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한국판 ‘데드맨 워킹’, 집행자

朱雀 2009. 10. 2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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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로 보게 된 <집행자>는 예상대로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선사했다. 집행자엔 세 명의 사형수와 세 명의 교도관이 등장한다. 세 명의 사형수는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두명이다. 한명은 교도소 생활이 20년이 넘은 모범수이며, 다른 한명은 희대의 살인마 장용두로 교도소에 들어와서도 특유의 살인본성을 감추지 않는다.

고시원 생활 3년 끝에 교도관으로 취직하게 된 재경(윤계상)은 첫날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룬다. 그를 처음 반겨준 종호(조재현)는 한 마리의 야수처럼 재소자들을 다룬다. 한편 김교위(박인환)은 사형수와 장기를 두며 마치 친구처럼 지내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재경은 김교위보단 종호를 닮아간다. 재소자들에게 신참으로 무시를 당하자, 종호는 몽둥이를 꺼내들고 구타를 하게 함으로써 그의 내적인 폭력성을 일깨워준다.

나름대로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던 재경에겐 큰 일이 두 개 벌어진다. 하나는 희대의 살인마 장용두로 인해 불거진 여론을 잠식하기 위해 12년만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친구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집행자>는 국내에선 보기 드물게 ‘죄수’가 아닌 ‘교도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언제나 영화에서 마치 감정없는 기계처럼 보이던 교도관들은 <집행자>에선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난치고, 맞선 나간 이성을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장면은 사형집행일을 하루 앞두고 전동료를 찾아간 김교위의 모습이다. 12년 만에 사형을 집행하게 된 김교위는 괴로움에 견디지 못하고, 전 동료를 찾아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다가, 전에 사형시킨 재소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러자 동료는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이맘때면(12월에 사형이 많이 집행되는 모양이다)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 없다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집행자>엔 전혀 상반된 두 명의 사형수가 등장한다. 한명은 비록 칼로 일가족을 찔러죽였지만, 모든 것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모범 재소자다. 그는 재경이 죽을 고비가 걸려 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던져 살릴 정도로 매우 선량한 인물이다(살인을 저지른 사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반면 희대의 살인마 장용두는 죽는 순간까지 욕을 하고 광끼어린 살인본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관객은 두 사형수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몹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모범수를 보았을 땐 사형제의 폐지가 마땅하지만, 장용두를 보면 사형제의 존속이 당연해보이기 때문이다.

<집행자>는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또한 사형집행에서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세 명의 교도관의 각기 다른 행보를 통해 우리 시대의 아픔과 우리가 지나쳤을 재소자 뿐만 아니라, 교도관들의 아픈 삶에 대해서도 투영해낸다.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기억에,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경우 아이가 없는 경우가 제법 된단다. 그 중 한명이 점집에 찾아가보니, 아빠가 손에 피가 묻어서 아기가 무서워서 못온다고 풀이해주는 구절이 있었다. 비록 소설이긴 했지만, 교도관의 아픔이 느껴져 절실했던 기억이 난다.

<집행자>의 미덕은 관객에게 열린 결말을 취하고, ‘사형제’에 대한 제법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이사이 웃음을 집어넣어 지루하지 않게끔 한데 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김교위 vs 종호 vs 재경의 삼파구도는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켜 산만하게 만들었다. 여자친구의 임신을 두고 고민하는 재경의 모습과 그들의 결말은 너무 중심이야기와 궤가 달라 다소 생뚱맞았다. 좀더 세련된 연출과 이야기 전개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사형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조재현의 광끼 어린 연기와 윤계상의 물불 가리지 않는 연기열정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영화의 값어치는 충분한 듯 싶다. 강호순과 나영이 사건으로 시끄러운 이 시기에 <집행자>는 우리에게 적절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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