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1000억이 아니라 사람을 택한 ‘대물’

朱雀 2010. 10.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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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물>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청자의 마음을 몇 번이고 들썩이게 했다. 첫 번째는 조배호 의원을 찾아가서 6시간동안 심문(?)을 한 하도야 검사의 배짱이었다.

 

사실 하도야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가 김태봉 의원에게 받은 결정적인 증거들은 내부 첩자에 의해 조배호 의원측에 다 넘어간 상황이었다. 거기다 작년까지 검찰청에서 중수부장을 하던 인물이 변호를 맡은 탓에, 법률적으론 그를 옮아맬 방법이 거의 전무했다.

 

하도야 검사는 머리를 다 쥐어짰지만, 이름-주소-직업을 묻는 것으로 그를 잡아두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 그건 객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의 입장에선 ‘통쾌했다’. 물론 조배호 의원에게 결정적인 약점을 하도야가 틀어쥐어 그를 낙마시킨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아무리 드라마이고, 만화지만 흑막정치의 대부를 그렇게 쉽게 보낼 순 없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조배호는 대통령조차도 함부로 부르거나 어떻게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일개 촌구석의 검사가 무려 6시간이나 ‘구금’ 비슷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체면과 자존심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국회의원에게 이런 식의 모욕은 그 어떤 것보다 참기 어려운 것이다.

 

바로 하도야 검사는 정치인의 그런 생리를 찌른 것이다. 남에게 호통치고, 남을 자기 편한 대로 오라가라 하고, 거칠 것이 없는 인물이, 생전 처음으로 자신 뜻대로 할 수 없이 일개 검사에게 자신의 이름과 주소 등을 불러야 하는 것은 몹시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여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말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하도야 검사는 그걸 계산해서 나름의 ‘실리’를 챙긴 것이다.

 

두 번째는 ‘이상’을 말하는 서혜림(고현정)이었다. 서혜림은 어떤 의미에선 너무나 이상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으로 자신의 고향 주민들이 모기떼의 습격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

 

그리고 그녀를 보궐선거에 출마할 새로운 정치인으로 낙점한 강태산(차인표)로 인해 기회를 얻고, 시사 고발 프로까지 찍게 된다. 그런데 서혜림은 방송을 제작하면서 이상한 눈치를 채게 되고, 결국 본부장에 의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사실은 강태산이 산호그룹을 스폰으로 붙여 서혜림을 띄울 프로를 찍은 사실을). 강태산 의원을 찾아가 화낸 그녀는 ‘방송가처분신청’까지 내려고까지 한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거나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싶어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이상은 비록 드라마지만 정말 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은 강태산 의원이었다! 차인표가 연기한 강태산 의원은 이전까지 대권을 위해 조배호에게 엎드린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부각된 측면이 컸다. 그러나 그는 4화를 통해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정치란 뭘까요?

 정치란 절대선과 절대악의 논리가 아닙니다. ‘49%의 악’속에 피어나는 ‘51%의 선의 꽃’ 그게 바로 정치입니다. 매우 위험한 지경에 서 있는 만큼, 우리 정치인들에겐 매우 높은 도덕감이 요구됩니다. 제가 서혜림씨에게 집착하는 건, 서혜림씨의 순수한 열정과 분노에 반해서입니다. 그 분노와 열정이라면 이 나라에 다신 박민구씨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할 수 있겠죠.

 

강태산은 대권을 위해 정략적으로 결혼을 한 인물이다. 산호그룹을 등에 업은 그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할 줄 아는 인물로 보인다. 동시에 조배호가 내민 독배를 마실 정도로 배짱도 있는 인물이다.

 

그렇다! 강태산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회한 정치인에서 한발자국 나간 인물이다. 그는 이상보단 현실에 가까이 간 사람이다. 하여 자신이 할 수 없는 순수한 열정 가진 서혜림을 탐낸다. 그녀가 지닌 순수한 열정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주길 갈망한다.

 

그러면서 그는 서혜림에게 놀라운 제의를 한다.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인 산호그룹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서혜림의 ‘친환경적 개발’ 클로징 멘트를 허락한 것이다. -물론 보궐선거에 나오라는 조건이었지만-

 

그때 강태산이 한 대사는 4화 최고의 명대사였다! ‘고작 천억 따위 아끼자고, 이 나라의 미래를 버려야 합니까?’ 4화에서 그의 장인인 산호그룹의 회장은 대조적으로 ‘천억이 누구 이름이냐?’며 버럭 화를 낸다.

 

이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정치인들은 TV나 국민 앞에서 ‘친환경’이니 ‘국민’을 내세우지만, ‘돈문제’가 대두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바꾼다. 강태산이 지적한 것처럼 ‘보수는 돈 때문에, 진보는 돈이 없어서 친환경을 포기’해야만 했다.

 

심지어 서혜림조차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문학적 액수 때문에 포기하려는 순간에, 강태산은 겨우 서혜림을 승리가 확실하지도 않은 보궐선거에 내보내기 위해 기꺼이 감수하려 한다.

 

나는 거기서 강태산의 새로운 이상적인 모습을 봤다. 분명 그는 세상과 타협했고 적당히 더러움을 묻힌 자이다. 굴지의 대기업인 산호그룹과 정략적 관계를 맺은 그는 분명 노회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더럽고 힘든 정치판에서 ‘희망의 꽃’을 피우고자 서혜림 같은 이를 발굴해 정치신인으로 키우내고자 하는 그의 열의는 ‘서혜림과 다른 면’에서 순수하게 보였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천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현실정치에선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라 더욱 서글프고 이상적으로 다가온다. 정말 그런 말이 실현되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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