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정신줄을 놓고 본 '선덕여왕' 9화

朱雀 2009. 6. 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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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원, 박예진, 엄태웅 뿐만 아니라 반가운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한 9화. 별다른 이야기 없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속도감을 선사했고, 새로운 출연진의 호연을 보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이요원의 경우, 아역인 남지현의 '선머슴아' 역할은 잘 바톤터치한 듯 싶다. 아직 총명함이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곧 10화에서 아마 그런 부분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성인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번화가 또 한번 승부처가 될 것이란 사실을 잘 아는 제작진은 9화를 정말 놀라운 완성도로 만들어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끝날때까지 흥미진진하게 보고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

돌이켜보면 9화엔 딱히 큰 사건이 없었다. 용화낭도가 청룡익도와 시비가 붙어 일대일 맞짱(?)인 진성비재를 피하다 결국 받아들이고 비장하게 갔는데, 갑자기 터진 전쟁 때문에 연기되고 다들 전쟁터로 향한게 9화의 내용 전부다.

다음 화를 위한 밑밥뿌리기용 9화 였음에도 긴장감과 속도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일단 덕만역의 이요원은 무난한 느낌이다. 워낙 남지현이 연기를 잘한 터라 이요원이 밀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보다 더욱 잘한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남지현의 ‘선마슴아’같은 씩씩함은 잘 계승(?)했는데,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빛나는 똑똑함은 아직 발휘하지 못한 점이다. 뭐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앞으로 차차 그런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덕만과 둘이 있을 때는 상냥함을, 공주로서 업무를 볼 때는 기품있는 보여주는 달콤살벌한 예진아씨. 역시 연기파 그녀~

천명공주역의 박예진 역시 무난하다. <대조영>때도 느낀 거지만 이 여자 천상 연기자다. 역에 몰입한 그녀를 보면 연극배우가 다 떠오를 지경이다. 공주로서의 기품 있는 부분은 예전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덕만과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다정한 모습은 새로웠다. 한가지 잡설을 하자면, 덕만이 용화향도로 천명공주 밑에서 낭도로서 활동한 게 몇 년 된 것 같은데 어떻게 천명공주를 못알아보는지 신기하다. 비록 자신과 만날때는 승려의 복장을 하고 평상시에는 면사포를 쓴다지만, 이건 천명공주가 슈퍼맨도 아니고 얼굴이 다 비취는 면사포를 가지고 못 알아본다니...천명공주는 아무래도 후생?(?)에서 슈퍼맨인갑다.


얼핏 보면 인상만 박박 쓰고 혼자 심각한 척 하는 것 같지만, 소대원(?)인 용화낭도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씀씀이를 보여주는 김유신 소대장.


김유신역의 엄태웅의 연기도 괜찮았다. 인상을 팍팍 쓰며 등장한 그는 군의 소대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원칙을 중요시여기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 있는 그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특히 청룡익도와 진성비재를 결국 치르기로 한 전날, 각 낭도들의 장단점을 지적하며 필승의 비법을 일러주는 그의 모습은 훗날 삼한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장수로서 그의 일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재밌는 점은 김유신과 용화향도의 관계인데, 이들의 관계는 오늘날 소대장과 소대원의 관계를 많이 답습한 것 같다. 훈련을 시키거나 행동양식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특히 덕만과 죽방이 김유신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하면서 흉보면서 낄낄대는 부분들은 내무반에서 대원들이 직속상사의 뒷담화를 하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회복된 카리스마(?) 미실역의 고현정.

미실역의 고현정도 이번 화에선 꽤 인상적이었다. 지난회의 잃어버린 카리스마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아들인 하종이 대패했음에도 오히려 그걸 기회로 삼아 설원공에게 병권을 몰아주고 역전의 발판으로 삼고, 전투에 앞서 전략 때문에 고민하는 설원공에게 힌트를 주는 모습들은 예의 한 나라를 이끄는 여장부의 모습이 어떤지 꽤 잘 그려낸 것 같다.

이번 9화에선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그중에서 청룡익도의 수장을 맡은 홍경인을 제일로 꼽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전태일 역으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연기파 배우를 그동안 별로 보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이렇듯 인기 프로그램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그는 첫 등장부터 악인의 표정을 지으며 김유신을 향해 조소를 날리고 가진 자의 여유를 부렸다. 보는 내내 ‘저 악당녀석’이란 생각이 내내 지배했다. 반가운 그의 귀환이 앞으로 <선덕여왕>을 보는 즐거움을 더해줄 것 같다.


표정부터 악당인 석품. 연기파 배우 홍경인의 출연이 반갑기 그지 없다.


<선덕여왕>을 이끌 실질적인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한 9화에 대해선 앞서 이야기한대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주고 싶다. 용화향도와 청룡익도를 비롯한 10화랑 집단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 미실파에 둘러쌓인 천명파의 위태로운 처지를 잘 그려낸 것 같다. 아울러 높은 밀도의 대본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시청자의 눈과 귀를 떼지 못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더불어 이요원, 박예진, 엄태웅, 홍경인들의 호연은 앞으로 <선덕여왕>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이렇듯 칭찬할게 많은 9화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도무지 왜 끼었는지 알수 없는 코믹한 부분들이다. 전쟁을 위해 죽을 수련을 하는 낭도들의 싸움을 마치 동네 왈짜패들의 싸움처럼 묘사하고, 멋지게 무술 실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무슨 어린아이들이 싸우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들은 노골적으로 코믹함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창 진지하고 긴장감 있게 진행하다, 그런 모습들이 나오니 긴장감이 떨어져 버렸다. 코믹한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욱 즐거움을 주고 싶은 제작진의 의도는 알겠지만,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10화 예고편을 보니, 용화향도가 적 병사들에 둘러쌓인 상황에 처하고, 그때 덕만의 지혜가 빛날 것 같던데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성인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한 9화는 분명 첫화로서 그 임무를 다 한 것 같다.


9화의 명장면


청룡익도와 진성비재 문제로 다투는 김유신과 덕만

덕만: 낭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가 어찌 화랑이라 하겠습니까?

김유신:낭도의 마음을 헤아려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한단 말이냐? 아니면 네놈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모두 죽어야 한단 말이냐?

예의 윗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직언을 터트리는 덕만의 성격이 터졌다. 언뜻 듣기엔 시원한 말이지만, 아직 실력이 부족한 용화낭도로선 청룡익도와의 목숨을 건 진성비재가 ‘전원몰살’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김유신은 모욕을 받고 화내긴 쉽지만, 참으면서 때를 기다리는 ‘장군’으로서의 범상치 않은 기개와 품성을 이 장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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