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다채로운 인간군상을 잡아낸 명작 '선덕여왕'

朱雀 2009. 6. 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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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방송된 <선덕여왕> 10화는 이요원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의 호연이 빛난 명작이었다. 전쟁의 화려함에 가려진 참혹함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각 등장인물의 활약상을 어느 한 인물에게 맞추지 않고 다채롭게 그려냈다. 또한 권력암투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반응까지 잡아낸 점은 실로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 단 한편으로도 <선덕여왕>을 보는 시청자들은 가치를 느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만큼 잘 만들어진 분량이었다!



어제 방송된 <선덕여왕> 10화는 기대이상이었다! 우선 공성전을 비롯한 전투장면을 비교적 큰 스케일에서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애쓴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주몽>의 경우엔 그 허다한 전투신에도 불구하고 황당한 경우가 많았다. 말로는 ‘몇만이 출정했네’했지만 실제로 화면에 잡히는 건 겨우 몇십 명에 불과하고, ‘병참이 무너졌네’했지만 겨우 몇십명의 도시락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투신은 항상 앞에서 주몽 등이 독려하고 그들의 활약상을 최대한 멋지게 그려내는 데 충실했다.

이번 <선덕여왕>은 최근의 MBC 사극과 궤를 달리했다. 공성전을 위한 발석거(포차)와 충차, 공성탑 등이 등장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또한 실제로 보여주기 어려운 포탄들은 CG로 그려내고, 대열을 정비한 군사들이 장군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시에, 그 속에서 벌벌 떠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려낸 점도 높이 평가한다.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하는 낭도의 모습은 우리에게 ‘임전무퇴’로 기억되는 용감한 화랑도의 이미지를 배반한다. 그러나 실제 살과 뼈가 잘리고 피가 튀는 전장에선 그런 행동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이다.

물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알천공처럼 용감하게 싸우는 화랑도의 모습도 충실히 그려냈다. 거기에 더해 마치 전장이 놀이터인듯 사람을 죽이고 즐거워하는 다른 낭도들의 모습도 잡힌다. 그러나 전우를 살리기 위해 창을 던지고 손을 벌벌 떨며 괴로워하는 덕만의 모습이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전쟁은 수 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게 죽는 곳이자, 동시에 영웅이 태어나는 곳이다. 살인자는 겨우 몇 명을 죽일 뿐이지만, 영웅은 적어도 몇천 명에서 많게는 몇만 명을 죽이고 탄생하는 모순. 우리의 역사교과서에는 ‘대첩’이라 하여 적군을 대파하고 기뻐한 기록이 보인다. 사람이 죽었는데 과연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들이 우리의 영토를 침범하고 백성을 죽이려 한 점은 용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사람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전쟁은 모순 덩어리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장에선 사람을 죽이고, 평화시엔 그걸 잊고 살려 한다. <삼국지>를 비롯한 고전에서 전쟁영웅들이 훗날 자신이 죽인 혼령들에게 시달리다 괴롭게 죽는 부분들은 인간의 양심에 대한 한 단면이리라.

10화에선 설원랑이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공의 부대를 속함성을 차지하기 위한 제물로 내놓는다. 그러면서 김유신에게 퇴각명령을 전달하는 전령으로 급파한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고 이야깃속의 설원공은 말하지만, 사실 김유신만큼 그런 이는 적지 않다.

신라에서 화랑도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화살받이였다. 젊은 그들은 전장에 나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지금처럼 무기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백제와 고구려의 협공을 당하고 있는 신라로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로지 모든 젊은이들이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고 나아가 죽음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전투의지를 고조시켜야 했다.

덕분에 관창을 비롯한 화랑도들은 엄청난 희생을 해야 했다. 영화 <황산벌>에도 나오지만 김유신은 어린 화랑을 희생시켜 군기를 높이는 방법을 자주 취했다. 덕분에 대다수 신라귀족들은 아들을 잃었고, 그는 자신의 아들인 원술마저 희생시키려할 정도로 철저했다.

다시 <선덕여왕> 10화로 이야기를 돌리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싶다. 전장의 화려함을 그리기란 쉽다. 더구나 어저체럼 물량을 동원했다면 얼마든지 땟깔 좋은 화면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선덕여왕> 제작진은 그런 길을 마다했다. 한참 화려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적병사를 죽이고도 공포에 떠는 덕만 등의 모습을 그려내며 인간 본성에 충실하고자 했다. 특히 낙오된 알천공의 비천지도와 덕만의 용화낭도는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었다.

알천공은 임전무퇴의 화랑답게 아름답게 옥쇄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덕만은 살기 위해 ‘원진’을 펼치는 기지를 발휘한다. 만약 이전의 사극이라면 아마 덕만의 재치와 통솔력으로 모두가 살아가는 판타지를 그려냈을 것이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그 와중에서도 전장의 참혹함을 그려냈다. 덕만의 기지로 절망적인 상황이 약간 희망적이 되었지만 그뿐이었다. 동료병사는 숫적 열세를 이기지 못해 결국 죽어나갔고, 적병사를 베던 덕만도 지쳐 쓰러졌다. 결국 10화 마지막 장면은 참혹하게 죽은 시체들이 진창에 널부러져 있고, 까마귀들이 날아와 시체를 파먹는 흉악한 장면으로 끝맺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통해 ‘반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번 10화는 그야말로 종합 선물 세트였다! 속함성을 함락하기 위해 아막성으로 김서현 부대를 보내는 설원공의 모습은 능수능란한 대장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병법36계의 하나인 성동격서를 응용해 전략목표인 속함성을 취하면서 자신의 정적인 김서현을 사지인 아막성으로 몰아넣는 모습은 유능한 장군과 권력암투에 이골이 난 기득권층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뿐인가? 알천공을 위시한 화랑도는 별다른 대사 없이 표정과 눈빛만으로 전투기계인 화랑도의 모습을 현대에 되살려냈으며, 덕만을 위시한 용화낭도는 그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이중적 모습을 그려냈다.

게다가 겨우 60분의 방송분량에서 몇 명의 배우들만이 눈에 띄기 십상인데, 이번 10화에선 대장군인 설원공을 비롯해 멀리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미실의 모습과 뜻이 있으나 힘이 없는 김서현의 모습. 자신의 낭도들을 걱정하는 김유신과 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고자 자신의 모든 능력을 쥐어짜내는 덕만의 모습까지. 다채롭게 그려내 모든 인물들이 마치 실제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는 <선덕여왕>의 제작진과 출연진의 호연이 빚어낸 걸작품이었다. TV 드라마 한편에서 전쟁의 아름다움과 참혹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권력암투와 전투. 그리고 전쟁 뒤에 숨겨진 계산. 일개 병사의 심정과 화랑도의 정신까지 다채롭게 그려낸 부분에선 그저 감탄사를 연발할 뿐이다.

끝으로 계속해서 ‘살아남아라’라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덕여왕> 10화 방송분은 마침 경제 위기속에 끝없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마세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9화에서 김유신이 말한 것처럼 “비분강개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처럼.

<선덕여왕> 10화. 어제 방송분은 단 한편에 인간세를 다채롭게 담아낸 명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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