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재발견된 배우, 월드스타 이병헌

朱雀 2010. 2.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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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설 특집으로 KBS에선 <이병헌이 있다> 다큐가 방송되었다. 물론 다큐다 보니 그에 대해 과장되게 나온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우리가 TV와 드라마를 보며 너무 익숙해져 우리도 모르게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그를 재발견하게끔 해준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다.

이병헌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작년 한해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냈다. 우선 할리우드 진출작인 <지.아이.조>는 할리우드 배우인 채닝 테이텀을 넘어설 정도의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줬다. 하여 그는 일찌감치 2편에 출연을 확정지었다.

세계적 명성의 트란 안 홍의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 조쉬 하트넷-기무라 타쿠야 등과 함께 출연하며 명성을 떨쳤고, 국내에선 드라마 <아이리스>로 대히트를 치며 할리우드-일본-한국-아시아를 잇는 범세계적인 명성과 성공을 거두었다.

<이병헌이 있다>는 그런 이병헌의 자취를 따라갔다. 이병헌은 2009년 8월 6일 LA 차이니스 씨어터에서 가진 <지.아이.조> 시사회에서 주연 배우들과 함께 장난을 치고 인터뷰에 응했고, 여주인공인 시에나 밀러는 더없이 친밀한 태도를 그에게 보여줘 ‘둘이 사귀는 거 아냐?’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시에나 밀러는 인터부에서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고 연기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채닝 테이텀 역시 이병헌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뿐인가? 감독인 스티븐 소머즈 역시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격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새삼 이병헌이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방송을 보면서 인상적인 것은 미국에서 시민과 영화 관계자들의 인터뷰였다. 그동안 우리는 뉴스등을 통해 이병헌의 인기가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본 연예인들조차 꿈으로 여기는 도쿄돔에서 혼자 행사를 가져 약 5만명의 관객석을 꽉 채우고, 일본 방송국 TBS사가 <아이리스>를 구매해 오는 4월 프리미엄 시간대에 방영하게 된 것은 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허나 미국인들이 <트랜스포머>와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왔다는 코믹스인 <지.아이.조>의 스톰 쉐도우를 그와 동일시 한다는 부분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한 미국인 그를 ‘성룡을 잇는 훌륭한 배우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부분은 조금 과정이 섞여 있겠지만, 보는 입장에선 괜시리 즐거워지는 말이었다.

 그리고 LA에서 스톰 쉐도우 복장을 한 배우를 만나 그가 함께 사진을 찍는데, 관광객들이 그를 향해 플래쉬를 터트리는 부분은 그가 미국에 까지 알려졌다는 증거로서 확정적이리라.

 듣기로는 원래 <지.아이.조>에서 스톰 쉐도우는 지금보다 복면 복장으로 더 많이 등장하는 걸로 안다. 그런데 이병헌이 스티븐 소머즈 감독에게 어필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후반부에 복면과 상의를 벗어던지고 멋진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찍힌 것으로 안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배우가 할리우드 감독에게 당당히 주장을 하고, 목적을 이룬 부분은 칭찬하고 싶은 대목이다.

 

화면은 얼마전 일본에서 있었던 한류 4대천왕 팬미팅으로 이어진다. 당시 이병헌은 <아이리스>의 막바지 촬영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간신히 비행기를 타고 일정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밖에 없었다. 제대로 리허설을 해보지 못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갖고 행사를 진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새삼 ‘대스타’로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방송 중간에 인상적인 부분은 일본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인 오가와 마리의 출연이었다. 그녀는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감동을 받아 어떻게든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고, 그 ‘보답’을 이병헌에게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여기에 한국팬들의 정성이 보태지면서 보다 의미깊은 ‘기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연주를 모아 CD로 제작했고, 판매수익금을 불우이웃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일본 여성들에게 감흥을 줘서,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이병헌도 그런 사연이 있었는지 몰랐던 탓에 매우 신선했다.

화면이 바뀌면 다시 꿈의 할리우드에 위치한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나온다. 영화 <지.아이.조>의 프로듀서인 에릭 하우잼은 배우 이병헌을 향해 아낌없는 칭찬을 늘어놓는다. 거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여되어 움직이는 할리우드에서 이병헌에게 <지.아이.조> 2편이 ‘스네이크와 스톰 쉐도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그의 확정된 말은 1편보다 그의 비중이 훨씬 늘어날 것이란 말이라 절로 흐뭇해질 지경이었다.

 

이병헌은 프로듀서를 만난 자리에서 한효주와 배수빈을 비롯한 소속사의 국내 배우들을 홍보하는 것도 잊지 않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의 홍보를 맡고 있는 수잔 패트리콜라가 ‘섹시한 배우’라며 극찬을 늘어놓는 광경 역시 보기 좋은 것이었다.

 

재밌는 장면 중의 하나는 <아이리스> 촬영차 아키타 현에서 그가 지낸 호텔과 촬영한 가정집의 사람들이었다. 호텔 사장은 그가 피운 꽁초와 버린 생수병까지 일일이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하고, 그가 촬영차 머물렀던 온천과 가정집에서 마치 ‘교주’처럼 기억되는 모습은 마치 다른 나라 배우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이채로웠다.

이병헌은 2009년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그는 <지.아이.조>로 성공적인 할리우드 데뷔를 했고, <아이리스>로 30%대의 시청률과 KBS 연기대상을 차지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도 인정하지만 그의 연기력은 단순히 액션배우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부터 연인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이 ‘미친 연기력’을 소유한 이병헌을 계속 바라보게 되는 것은, 70년생인 그가 우리나라 나이로 40이 넘었다는 부분에도 있다.

 

40이면 좀더 안정적인 곳에 머무려 들기도 하련만, 그는 기꺼이 할리우드까지 날아가 도전을 하려하고 있다. 다른 배우라면 ‘중년 배우’로 기억될만한 나이에 그는 이제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다.

<이병헌이 있다>라는 프로를 보면서 아쉬운 것은, 오늘날의 이병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조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정’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가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칸 영화제에 진출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월드스타로의 발판을 놓은 것을 살짝 언급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그의 현재 성공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았나 싶다.

허나 단순히 배우가 아니라 국위를 선양하며, 교포들의 응원을 받으며 가슴속이 ‘뭉클’해진다는 이병헌의 이야기와 할리우드에서 일본에서 국내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연기자로서의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이병헌을 다시금 돌아보게끔 하는 계기를 주는데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리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작품을 현재 진행 중이고 올해 말쯤에는 <지.아이.조> 2편으로 우리 곁에 찾아올 이병헌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것은 일본과 미국 관계자들이 인정할 정도로 ‘깊은 존재감’를 지닌 배우 이병헌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록 작년말 안 좋은 사건이 있긴 했지만, 이를 잘 극복하고 올해에도 작년에 이어 멋진 활약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병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그의 뒤를 이어 한국 배우들이 일본과 미국에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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