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대한민국에서 독신으로 사는 법,'결못남'

朱雀 2009. 6. 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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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방송분에선 공감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40줄인 조재희(지진희)와 장문정(엄정화)는 각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결혼을 하라고 온갖 태클을 받고 있다. 장문정을 궁금히 여긴 조재희의 어머니는 아무런 병이 없음에도 병원을 찾아가 인물을 살펴보고, 일부러 스카프를 흘려 아들과 만날 거리를 만들었다.

장문정의 아버지는 ‘오작교’란 만남알선업체에 딸의 신상명세서를 보내고, 일부러 자격요건이 충족됨을 알려 딸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싱글들은 항상 ‘독신의 자유로움과 특권’을 입에 달고 산다. 애들 사교육비을 쓸 일이 없으니 온전하게 자신의 삶에 투자하고 하고 싶은 건 마음대로 하고 산다. 옆에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편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건 누가봐도 부러운 일이다.

특히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인 놀이공원이나 불꽃놀이 축제에 가는 건 딱 질색해한다. 이리저리 채이고 밟히고 고생이기 때문이다. 사실 꽤 공감가는 이야기다. 20대 때는 사람들이 바글거려도 많이 모이는 곳을 선호했다. 그러나 30대에 들고 보니 사람이 붐비는 곳은 딱 질색이다. 얼마전에 에버랜드에 갔는데, 뭐 하나 탈라치면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했다. 오며 가며 기다리며 걸린 수고를 생각하면 별로 가고 싶지 않다. 거기다 겁이 많아서 T-익스프레스 등은 별로 타고 싶지 않았는데, 일행들이 좋아해 억지로 끌려가서 고역이었다. 물론 타고나선 괜찮았지만 두 번 타라면 싫다.

가족여행을 떠난다는 동생 가족의 이야기에 조재희는 예의 투덜거린다. 가봐야 ‘애들 챙기고 부모님 챙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재미는 없다’가 주장이었다. 그러나 동생의 반박도 만만찮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왜 그런 고생을 하면서 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참으로 어려운 말들이다. 우린 혼자이고 싶어한다. 일정 나이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생기면 결혼을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해보면 현실의 무게에 짓눌릴 때가 많다.

단순히 둘이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는데, 양쪽 가문 사람들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 ‘자유’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오늘날 사회는 ‘결혼’이란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신문지상에도 종종 소개되지만 결혼하고도 서로의 스케줄 때문에 일년에 몇 번 보고 만족하는 부부들도 꽤 된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된 이들이 대한민국엔 넘쳐나고, 불행한 결혼으로 이혼을 겪는 이들도 늘어난다.

‘황혼 이혼’이라 하여, 60년이 넘도록 참아오다가 결국 이혼하는 이들마저 생겨나고 있다. 뭐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원래 결혼이란 제도는 몇천년 전 농경사회때 생긴거다. 당시엔 노동력 문제가 있어서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했고, 대가족을 이루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변화가 빠른 시대에 살다보니 둘이서 혹은 혼자서 편하게 되어버려 핵가족이 유행했다. 거기에 더해 다변화된 사회는 실로 다양한 가족관계를 양산해내고 있다. 섹스리스 부부, 양쪽다 재가인 가정, 동성부부 등을 말이다.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서 TV상에 파격적인 가족 관계가 드러나지 못하겠지만, 40줄에 가까운 미혼 남녀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온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이젠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그만큼 보기 쉽다는 이야기도 하기 때문이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조재희는 건축가로, 장문정은 의사다. 둘다 수입이 좋은 전문직종으로 딱히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쉽다. 돈은 충분하기 때문에 집안일은 원하면 가정부를 쓰면 되고, 여가시간을 자신을 위해 온전히 투자할 수 있다.

조재희는 결혼에 대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장문정은 ‘원하지만 못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차이가 있지만. TV 드라마치곤 그래도 꽤 실감나게 그려낸 편이라 여겨진다.

여기서 지진희가 연기하는 조재희로 이야기를 돌려보겠다. 조재희는 대인관계에 무척 서툰 인물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살기 때문에 대화하는 기술이 무척 떨어진다. 본래 대화란 단순히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만을어내고 유지하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오죽하면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라는 속담까지 있을까?

오덕후인 조재희는 다른 이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우연히 오른 서울시티버스에서 장문정을 보곤, 그녀가 싸온 김밥과 사이다를 보곤 ‘소풍 왔냐?’고 비웃는다. 가이드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설명을 하면 예의 박식다식함을 꺼내들고 면박을 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어설프지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오덕후들이 그럴까? 아니 현대인들이 그러기 쉬울까? 물론 말로는 ‘잘못했다’ ‘미안하다’ 말하긴 쉽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러긴 어려울 것 같다. 우린 급변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전까진 존재하지 않았던 ‘인터넷’의 탄생은 우리를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인과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어떤 시대보다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건만,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회를 향한 접속점이 끊어졌다는 무의식의 발로다. 우린 서로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정을 나누고 싶어하지만, 다른 사람과 사귀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 한다. 점점 이기적인 되가는 현대인은 편의점에서 즉석김밥을 먹고 마트에서 물건을 손쉽게 사듯 쉬운 만남을 즐기고 있다.

클럽에서 만나 즉석 미팅을 하고 더 마음에 들면 호텔 등을 찾아가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다음날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져버린다. 그런 수고가 귀찮은 이들은 돈을 들고 술집이나 집장촌을 찾는다. 때론 ‘단백질 인형’이나 성인용품으로 그런 인간관계를 대신하려 하는 이들마더 늘어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다.

그런 면에서 <결혼 못하는 남자>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인물군이나 나이대를 대표한다. 감정 표현이 서툰 오덕후 조재희는 서툰나머지 자신의 주변에서 맴도는 윤실장(양정아)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전 남자친구가 자신의 애견인 상구를 들고 튄 이유가 자신과 만남을 계속 하기 위해서란 사실을 정유진(김소은)은 친구와의 이야기를 통해 간신히 눈치채게 된다.

마음이 베베꼬인 조재희와 만날 때마다 장문정과 윤실장, 정유진은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노처녀 처지를 비웃기에 장문정은 화를 내고, 누구 때문에 차수리비를 벌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일했건만 5백만원을 들고와선 덮어놓고 술집나가지 말라고 해 정유진의 마음을 들쑤신다. 현장소장과 매번 다투고 일거리를 넘기는 바람에 윤실장은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조재희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다. 또한 비록 대인관계는 서툴지만 따뜻한 사람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옆집 사람을 위해 돈다발을 준비하고, 사소한 마음씀씀이에 대해 미안하고 고마워할 줄 안다.

물론 대인관계에 서툴고 함부로 말하는 부분은 참기 힘들지만, 그런 부분들은 다른 이와의 소통에서 점차 나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결혼 못하는 남자>는 근본적으로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우린 근본적으론 혼자이길 싫어한다. 때론 혼자이고 싶어하지만 그건 관계에 지친 탓이다.

누군가와 함께 놀아야 더욱 재밌고, 누군가가 있어야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이 의미를 가진다. 내 글을 읽어줄 누군가가 없다면 내가 지금 자판기에 치는 이 모든 글들은 의미가 사라질 것이다. 영화와 방송은 사라지고 책도 없어질 것이다.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예술도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은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모이면 위대한 것을 해낼 수 있다. <결혼 못하는 남자>는 이 시대 40대의 독신남녀를 비롯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거기엔 따스한 시선이 녹아져 있다. 우린 근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며, 결국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 말이다.

지금 조재희는 독신을 예찬하지만 장문정과 아마 미묘한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랑의 마법은 아마 그를 바꿔 놓을 것이다. 남녀간의 에로스적인 사랑 뿐만 아니라 유진 등의 만남과 여러 사건들은 그를 다른 사람과 더욱 소통하게끔 만드리라.

덧붙임: 건축가 조재희를 연기하는 지진희의 연기는 날로 좋아지는 것 같다. 1,2화에선 오버하는 느낌인데 이젠 캐릭터가 온전히 그의 것이 된 듯 자연스럽다. 노처녀의사 장문정 역을 연기하는 엄정화의 연기는 새삼 재론할 여지가 없다. 마스카라가 번진 모습을 브라운관에 드러낸 21살 김소은의 연기는 조금 놀라웠다. 한참 이쁜 것만 보여주고 싶을 나이에 다소 파격적인 연기를 펼쳐보였다. <꽃보다 남자>에서 단순히 ‘귀엽고 예쁜 처자’고 봤는데, 이번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 더욱 성장할 듯 싶다.

특별한 주인공 상구는 극의 맛깔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개’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황에 맞는 표정과 귀여운 행동을 선보이고 있다. 누가 조련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연기’가 뭔지 아는 이인 듯 싶다.

모든 필요한 생활용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택배로 받아, 박스에서 물건을 꺼내는 세세한 설정은 꽤 마음에 든다. 불꽃놀이 축제 하나로 각기 인물들이 일로 사정으로 각기 파티장과 혼자만의 명당인 빌딩 등에 모이는 것등은 절묘한 연출이라 여겨진다.

원작이 일본 드라마인 탓도 있겠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산만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 줄기로 모이는 모양새는 칭찬해주고 싶다. 또한 기분이 우울해진 두 여자(엄정화와 김소은)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놀면서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면서 친해지는 에피소드는 너무 자연스럽고 20대와 40대의 고민과 사정 등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효과를 거두어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살기 힘들다”라며 지나가는 어투로 말하는 유진은, 돈 없고 바쁘고 힘든 대한민국 젊은이의 표상이다.

인간관계에 대해 사람의 심리에 대해, 오덕후과 정상인(?)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화학적이며 물리적인 현상을 다룬 <결혼 못하는 남자>를 위에서 장황하게 떠든 이유 때문에 한동안 재밌게 볼 듯 싶다. 무엇보다 <결못남>의 장점은 자칫 우울하고 짜증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코믹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는 점일 게다. 동의하지 않는가? 아마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분들이라 여겨진다. 만약 당신이 봤는데 동의하지 못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 부분에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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