행>이 다른 스릴러 영화가 다른 점이 있자면, 관객에게 범인을 보여주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관객은 ‘범인잡기’가 아닌 ‘왜?’에 주목하게 된다.

<백야행>은 손예진과 고수가 하나의 샴쌍둥이처럼 살아가게 된 계기인 14년 전 사건과 번갈아 가면서 진행된다. 한석규는 14년전 사건을 담당한 형사 동수로 열연해 특유의 연기를 선보인다.

<백야행>은 영화를 보는 순간 원작이 일본임을 단숨에 알게 한다. 아무리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손예진과 고수는 단단한 외피를 둘러싸고 자신의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 여학생들에게 모욕을 당한 상황에서도 손예진은 자신의 입을 가리고 흐느낄 정도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뿐인가? 영화내내 들려주는 클래식의 선율과 14년간 진행되는 두 남녀의 처절한 사연은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그러나 고추장 처럼 매운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 <백야행>의 맛은 심심하기 그지 없다.

너무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질 않는 손예진과 고수의 모습은 관객에게 감정이입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한석규가 취하는 행동 역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항상 빛속에 있는 유미호(손예진)과 어둠 속에 존재하는 요한(고수). 서로를 사랑함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기묘한 두 사람의 운명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두 배우는 일본식 감성을 지닌 인물을 나름대로 잘 표현하지만, 우리네 형편에선 거의 표현되지 않는 방식인지라 아무래도 연기에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누가 맡았어도 두 사람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은 고수와 손예진의 연기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개인적인 관점에서 그건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본다. 우리나라 배우들은 자신의 감정을 내지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감정 과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나라 작품 속의 배우들은 울부짖고 화내고 싸운다. 그러나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들은 극도로 표정과 행동을 자제하고 표정과 눈빛으로 내면 연기를 행한다. 오늘날에는 우리나라 작품들의 영향을 받아 그런 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말이다.

손예진과 고수의 연기는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내면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선 누가 연기를 했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리라 본다.

한석규는 분명 나름 인상적인 형사연기를 펼친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텔미섬딩>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한때 최고의 배우로 각광받던 그가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석규의 연기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한석규의 형사 연기는 <텔미썸딩>에 머물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는 연기인지에 대해선 상당히 회의적이다.

게다가 스피드를 중시하는 우리네 정서와 달리 다소 느릿하게 치명적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다소 느린 전개는 관객에게 답답함으로 다가올 듯 싶다. 분명 영화는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뽑아져 나왔건만, 우리 관객의 정서에는 상당 부분 떨어져 보인다.

차라리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처럼 중요한 소재나 주제만 따오고 한국식으로 ‘완전히 대본을 뜯어고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올드 보이>처럼 완성도 높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백야행>을 보면 화면의 땟깔이나 여러 장면에서 감독과 제작진이 고심하고 심혈을 기울여 뽑아낸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그런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어져 영상의 완성도와 몇몇 장면은 정말 멋지기까지 하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 우리네 정서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데 있다. 차라리 일본에서 제작되었다면 호평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탄생한 이상 평단과 관객에게 큰 호응을 자아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배우도 관객도 일본식 감성을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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