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덕만이 아니라 시열이 빛난 '선덕여왕' 11화

朱雀 2009. 6.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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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겁에 질려 벌벌떨던 시열이 하일라이트 장면에서 백제 장수를 죽이는 장면은 시청자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거기에 더해 백제장수의 칼을 맞아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며 왜 자신이 그토록 겁쟁이였는지 설명하고, 전쟁터에서 산화하는 젊음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생각하게 한다. 비록 몇분 안되는 분량이었지만 그 분량만큼은 시열이 <선덕여왕>의 주인공이었다.


반면 11화에서 원톱으로 나선 이요원의 연기는 시열보다 못했다. 그녀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자 화내고 고함질렀지만 그냥 ‘연기하고 있네’라고 밖에 다른 느낌이 없었다. 아역 남지현의 선머슴아 같은 부분은 비교적 잘 이어갔지만, 그녀의 다른 중요한 부분인 총명함을 잊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11화에선 극한 상황이 반복된다. 패퇴한 김서현 부대는 본진을 살아가기 위해 미끼부대로 알천공의 비천지도와 김유신의 용화향도에게 임무를 맡긴다. 죽을 자리로 들어간 이들 부대의 지휘는 알천이 맡는데, 그는 부상병을 바로 죽이는 참혹한 행동을 옮긴다. 그가 내세운 이유는 부상병과 함께 움직이면 기동력이 떨어진다는 것. 김유신과 용화향도는 마음으론 동의하지 못하지만 군령인지라 어쩔 수 없이 따른다. 그런데 여기에 감히(?) 일개 낭도인 덕만이 대들더니 기어이 자신들의 퇴로가 적힌 서신을 먹어치우는 행동을 하면서 다함께 살아갈 것을 강권한다.

전쟁이란 매우 극한 상황을 군인에게 요구한다. 순간의 판단으로 삶과 죽음이 갈리는 전장에선 때론 아니라고 생각되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알천은 바로 그런 ‘필요악’을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된다. 그리고 부상병을 죽이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예의 목숨을 내놓는다. 그의 방식엔 동의를 못해도 부하들이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장수마저 원칙을 지키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개 낭도인 덕만이 감히 내세운 원칙은 오늘날 사회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허나 실제 전장에서 그럴 수 있을까? 그것도 삼국시대에? 11화 마지막 부분에 나왔지만 원칙적이라면 석품이 나선 것처럼 덕만을 그 자리에서 목을 베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 군령은 지엄한 것이며, 항명은 군 지휘체계를 무너뜨리는 행동이니 그런 식으로라도 지켜져야 옳다.

그러나 덕만에게 목숨을 빚진 비천지도와 용화향도들이 자신들의 목을 내놓음으로써 어쩔 수 없이 석품은 한발 물러서게 된다.

김유신과 용화향도는 11화에서 두 번이나 사지에 들어간다. 첫 번째는 미끼부대로서, 두 번째 역시 다른 부대의 탈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기꺼이 사지로 뛰어든다. 여기엔 덕만을 살리기 위해 김유신과 용화향도가 희생을 한 탓이기도 하다.

11화에서 가장 시청자에게 내세우고 싶었던 것은 원톱 덕만 즉 이요원이었다. 그녀는 일개 낭도로서 감히 지휘권자인 화랑에게 맞서고 두려움으로 군을 통솔하려는 지휘부에 맞서 목숨을 내놓고 모두가 함께 살아갈 길을 도모하도록 상황을 만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요원이 보여주는 연기는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비장한 전장에서 일장 연설을 해야했던 이요원의 대사엔 고함만이 메아리쳤을 뿐, 그 어디서도 비분강개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지난번 10화에서 나름 어린 남지현의 연기를 비교적 잘 바톤터치했던 이요원은 이번 화에선 남지현의 총명함을 이끌어내는 덴 실패했다(선머슴아적부분은 어느 정도 이끌어냈으나, 중요한 다른 부분을 이끌어내지 못했으니 이는 현 상황에선 반쪽의 성공이다).

원톱으로 나선 이요원보다 빛난 것은 오히려 용화향도의 겁쟁이 시열(문지현)이었다. 그는 항상 겁에 질려 누구보다 먼저 도망갔고, 이번 화에선 부상 때문에 행여 알천랑에게 죽음을 당하진 않을지 몹시 겁에 질렸다. 그런 탓에 백제군에 쫓기다가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다. 그런 시열을 끝까지 데리고 살 것을 강요한 것은 덕만이었다. 모두가 살기 위해 김유신이 내세운 회심의 반격전에서 시열은 백제군 장수를 죽이는 전과를 올린다. 허나 안타깝게도 백제장수의 칼에 맞아 그 역시 죽고 만다. 그가 죽음을 맞으면서 보여준 연기는 그야말로 신인이라곤 믿기지 않는 대단한 것이었다.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가 걱정되어 겁쟁이가 되었는데, 막상 칼을 맞고 보니 이제 겁이 없어졌다는 그의 심정토로는 시청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으리라. 그 짧은 순간에 시청자는 왜 그가 그토록 겁쟁이에 삶에 연연했는지 이해하고, 더불어 그의 죽음을 슬퍼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알아듣기 힘든 발음의 대사였지만 충분히 뜻은 전해졌다. 11화에서 이요원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런 문지현의 연기였다. 덕만 이요원은 이번 화에서 가장 많이 비췄고 많은 대사를 했다. 그가 나중에 선덕여왕이 되어 펼친 정사를 위해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펼치고자 할애한 것이 11화 곳곳에서 티가 났다. 허나 안타깝게도 연기력 부족으로 그런 것이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운 대목이다.

11화를 보자면, 긴박한 전투의 연속이었고 대본은 꽤 괜찮게 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중심이 되는 덕만이 뭔가 겉돌았고 김유신 역의 엄태웅 역시 인상만 썼지 고뇌하는 지휘관으로서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긴장감이 넘치고 빠른 전개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연출이 다소 느슨했다고 밖에 여겨지질 않는다.

덕만보다 겁쟁이 시열이 더 돋보였고,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동료의 칼에 내놓는 알천이 김유신보다 돋보였다. 특히 알천은 11화 거의 마지막에 석품이 덕만을 죽이려 하자 오히려 옹호하고 나서 그의 투철한 군인으로서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비록 군율을 위해 애쓰지만 다른 이의 공적은 인정하며 온당치 못한 처사엔 항의하는 남자다운 모습을 말이다.

11화의 임무는 아마 덕만의 휴머니즘을 앞에 내세우고 더불어 김유신을 어느 정도 돋보이게 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연의 연기력이 부족해 오히려 그들보다 알천과 시열이 돋보여 버린 회가 되었다. 그저 안타까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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