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오덕후와 신용불량녀의 만남, '결.못.남' 3화

朱雀 2009. 6. 2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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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진희가 연기하는 조재희는 오덕후가 맞았다. 그는 어제 방송된 3화에서 길가에 넘어진 예쁜 여자 대신 새로 수입된 앰프와 스피커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잘빠진 차와 여자를 거의 비슷한 눈길로 보는 것은 남자의 본능인 듯 싶다.

극중에선 <쥬피터 코스모스>(원제 <마이크로 코스모스>)로 소개된 DVD를 들고 오디오 코멘터리가 2가지가 수록되었느니, 음성이 몇 개 수록되었느니 말하는 건 영락없는 DVD 마니아였다. 그뿐인가? 1968년도 게임(?)을 회사에서 택배로 받으면서 자랑하는 모습은 다방면에 걸친 그의 오덕후 기질을 농후하게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마니아는 일반인들에게 오해당하기 쉽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히 갖고 싶어하는 것들이 다 존재한다. 이를테면 람브르기니 슈퍼카, 구찌 핸드백, 요트, 40인치 LED TV, 스왈로스키 목걸이 등등 품목은 다르지만 결국 뭔가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런 욕망 중 특수한 분야에 집중된 사람을 우린 흔히 ‘마니아’ 심하면 ‘오덕후’로 이야기 하는데, 거기엔 ‘비정상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극중에서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아마 조재희가 산 오디오 기기는 기천만원(최소 몇백)은 할 것이다. 원래 오디오의 세계란 게 그렇다. 약간의 음질 향상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는 곳이 오디오 쟁이들의 세계다. 절대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마니악한 세계인 것이다.

건축가 조재희는 끊임없이 자신의 독신생활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애들 사교육비를 쓰지 않기 때문에, 돈이 쌓인다. 그 돈으로 자신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을 사는 거다. 딱히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취미 외엔 돈 쓰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모두가 꿈꾸는 골드 미스터의 삶이 아마 그러할 것이다. 반면 김소은이 연기하는 정유진을 보자. 그녀는 인턴직으로 들어간 직장에서 최근 짤릴 위기에 처해있다. 설상가상으로 업무차 끌고 나온 회사차로 외제차를 들이박고 말았다. 수리비는 무려 450만원이나 나왔고 갚을 길은 막막하다.

헤어진 전 남친에게 5백만원 정도 받을 게 있지만, 딱한 사정을 아는 지라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잠을 줄여가며 아르바이트에 매진하지만, 기력은 점점 쇠하고 상황은 더욱 꼬여간다.

옥탑방을 팔아 카드빚을 갚고 이제 좀 살만한가 싶었던 그녀에게 닥친 불행이다. 재밌게 보기 위해 본 드라마에서 우리 삶이 생생하게 투영되자 당황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누구나 하고 있을 고민이 아닐까? 청년 실업이 1백만이 넘어버린 시대. 등록금은 1천만원에 도달했고, 학자금을 융통해도 갚을 길이 막막하다. 결국 카드 돌려막기 신공과 2-3개의 알바를 뛰지만 결국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견디다 못해 사채를 끌어쓰는 순간 모든 게 끝나버린다.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현대다.

정유진이 들이받는 차주는 ‘야생마’란 술집에서 일한다. 비록 고급룸사롱 이긴 하지만 웃음과 술과 몸을 판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굽히면 하루에 몇백을 벌 수 있는 별천지다. 명문대 여학생이 낮엔 공부하고 밤엔 술집에 나가는 일은 꼭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흔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씁쓸한 현실이다.

조재희는 자신이 차주에게 곧이 곧대로 일러줘 정유진의 처지가 어렵게 되었다 여겨, 그녀를 찾아가 돈을 건넸다. 그리고 술집 알바는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 물론 특유의 화법으로. 오해를 받은 정유진은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울어버린다.

비록 오해를 하긴 했지만 조재희는 좋은 사람이다. 최소한 양심의 가책은 받고 그녀를 위해 돈을 준비해줬으니까. 정유진은 행복한 여자다. 비록 고생하지만 그녀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으니까.

오덕후도 신용불량녀도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람답게 살도록 우리 사회가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결혼 못하는 남자>를 보다 놀라 몇자 적는다.

단순히 로맨틱 코미디물인 줄 알았는데(게다가 일본 원작 드라마가 있어서 그대로 만들 줄 알았는데), 우리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들이 절절히 화면에서 나오니 그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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