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공평한 죽음 따윈 없다!

朱雀 2010. 12.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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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의 일이다. 아버지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아버지를 괴롭혔던 병의 진단명은 ‘양성종양’이었다. 아버지는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고통을 호소했고, 몸의 딱 절반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반신불수’ 상태로 2년여를 보내야 했다. 몇몇 대형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았지만, 전혀 엉뚱한 처방과 치료만 받았고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마지막을 결심하고 서울대병원을 찾았고, 그제서야 ‘뇌에 종양이 생겼다는’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수술을 비롯한 부대비용으로 모두 1천만 원이 넘게 나갔다. 그 돈은 내 어머니가 지난 10년이 넘게 피땀 흘려 번 돈이었다. 어머니가 (자식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한푼 두푼 모은 돈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 당시 나는 실직상태였고, 아직 대학생이었던 동생은 그저 병상을 지키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것은 아직까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부분이다-

 

그나마 우린 행복한 상황이란 사실을 당시 병동에서 알게 되었다. 5년이 넘게 중환자실에서 기약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 병간호로 인한 피로와 엄청난 경제적 부담에 그들의 얼굴엔 그늘이 져 있었다.

 

그때 내 눈 앞에 다가온 죽음은 너무나 무서웠다. 죽음의 공포보다 환자가족들을 괴롭히는 경제적-심리적 고통이 내 마음을 더욱 무겁고 아프게 짓눌렀다. 만약 ‘내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황이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치된 아버지의 경우에도 1천만 원이 넘는 돈이 나갔다. 암에 걸린다면 그 몇 배가 들 것은 뻔한 일. 우리 가족들은 그저 내 식구란 이유로 경제적인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다 - 끝도 없이 이어지는 병원비용에 모두들 빚더미에 앉을 것이기에-.

 

나는 그때 소극적 존엄사를 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확실한 치료와 회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차라리 치료를 포기하고 이 세상을 여행하며 내 인생을 정리하기로 말이다.

 

오늘 우연히 손미아 강원대 교수가 2008년도에 작성했다는 보고서 일부 내용을 뉴스를 통해 보게 되었다. ‘암 발생과 사망의 건강불평등 감소를 위한 역학지표 개발 및 정책개발연구’라는 상당히 긴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월수입 355만원 이상 계층에서 암으로 100명이 죽을 경우, 월수입 100만원 이하의 계층에선 160여명이 죽는다는 통계자료였다.

 

왜 암으로 인한 사망에도 ‘부익부, 빈익빈’상태가 나올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고소득 계층은 평소에 건강을 챙긴다. 유기농 채소를 비롯한 건강식 위주로 식단을 꾸리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 면역력을 극대화한다. 또한 암 같은 질병은 조기검진으로 초기에 찾아낸다. 발달된 현대의학 덕분에 초기암은 거의 완치율이 90%이상이다.

 

반면 월소득 100만원 이하 계층은 어떤가?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바쁘고 싼 가격 때문에 라면을 비롯한 패스트푸드를 먹을 수 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싼 유기농 채소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한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으로 인해 몸 한두군데엔 만성질환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픔을 참고 사는 게 일상화되다 보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경우가 다반사다.

 

부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에 언급되지만, 마이클 조던이나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도 있지만, 그들이 좋은 집안과 부모 밑에서 태어나 남들보다 기회가 더 열려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특히 한국처럼 닫힌 사회에선 그런 차이는 더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죽음조차 가난한 자에겐 더욱 비참하게 다가온다. 병에 걸려서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가족들이 허덕이고, 죽음 뒤에는 파산으로 인해 가정은 파괴되어 버릴 수 밖에 없다.

 

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최고로 치는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러나 미국식 자본주의 채택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선 가난한 이들은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한마저 박탈당했다. 그것이 2만불 소득시대를 넘어 선진국 문턱에 섰다는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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