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2차 대전판 ‘킬빌’,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朱雀 2009. 10. 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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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어느 정도 함유하고 있습니다. 전혀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없이 보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나중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이하 ‘<거친 녀석들>’)은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2차 대전의 한복판을 무대로 하고 있다. 영화는 ‘챕터’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치 영화가 아니라 연극 혹은 소설을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1장은 냉혹한 란다 대령이 쇼사나의 가족을 찾기 위해 온 것으로 할애된다. <거친 녀석들>은 이전의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들이 그렇듯이 별 쓸데없는 잡담이 한동안 이어진다. 란다 대령은 쇼사나 가족을 몰래 숨겨주고 있는 한 남자를 찾아가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심리적으로) 그가 도망칠 곳을 없애버린다. 프랑스에서 영어로 말을 바꾼 그는 이내 그가 숨기고 있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리라는 것을 공들여 이야기하고, 결국 남자는 모든 것을 발설하고 만다. 남자가 가리킨 곳을 향해 란다 대령은 부하들에게 총을 쏠것을 요구한다.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1장의 식탁대화신. 란다 대령은 마치 콜롬보 형사처럼 상대방이 비밀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게끔 심리적으로 막다른 곳으로 몰아간다. 특별한 음악이나 장치 없이 배우의 표정과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면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그저 감탄하게끔 만든다.


쇼샤나를 빼곤 모두 죽인 란다 대령은 도망치는 그녀를 겨누다가, 이내 내버려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거대한 비극의 서막이 될 줄은 몰랐다. 2장에선 드디어 브래드 피트가 등장한다. 그는 신입요원 8명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한다. 목에 길게 난 상처는 우리는 그가 어렵지 않게 산전수전을 겪은 용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부하들에게 각기 나치의 100개 머릿가죽을 벗길것을 요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실행한다.

8명의 특공대원을 데리고 나치 점령하에 들어간 그는 나치들이 두려워하는 ‘개떼들’의 수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난다.

개떼들을 이끄는 수장으로 나오는 브래드 피트. 개떼들의 수장답게 어떤 상황에서도 광끼어린 모습으로 분하는 그의 연기는 그의 외모만큼이나 빛난다.

<거친 녀석들>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각기 대립된 인물들이 대화하는 장면이다. 마치 홍콩 무협영화에서 위장한 적들끼리, 한쪽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다른 한쪽은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심리전을 하는 것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거친 녀석들>에선 유독 대화장면이 많다. 소샤나가 원치 않는 저녁식사에 끌려와 란다 대령을 재회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심한 긴장감을 느낀다.

그는 예의 능글맞은 웃음과 상대방의 내면을 간파해는 듯한 눈길로 뭔가를 계속해서 탐지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이앤 크루거가 처음 등장하는 술자리 장면도 그렇다. 말투를 가지고 하급 독일군 병사가 위장한 미국군의 고향을 캐묻자, 공교롭게도 게쉬타포가 등장하면서 감정은 고조되기 시작한다.

무협영화와 다른 것이 있다면, <거친 녀석들>에선 바로 끔찍한 결말로 향한다는 것이다. 극한 대립으로 가기 전까지 긴장을 고조시키는 타란티노식 연출은 이제 ‘거장’이라 해줘도 손색이 없을 듯 싶다. 그러나 결말은 어떤 의미에선 시시하다.

그동안의 고조된 분위기에 비해 결말은 허무할 정도로 너무 일찍 끝나기 때문이다. 거기엔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인물마저 맥없이 죽여버리고, 도대체 상황을 어떻게 진행시키려 하는지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게 한다.

영화의 포스터는 다이앤 크루거와 멜라니 로랑등이 총을 빼들고 있어, 많이 보아온 첩보스릴러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거친 녀석들>은 그런 기대를 철저히 깨부순다.

매력적인 다이앤 크루거와 쇼샤나 역의 멜라니 로랑은 의외로 맥없이 죽여버린다. 아니 어떤 면에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다. 다이앤 크루거가 분한 비르짓 본 해머스타크는 독일 최고의 여배우다. 그런 탓인지 그녀는 어떤 위험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상황을 리드해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속 그녀의 상대들은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라, 그녀의 머리꼭대기 위에서 놀고만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이앤 크루거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과 연기를 보여주는 멜라니 로랑. 란다 대령에게 가족을 잃은 후, 거대한 복수를 꿈꾸고 실행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왠지 <킬빌>의 우마 서먼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백미는 ‘시네마’작전으로 명명되는 히틀러와 나치잔당들의 대규모 작전이다. 한 극장주로 살아가던 쇼샤나는 그녀의 외모에 반한 한 독일 전쟁영웅으로 인해, 히틀러와 그의 심복(괴벨스 등)이 참가하는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거대한 복수를 실행하게 된다. 레인 중위(브래드 피트)와 개떼들 역시 브리짓에게 그 소식을 듣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참석하러 간다.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쇼샤나의 모습은 쉽게 <킬빌>의 우마 서먼을 떠올리게 한다. 우마 서먼은 극중에서 엄청난 살인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현란한 복수를 할 수 있었지만, 쇼샤나는 다르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라, 극장문을 잠그고 모두를 불태워 죽일 계획을 실행코자 한다.

<거친 녀석들>은 무자비하다! 타란티노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폭력의 수위가 매우 높다. 디지털 상영으로 감상하면, 높은 해상도 때문에 개떼들이 나치의 머릿가죽을 베낄 때 마다 매쓰꺼움을 느낀다. ‘곰 유태인’으로 불리는 도니 도노윗은 야구방망이로 나치를 때려죽이고, 브래드 피트는 일부러 살려주는 녀석들의 이마에 나치의 문양을 새겨 경고의 의미로 삼는다. 영화에선 당연하지만 신체훼손과 모욕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비위가 약한 사람은 메쓰꺼움을 느낄 지경이다. 물론 높은 해상도 덕분에 ‘가짜’인 것은 어느 정도 티가 나지만, 영상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 저도 모르게 끔찍한 이미지를 그려내게 된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2009 / 미국, 독일)
출연 브래드 피트, 다이앤 크루거, 크리스토프 왈츠, 멜라니 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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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52분에 이르는 상영시간은 타란티노식 이야기 전개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지루하고, 끔찍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처음이라도 그의 영화적 작법에 마음을 연 관객에겐 제법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해줄 수 있다. 또한 어떤 면에선 홍콩영화식 긴장 고조를 자신의 방법으로 연출한 상황 들은 묘한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홍콩영화를 좋아하는 타란티노의 취향을 알기 때문에 혹시 이러지 않았을까?가 필자의 생각이다.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적 견해다).

타란티노식 스타일에 열광하거나, 조금 색다른 영화를 보곳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그러나 기존의 2차 대전을 소재로한 첩보 영화에 익숙한 이들이거나, 그런 류를 원한다면 비추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상당히 지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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