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팬도럼 - SF의 탈을 쓴 잔혹우화!

朱雀 2009. 11. 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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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서기 2528년 인류는 갈수록 늘어나는 인구와 자원고갈로 인해 새로운 행성 ‘타니스’를 향해, 6만명의 인간을 태워 엘리시움을 보낸다. 엘리시움호는 무려 몇 세대에 걸쳐 지낼 수 있도록 설계된 우주선. 얼마나 시간이 흐른 지 알수 없는 어느날, 상병 바우어는 인공수면에서 깨어난다. 오랜 인공수면으로 얼떨떨한 그를 더욱 난감하게 하는 것은 교대조가 보이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갇힌 공간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함께 근무할 페이튼 중위를 깨운 바우어는 고민 끝에 환기구를 통해 나가, 엘리시움호의 주동력원인 원자로를 리셋하기로 한다.

팬도럼
감독 크리스티앙 알바트 (2009 / 미국, 독일)
출연 벤 포스터, 데니스 퀘이드, 캠 지갠뎃, 안트예 트라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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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어는 원자로를 향해가면서 전 근무자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알 수 없는 왠 여성의 습격을 받는다. 칼을 목에 겨누고 위협하던 그녀는 갑작스런 소리에 사라져버린다. 어두컴컴한 통로에 혼자남은 바우어는 고민 끝에 자신을 향해 쫓아오는 괴생명체의 존재를 인식하고는 도망치고 만다.

<팬도럼>은 밀폐된 공간에 갇혀진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친다는 점에서 <에어리언>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6만명이란 거대 인원을 수용한 우주선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금방이라도 질식될 것 같은 좁은 공간에서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관객이 숨막힐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팬도럼>은 ‘밀폐된 공간’이란 익숙한 장치를 통해, 인간의 광끼를 불러낸다. 가령, 영화의 중요한 사건이 되는 ‘지구멸망’의 경우 많은 SF영화에서 수없이 써온 설정이다. 그러나 <팬도럼>은 그런 익숙한 재료들을 가지고 최상의 맛을 가진 수작영화를 만들어낸다.

백인 여전사와 말이 통하지 않는 헌신적인 황인 농부가 백인 비행단원인 바우어가 한조를 이뤄 모험을 함께 하는 설정은, 마치 이전의 탐험영화를 보는 듯 불편하게 한다. 특히 말도 통하지 않는 황인 농부가 바우어를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전투를 벌일때는,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리던 19세기와 20세기초가 떠올라 불편하기짝이 없다.

이런 익숙한 설정 등은 어떤 면에선, 과거 배위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가지고 영화화 시켰다는 혐의점을 갖게 한다. 가령 무대를 19세기 말로 옮기고, 신대륙을 찾기 위해 나선 배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해서,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이고 인육을 먹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치고, 이걸 미래시대로 살짝 치환한다면 <팬도럼>은 시대를 앞서간 SF영화라기 보단, ‘SF의 탈을 쓴 모험물’이란 말이 더욱 맞을 듯 싶다.


<팬도럼>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단순히 잔인한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거나 ‘폐쇄공포증’을 끝까지 자극해 긴장감을 놓치기 때문이 아니다. 희망과 이유를 잃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오직 생존만을 위해 ‘진화’를 거듭하는 인간은 결국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팬도럼>의 결말부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엘리시움호는 이미 제 2의 지구인 ‘타니스’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바로 우주선을 빠져나가면 신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데도, 진실을 모르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한 인간의 교활한 술책에 놀아나서 서로를 죽이는 아비규환의 지옥속에서 생존을 위해 잔인한 살생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주인공의 기지로 6만명중에 살아남은 약 1200여명 정도가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게 되지만, 희망찬 것만은 아니다. 엄청난 육체적 진화를 거듭한 다른 인류는 아마 우주선에서 빠져나와, 타니스 이주민들을 공격할 것이다. 두 그룹은 아마 치열한 생존경쟁을 계속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광끼’는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몇천명 밖에 안되는 소그룹에서 왕이 되고자 하는 이들도 다시 나올 것이다. <팬도럼>속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팬도럼>은 저예산 SF영화의 모범을 보여준다. 몇 개의 세트와 불과 7명의 출연배우 그리고 약 백명정도의 엑스트라로 영화는 상당히 볼만한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또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도록 연출한 것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CG와 장엄한 음악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한치의 오차 없이 짜여진 치밀한 시나리오와 데니스 퀘이드를 비롯한 배우들의 명연기는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아무런 내용없는 블록 버스터 영화들을 보며 할리웃을 비웃다가도, <팬도럼>같은 작품을 만나면 할리웃의 넒은 스펙트럼에 그저 경탄하게 된다. <팬도럼>은 문화의 용광로 미국에서 발견한 다국적 인재들의 멋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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