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추노'의 안타까운 2인자들, 황철웅-천지호

朱雀 2010. 2. 1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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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13화 예고편을 보니 황철웅이 살인귀가 되어, 송태하와 연관된 사람들을 모조리 도륙하며 행방을 쫓는 장면이 나와 안타까움이 절로 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부하들을 잃은 천지호가 좌의정 대감댁까지 몰래 숨어들어가, 뇌성마비에 걸린 부인에게 칼을 들이밀며 행방을 묻는 장면까지 나오는 걸 보니 참으로 답답할 지경이었다.

황철웅과 천지호는 모두 1인자가 되지 못한 2인자들의 상처와 비애을 가진 인물이다. 먼저 황철웅을 보자! 그는 무과에 당선된 이후, 최고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송태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두철미하게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그는, 어디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드라마상에서 황철웅이 송태하에게 자신을 ‘내려본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 꼬투리 잡기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에서 잠깐 나왔지만 병자호란 시절, 황철웅은 송태하에게 목숨을 빚진 일이 있다. 아마 그 일은 그의 자존심에 더욱 깊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만약 송태하가 조금만 실력이 떨어졌어도 지금처럼 황철웅이 지독한 콤플렉스에 시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무예실력은 너무나 탁월했다. 10화에서 보여졌지만, 송태하가 등장하기 전까진 황철웅의 상대는 없었다.

 

그는 거의 무인지경으로 조선반도를 휘두르고 다녔다. 몇백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거리에서 급조한 나무창을 던져, 궁녀를 절명케 하고 곽한섬을 거의 죽음직전까지 몰아간다. 그가 목적한 원손 살해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예의 인생의 최대 방해자인 송태하가 등장하고, 피말리는 사투 끝에 배에 상처를 남긴다. 허나 그는 알량한 ‘옛정’을 생각해 황철웅의 목숨을 거두진 않는다.

송태하는 실수한 것이다! 차라리 그때 황철웅을 죽였어야 했다. 황철웅이 만약 최선을 다한 대결에서 진후, 목이 베였다면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살려줌으로써 더욱 그의 자존심에 더욱 깊은 고랑을 파버린 것이다.

송태하 일행을 쫓아온 관군들을 죽인 것엔 아마 분풀이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상처입은 황철웅이 수십명의 관군을 몰살할 정도인데, 그런 자를 꺾은 송태하의 무예는 가히 조선제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12화에서 황철웅은 상처입은 2인자의 아픔을 너무나 잘 드러낸다. 한양까지 와서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차마 처갓집엔 가질 못하고 어머님이 사는 곳에 왔다가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들어가질 못한다. ‘내가 갈 곳이 없구나’라는 대사는 너무나 처절해서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기절한 그가 우연히 오포교의 눈에 띄여 좌의정 대감댁에 돌아가고, 눈 뜬후 당하는 추궁에서 ‘사위도 자식인데, 몸의 상처부터 묻지 않습니까?’라는 대사는 여러 가지 의미를 띄었다고 본다. 자신을 단순히 철저한 이용물로만 여기는 좌의정에 대한 원망도 있을 것이고, 의리와 정리를 모두 배신하고 의탁한 인물에 대한 한서린 절규였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정략적으로 결혼했지만 자신을 서방으로 끔찍이 생각하는 뇌성마비 부인에게 ‘혼인한 것이 실수였다’라고 내뱉는 황철웅의 모습은, 무예실력은 조선에서 두 번째일지 몰라도 어디 한군데 마음을 기대지 못하는 딱한 그의 처지가 너무 안쓰럽게만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가 훈련원 무관들을 모조리 배신하고 좌의정 대감댁으로 들어간 것은 아마도 그것이 1인자 송태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지점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열등감에 빠진 한 수재의 면모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온다.

 

또 다른 2인자 천지호는 이대길이 나타나기 전까진 추노계의 명실공히 1인자였다. 우연히 길바닥에서 만난 이대길을 거둬 수하에 들일 때만 해도 설마 호랭이 새끼를 자신이 키우리라곤 상상치 못했다.

몇 년 후 자신에게서 모든 기술을 전수받은 이대길이 독립해서 추노계의 1인자로 군림할 때 천지호가 느꼈을 비애와 상처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여 그는 비루한 길바닥 출신답게 천박한 방법을 쓴다.

언년이를 쫓는 이대길의 심리를 이용해 함정을 파놓고 기다려 죽이려고 한다. 그것이 실패하자 이번엔 송태하와 싸우고 있는 이대길에게 화살을 퍼붇고, 그것도 실패하자 자신이 이대길을 구했으며, 송태하에게 죽기 직전까지 갔다고 유언비어를 사방으로 퍼트린다.

 

그가 위험한 한양양반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돈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기실 1인자가 되고 싶은 욕망도 컷을 것이다. 아무리 추노계의 1인자라도 결국은 죽음에 한발자국 걸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현재 그들의 삶이다.

따라서 확실하게 목돈을 벌어서 바닥을 뜨는 것이 이대길을 뛰어넘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대길도 현재 송태하를 쫓는 것엔 그런 목적도 어느 정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황철웅을 막상 쫓아가보니 부하들은 모두 죽고 자신만 간신히 살아돌아온 상황에서 그가 느꼈을 분노와 슬픔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황철웅이 송태하를 잡기 위해 살인귀가 되고, 되도록 양반들과는 얽히지 않으려 하던 천지호가 감히 좌의정댁의 귀한 따님에게 칼을 겨눌 정도로 막 나가는 것을 보니 그저 딱하고 불쌍한 마음이 한구석에 차오르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에선 천재 모짜르트를 끝없이 질투하고 시기하는 살리에르의 인간적인 면모가 겹쳐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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