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은을 보고 있으면 때때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든다. 그녀는 어떻게 보면 화려한 미녀는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나이도 많다. 어떤 의미에선 그렇게 존재감이 확 느껴지는 인물도 아니다.
허나 그녀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고 있자면 부담없는 웃음이 나오고 푸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엊그제 방송된 <일밤>의 ‘우리 아버지’에서 그녀는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아버님들이 일어나서 씩스팩을 공개할때는 놀라움(?)과 민망함이 절반씩 섞인 특유의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
지압하는 아버님에겐 목부근이 아프다고 나갔다가 아픈 지압에 ‘잠깐만 아저씨. 아니 아니 아버님’이라는 반말성 비명(?)을 지르며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10남매를 둔 가정이 나왔을 때는 손가락을 펼쳐보이는 리액션을 펼치며 놀라움을 표시했고, 특이한 질병 때문에 시력을 잃어가는 개그맨 이동우의 딸을 보고는, ‘아버지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농을 건네기도 했다.
놀이방에서 장난감 피자를 보고는 구라에게 ‘드세요’라고 장난으로 권하기도 하고, ‘우리 아버지’ 코너에서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선물용 트럭 앞에선 갑자기 도우미처럼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그리고 어제 방송된 <놀러와>에선 유재석이 ‘라디오 방송을 같이하고 싶은 남자파트너가 있느냐?’란 질문에, ‘단독으로 하면 안돼요’라고 했다가 바로 양희은에게 ‘역부족일 것 같다’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허나 정가은은 절대 굴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휘력이 달릴 것 같다’라는 치명적인 말을 들었음에도 별로 기죽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에 김원희는 정가은의 장점을 ‘절대 굴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양희은은 ‘저렇게 밸 없는 사람이 무섭다. 야단을 맞아도 계속 들이대잖아’라며 간접적으로 칭찬했다.
그리고 이후 정가은은 이번 회에선 야단맞는 캐릭터로 가기로 했는지 수시로 양희은에게 혼이 났다. 최유라가 라디오 진행자는 ‘편지를 읽어야 된다’라는 말에 양희은은 ‘쟤가 왜 편지를 봐?’라며 면박을 줬다.
필자가 정가은을 눈여겨 보는 이유는 그녀의 기민함 때문이다. <일밤>의 경우, 어떤 의미에서 정가은은 매우 불리한 위치였다. 신동엽과 김구라는 절대로 그녀를 챙겨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오늘날 정가은은 자신이 없으면 안될 정도의 위치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는 본인이 말하는 것이 아님에도 항상 상대방의 눈과 마주치려고 애썼고, 사소한 언행에도 치아가 고루 보일 정도로 크게 웃어주고 강한 리액션을 해줬다. 또한 자신이 치고 들어갈 구석이 보인다. 소품을 이용했고, 재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성형이 놀림감이 되는 것을 감수했다.
그러면서 때론 감성이 부족해 눈물이 없는 두 남자 진행자를 대신해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 나오면 눈물을 흘려 감동을 더해줬다. <일밤>의 ‘우리 아버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데는 정가은의 공로로 상당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럼 이제 두 번째 출연한 <놀러와>의 경우는? 아쉽게도 정가은은 <우리 아버지>만큼 맹활약은 펼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난번과 이번에 출연한 이들이 바로 워낙 대단하고 노련한 여걸들인 탓이다. 지난주 방송엔 박해미-신애라-오정해였고, 어젠 양희은-김혜영-최유라가 출연했다.
워낙 다들 말이 많고 카리스마가 대단한 인물들이라, 정가은이 활약을 펼칠 기회가 적었다. 게다가 어제 방송엔 양희은이 정가은을 혼내는 큰언니 역을 도맡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정가은은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몫은 잘 해냈다. <우리 아버지>에서 보여줬듯이 화면에 잡히는 것과 상관없이 항상 게스트들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이고 정말 재밌거나 중요한 순간에 큰 리액션으로 극의 활력을 더했다.
최유라가 대선배 이종환과의 에피소드를 말하자, 마침 녹화를 끝내고 근처에 있던 김제동이 장난삼아 ‘담배 냄새 날까봐’라며 최유라에게 등을 돌리자, ‘그럼 저는 맡아도 되요?’라며 제동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최유라가 김치를 1년에 300포기를 해서 주변에 나눠준다고 하자, ‘저도 김치 없는데’라고 말해, 최유라가 ‘줄께’라고 말하게 만들었다. 물론 옥의 티도 있었다. 양희은의 ‘백구’란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하자, 유재석이 ‘좋아하는 노래가 있냐?’라고 묻자, 소심하게 ‘없다’라고 말한 부분은 조금 순발력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허나 그 외엔 전체적인 진행에 있어서 보조 진행자로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정가은은 특유의 분위기 메이커로서 적절한 타이밍에 투입되어 흥을 북돋우고, 출연진의 기를 살려주었다. 때론 스스로 미운 역을 자처해 구박데기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론 푼수로, 때론 백치로, 때론 뻔뻔함으로 그때그때 알맞은 역을 소화해내며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다.
어떻게 보면 화려한 개인기도 없고, 엄청난 미녀가 아닌 그녀가 공중파의 예능 프로에 잇달아 섭외가 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충분히 예쁘고 멋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길을 마다하고 대중에게 친근하고 편하게 다가가는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다.
그녀의 수수함과 편안함과 끝없이 다가가는 매력으로 인해 <일밤>의 ‘우리 아버지’의 고정 엠씨가 되고, <놀러와>에선 보조 진행자로, 오늘 방송될 <강심장>에는 2010년을 빛낼 예능기대주로 가희-나르샤 등과 함께 출연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2010년 말에는 그녀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서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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