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대물’을 보다가 눈시울을 붉힌 이유

朱雀 2010. 10.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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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물>을 보면서 내 눈시울이 이토록 붉어질 줄은 몰랐다. 지난주 <대물>을 보곤 실망이 많아 원래는 오늘 강하게 비판조로 쓸 계획이었으나, 어제 보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우선 내가 눈시울을 붉힌 이유는 서혜림(고현정) 집으로 찾아온 백성민(이순재) 대통령 때문이었다. 백성민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취재차갔다가 피납되어 결국 사망한 서혜림 남편의 유품을 가지고 찾아간다.

 

사실 백성민 대통령의 입장에선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저 누군가를 시켜서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는 굳이 서혜림을 찾아갔다. 반겨줄리 없는 방문이었다. 문전박대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직접 서혜림 대문의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전국민의 눈과 귀가 쏠릴 수 밖에 없다. 한 국가의 수장이자 대표로서 스스로 몸을 낮춘 그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뿐인가? 남편의 마지막 메모를 보며 ‘죄송하고, 면목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용기가 너무나 마음속 깊이 다가왔었다.

 

 

“우리가 부강한 나라가 되면, 그런 일이 안 벌어지겠죠? 제발 그런 나라 만들어주세요.”

“깊이 새기겠습니다”

 

국민 한사람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대통령,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아는 대통령. <대물>속 백성민 대통령은 비록 국제 정세속에서 힘이 없어 자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한 무능력해 보이는 인물이었으나, 적어도 그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우리에겐 얼마 전까지 바로 그런 대통령이 하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다. 청와대로 돌아오면서 출출하다고 곰탕집 앞에서 차를 세우고 서민처럼 먹고 마시는 백성민의 모습과, 강태산(차인표) 의원 앞에서 자신이 지는 해라면서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아라’라고 훈계하는 그의 모습은 큰 어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소탈하고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민심을 무서워할 줄 아는 모습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체취를 느낄 수 밖에 없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음은 고현정이 열연하는 서혜림 때문이었다. 서혜림은 우연히 김태봉 의원 구속 때문에 검찰지청으로 데모를 하러온 농민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끌려 억지로 그들이 사는 마을에 가곤 그들의 참상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간척사업만 벌이고 내버려둔 간척지 때문에 물웅덩이가 생기고, 거기서 엄청난 양의 모기떼가 발생해 주민과 가축들이 잠도 못 잘 정도로 고통을 받는 삶을 말이다.

 

하여 자신을 걱정한 하도야 검사가 그녀를 납치한 농민들을 ‘구속’하려 들자, 그녀는 농민들의 편을 들며 오히려 외친다.

 

“이 사람들 대신 날 구속해. 사람 나고 법 낳았지, 법 낳고 사람 낳았냐? 이분들 데모한 거 김태봉 때문이 아니라, 모기떼 때문에 데모 했다잖아? 검사란 게 현장 한번 안 가보고, 뭐? 사무실에 앉아서, 구속? 구속 그렇게 쉬워?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죽어나가는 판에 무조건 법 지키라고? 지키다가 죽으라고? 세상에 그딴 법이 어딨어!”

 

서혜림은 그 이후 사회봉사로 직접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상을 보면서, 느낀 바가 있어 전에 근무하던 방송사까지 찾아가 뉴스를 내보내려고 노력한다. 다음편 예고를 보니, 그녀는 강태산 의원에 의해 보궐선거까지 출마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세상에, 이런 국회의원이 있을까? 물론 <대물>은 드라마고, 드라마이기에 이상적인 이야기를 펼칠 수가 있다. 허나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국회의원이 나오길 간절하게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흔히 고위공무원이나 실무자들은 고단한 서민의 삶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고민이 무엇인지, 왜 힘들어 하는지 알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귀찮거나 짜증나면 공권력을 행사해 무마하려고만 든다. 마치 <대물>에 나온 검찰청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작 별 다른 힘이 없던 서혜림은 고난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힘이 되고자 노력한다. 물론 다행히 국내에도 이런 분들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국회의원이 되었거나, 된 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록 권상우가 맡아서 현실감이 덜하긴 하지만, 하도야 검사의 좌충우돌 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겹도록 현실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비리 국회의원을 결국 구속시켜 결국 의원직을 잃게 만들고,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넘버 1을 자임하는 흑막정치의 거두마저 수사하는 그의 모습은 마이클 셀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대두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진실로 보고 싶어 하는 진정한 검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대물>은 아직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여성대통령’이란 파격적인 소재를 내놓은 작품답게 현재까진 피랍 사건과 잠수함 사건 등을 통해 우리 시대의 아픈 부분을 되짚으면서, 속시원히 외치고 있다. 서혜림 대통령이 단 한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첫회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지 않은 이들이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부디 <대물>이 본격정치드라마로서 현실정치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과 정치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버렸다. 그만큼 이야기 전개나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만큼 컸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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