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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21세기 초강대국?! 71

중국에서 기술혁신은 절대 불가능하다?!

증기 기관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2005년 닭의 해, 프랑스학자 기 소르망은 특별한 결심을 한다. 바로 ‘중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 1년간 직접 살기로 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기 소르망은 굳이 중국을 알기 위해 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주 (이전까지 누구보다) 중국을 방문했으며, 오랜 시간 연구해온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중국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 굳이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기 소르망은 ‘실천하는 지식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은 그가 1년간 중국에서 외면 받는 이들, 그러니까 반체제 인사부터 평범한 농부, 에이즈에 걸린 근로자 등등을 직접 인터뷰하며 얻은 나름대로의 결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은 시종일관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

공한증의 시작은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일본에서 ‘차이니즈 드래건’이란 신문사를 운영하는 콩젠은 공자의 75대손으로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에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서술한다고 자부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불쾌하고 제멋대로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각을 ‘중국인+지식인’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꽤 흥미롭다. 그는 일본에 대해 시종일관 불쾌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등장하는데, 일본과 중국의 문화가 다른 것에도 기인하고, 무려 30만명이 학살당한 ‘난징대학살’같은 과거사가 전제로 깔리기도 한다. 오늘날 반성 없는 일본에 대해 저자는 화를 내고 분노를 거침없이 표출한다. 그러면서 비슷한 과거를 지닌 한국에 대해선 '귀인‘이니 뭐니 하면서 좋은 감정을 드러낸..

덩샤오핑 사후의 중국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1997년 2월 19일 덩샤오핑이 사망했을 때,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선 중국공산당이 무너질 것이라 보았다. 이들의 시각에선 1대 권력자인 마오쩌둥의 경우 카리스마로 중국을 휘어잡았고, 비록 주석은 아니었으나 덩샤오핑은 마오쩌둥과 더불어 공산당혁명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개방과 성장을 촉진시켰기 때문에 가능했으나, 세 번째까진 권력승계자가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 보았다. 왜냐하면 서방언론의 눈엔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한세트로 보았고, 구소련이 시장경제를 채택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대와 2대 권력자와 달리 3대부터는 국가를 세우는데 큰 기여를 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의 권력승계를 두고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 이거 어디..

왜 중국은 100년이나 아편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아편의 재료가 되는 양귀비 -사진출처: 위키백과 중국 관련도서를 읽으면서 한 가지를 강력하게 사로잡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국은 왜 아편에서 벗어나는데 100년이 넘게 걸렸을까?’였다. 우리가 아는 아편전쟁은 1842년 난징조약을 맺으면서 청나라에게 굴욕과 더불어 ‘아편’이 중국에 공공연하게 나도는 계기가 되었다. 무역에서 흑자를 보기 위해 아편을 뻔뻔하게 유통시킨 당시 서구열강의 태도도 놀랍지만, 그 이후 아편이 중국에 일으킨 문제를 보면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아편은 중국인들을 중독시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기 전까진 맹위를 떨쳤다. 1880년대는 4천만명이 흡연자고 전체 인구의 5%인 2천만명이 ‘중독자’가 될 지경이었으니 그 폐해는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아편 때..

인해전술과 중국군의 현대화

스타크래프트를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동감하겠지만, 초반 저글링 러시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필자처럼 ‘심시티하냐?’라고 놀림을 받는 이들이라면, 아직 질럿도 뽑지 못했는데, 쳐들어오는 저글링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저글링은 금방 뽑을 수 있고 이동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방어력이 낮은 약점이 상쇄된다. 거북이와 맞먹는 질럿으론 저글링을 잡을 수 없어서 놀림을 당하기 일쑤고, 게다가 저글링이 3단계까지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개미떼처럼 몰려올 때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공포가 들 지경이다! 국민 게임 ‘스타’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저글링 러시’는 인해전술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인해전술’하면 우리에게 이전까지 익숙한 광경은 6.25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중국이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는 이유

중국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외환보유고가 무려 2조8500억 달러에 달한다. 2위인 일본이 약 1조 달러 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다. 개인적으론 왜 이렇게 중국이 미련할 정도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흔히 외환보유고는 ‘많이 쌓을수록 좋은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외환보유고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기 쉽다. -대외자산과 대외부채를 동시에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중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의 입장에선 ‘위안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다. 중국 지도부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왜 이토록 높은 외환보유고를 고집하는 것일까? 관련기사: 中 12월 기준 외환보유고 2조8500억弗 나는 그 이유를 지난 ..

중국은 왜 공자를 부정했는가?

산동성의 공자묘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현재 중국은 약 88개국에 공자학원을 세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공자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우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공자의 3천명의 제자들의 장엄한 의식을 통해 ‘공자의 부활’을 화려하게 이미 경험한 바 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1973년 공자가 몰락한 노예 소유 귀족의 대표인물이라며 제 10차 당대회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으며, 그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현의 묘비가 홍위병에 의해 두동강이 났던 일을 돌이켜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한 것에 버금갈 만큼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할렐루야! 물론 공자의 복권은 1976년 덩샤오핑의 복귀와 함께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며, 차츰 권위를 더하더니 마침내 2000년대가 되면 더욱 활발하게..

마오쩌둥과 진시황제는 닮았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 -사진 출처: 위키백과 진시황제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불로장생의 약을 애타게 찾은 황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 호화로운 궁전인 아방궁을 짓게 만든 장본인? 1974년 3월 발견된 이래 계속해서 발굴중인 진시황릉의 주인? 분서갱유? 만리장성? 아마도 진시황제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그 정도에서 멈출 것이다. 진시황제는 이름 그대로 ‘최초의 황제’를 뜻한다. 진시황제는 춘추전국시대(BC 770-221)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로, 진나라의 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이 대단하다고 여겨 전설로 내려오는 군주인 삼황오제에서 따와 ‘황제’라고 칭했다. 사실 진시황제의 업적은 대단하긴 하다. 진시황제 이전까지 중국의 역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은-주의 세 왕조가 등장하긴 하..

중화사상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다?

를 읽어보지 않은 이라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워낙 유명해서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보는 순간 누구나 ‘모자’라고 생각한 어린 왕자의 그림은 사실 ‘코까리를 삼킨 보아뱀’이란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생 텍쥐페리는 에서 이런 그림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가 1943년 작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단순히 어린왕자의 모험을 그린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환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중화사상이란 게 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고 믿는 중국의 민족사상”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니까 진한 꽃향기가 퍼져나갔듯이 중국의 뛰어난 문명이 주변..

현대중국을 알려면 청나라를 보라!

‘결혼을 하려면 장모를 보라’는 말이 있다. 딸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머니를 통해 그녀의 다른 면을 알게 되고, (그녀의) 미래 모습을 대충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격언은 결혼을 앞둔 남성에겐 매우 유용한 충고라 할 것이다. 최근 라는 책을 보고 있다. 중국만 30년을 넘게 연구해온 예일대의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명나라 말기부터 현재 중국까지의 역사를 훑어내려간다. 무려 400년의 시간이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통해 현대 중국을 재조명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어떤 국가나 민족도 역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따라서 그 나라의 역사를 알면, 현재의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굳이 400여년전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교수의 열정을 처음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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