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진정한 한류를 생각한다.

주작 朱雀 2010. 12. 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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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TV를 보면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 진출해서 오리콘 차트에서 1-2위를 동시에 석권하는 쾌거를 이뤄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해주었다. ‘과연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던 회의적인 시각은, 우리 걸그룹의 현란한 춤사위와 빼어난 미모가 일본 걸그룹보다 역시 경쟁력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다. 우리 대중음악계는 그동안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자유롭지 못했다. H.O.T부터 시작된 국내 아이돌 시스템은 익히 잘 알려진 대로 일본에서 직수입한 것이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국내 인기가수에게 ‘좋아하는 가수는?’라고 물음을 던지면, ‘엑스제팬’ ‘아무로 나미에’같은 일본의 쟁쟁한 가수들의 이름이 튀어나와, 저도 모르게 ‘우린 멀었다’라는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유명가수의 노래들은 표절이거나 번안곡 수준인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우리의 사정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변화는 문화강국인 일본에 한국의 우수한 대중음악을 수출하는 셈이니, 그야말로 혁명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언론의 호돌갑 덕분에 우린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이상한 애국심과 자부심은 그런 소식에 더더욱 높은 콧대를 추켜세우게 됐다.

 

그때 우연히 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한국속의 일류’가 주제였는데, 주로 일본 소설을 들고 나왔다. <1Q84> 1, 2권은 국내에서만 판매한지 8달 만에 100만부를 넘게 팔아치웠다. 소설이 거의 팔리지 않는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대단한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라서 가능하다고? 숫자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허나 이제부터 나열한 이름을 눈여겨 보라. 아사다 지로, 시오노 나나미, 요시모토 바나나, 에도가와 란포, 미야베 미유키, 기시 유스케, 오쿠다 히데오 등등...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대지도 못한 수많은 쟁쟁한 일본 작가들이 국내에 작품이 출시되어 있다. 장르도 다양하다. 순수문학부터 추리, SF, 로맨스, 명랑, 모험 등등. 뉴스는 국내에 그들이 얼마나 인기가 있고, 국내 소설가들이 (국내시장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요상한 상황을 설명하며 끝맺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뉴스였다. 우선 뉴스는 범위를 소설로 한정했지만, 실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 <원피스>는 국내 만화책 시장에서 일본 만화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여기에 우리가 인터넷에서 주로 ‘어둠의 경로’를 통해 다운받아 많이들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와 영화까지 고려하면 ‘일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에이. 그렇다쳐도, 어차피 대다수 한국인은 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 소시나 카라의 일본 내 인기에 비할 바가 아니지. 만화책도 애들(?)이나 보는 거고, 다운받아 보는 인간들은 역시 극소수고.”  정말 그럴까?

 

<1Q84> <철도원>이 국내에서 팔아치운 부수는 잊어버리자. 오늘날 소설이 의미를 가지는 부분은 재밌게도 소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모든 영상 컨텐츠의 가장 기본이 된다는 사실이다. <백야행> <사랑 따윈 필요 없어><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101번째 프로포즈> 등등.

 

하여 우리 5천만 국민이 자기소개란에 툭하면 쓰는 ‘영화감상’의 대상은 자신도 모르게 일본 원작이 리메이크된 작품을 의외로 많이 보게 되었다. <꽃보다 남자> <연애시대> <하얀거탑> 등은 아침부터 밤까지 온통 드라마 일색인 한국에서 일류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오늘날 일본 음악은 국내에선 이전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음악 소비풍토는 철저히 국내 가수들 위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우리의 심각한 문제는 너무나 편협한 폭에 있다.

 

국내 음악계는 90% 이상을 아이돌이 점령하고 있고, 그마나 아이돌도 20여개그룹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게 그나마 국내 대중문화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아이돌의 현주소다.

 

소설과 만화로 넘어가면 상황은 심각하다. 소설은 공지영-이외수-김훈 등 몇몇 작가를 빼면 대중이 아는 이가 없고, 그나마도 순수문학에 편중되어 있다. 만화는 웹툰을 제외하면 단행본을 내는 이는 대다수 사라졌다.

 

‘순수문학’외엔 다른 장르를 ‘주변 장르’라고 부르는 우리 문학계의 근거 없는 자부심은 순수문학외의 장르가 고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나마 현대 문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리스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윤대녕, 장정일, 박일문 등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한국 아이돌이 인기를 끌고, <대장금>을 비롯한 드라마가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부분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매우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지만 우리의 대중문화는 몇몇 분야에만 집중된 편협하고 기초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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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한류를 원한다면, 아이돌 뿐만 아니라 일본처럼 록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고 사랑받을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몇몇 소설가만 인기 있는 게 아니라, 순수문학부터 SF와 판타지 등등 다양한 장르에 재능있는 작가가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우린 흔히 기술경쟁력을 논하는 뉴스나 특집 프로그램을 보면 ‘응용과학이 아닌 기초과학부문이 약하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응용과학에만 집중한 나머지, 근본인 기초과학은 부실하기 짝이 없단 소리다. -덕분에 우리는 잘 팔리는 제품의 핵심부품등은 일본에서 수입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당장 잘 팔리는 아이돌과 드라마만 생각하고, 그 컨텐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설이나 만화를 무시하는 오늘날의 풍토는 반드시 우리가 고민해봐야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정말 문화강국이 되고 싶다면 말이다. 지금처럼 몇몇 음악 장르에 편중된 우리 가요계의 현실과 일본 원작 드라마와 영화가 자꾸만 나오는 상황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되집어볼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진정한 한류를 위해서 말이다. 한때의 유행이나 바람이 아닌 진정한 동아시아의 대중문화가 되길 원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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