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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 그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지 않는가?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한 정복군주(아들인 장수왕도 있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아니지만)로 민간에 기억되고 있는 광개토태왕은 분명 고구려를 최전성기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의 아들인 장수왕은 이름 그대로 91살까지 장수하면서, 더욱 나라를 강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얼핏 생각하기에는 광개토태왕이 꿈꾼 고구려는 중국의 역대 통일왕조 같은 대제국이었을 거라고 모두들 막연하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랬을까? 문헌상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광개토태왕은 현대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청나라 강희제와 맞먹을 정도로 현명하고 어질면서, 싸움에 나서서는 물러서지 않는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일대의 대영웅이라고 판단된다.

 

우리가 흔히 고구려하면 중국 역대왕조와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패권을 다툰 강대국이란 인상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광개토태왕 이전에는 숱한 비극이 많았다.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은 중원의 실력자로 떠오른 전연의 모용황과 대결을 벌였다가 패해서 모후와 왕비가 포로로 잡혔다. 그뿐인가? 아버지 미천왕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시신과 무려 5만명의 백성들이 사로잡혀가는 비극을 겪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고구려의 위세가 크게 줄었든 것을 보고, 백제의 근초고왕이 병사를 보내서 맞서 싸우다가, 백제의 태자 근구수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국원왕의 비극은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비극이지만, 나라 전체를 봐도 엄청난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고국원왕을 이어 고구려 17대 왕이 된 소수림왕의 작명이 불교식으로 된 것은 불교를 받아들여서 인데, 이는 그가 마음의 위안을 불교에서 얻기 위한 것에도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인 백제가 3만 대군을 이끌고 375년 쳐들어왔을 때도 사력을 다해서 간신히 물리쳤지만, 378년 극심한 가뭄이 들고 거란의 침입으로 8개 부락이 빼앗기는 등의 불운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광개토태왕의 아버지 고국양왕 때도 비극은 계속됐다. 고구려를 괴롭혔던 연나라가 하필이면 무슨 악연인지 다시 부활해서 중원의 실력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385년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요동지역을 빼앗았고, 가뭄과 흉년이 세트로 찾아왔고, 틈만 보고 있던 백제가 다시금 침공해왔다.

 

391년 즉위한 광개토태왕의 고구려는 당시 그러한 상황이었다. 광개토태왕은 어린 시절 아버지 고군양왕에게서 <태왕사신기>에서 그러했듯이, 가문의 비극을 들으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백제의 칼에 흉악무도하게 죽고, 할머니와 백성들이 짐승처럼 끌려가는 상황 등을 전해 들으면서 어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오히려 두려워하면서 소심한 군주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16살의 어린 나이에 위태로운 나라의 군주가 된 그는 예상외였다! 이전까지 소국에 불과했던 고구려의 군주답지 않게 그는 과감한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392년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하더니, 관미성-수곡성을 차례로 점령. 결국엔 백제의 심장인 아리수 북쪽을 차지하고 아신왕에게 항복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이후로 광개토태왕은 숙적 후연과 처절한 전쟁을 진행하며 요동의 실력자로 거듭나고, 숙신과 동부여를 정복해서 땅을 넓히고, 신라를 침입한 왜를 소통해서 사실상의 속국으로 만들어버린다.

 

광개토태왕의 정복사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40살도 안 되는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난 사실을 새삼 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가 만약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심지어 중원의 일부를 차지한 대제국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다.

 

근데 과연 실제로 그랬을까? 필자가 최근에 읽은 <고구려, 전쟁의 나라>에선 다른 의견을 내세운다. 광개토태왕이 꿈꾼 고구려는 강대국이 아니라 강소국이라고. 광개토태왕이 살았을 당시, 중국은 수십개의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광개토태왕은 전쟁만 수행한 군주가 아니었다. 그는 숙적인 후연의 신하를 자청할 정도로 유연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가 신라를 침입한 왜군을 물리치고도, 신라를 차지하지 않은 것은 당시 신라는 작은 나라인데다 사실상 속국을 자청했음으로 무리한 정복사업을 펼칠 이유가 없었다. 백제 역시 번영을 가져온 아리수(한강)을 빼앗음으로써 국운이 기울게 되었다. 따라서 무리하게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시간을 들이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고구려는 위쪽에선 끊임없이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중원은 서서히 정리되어서 실력자로 북위가 떠오르고 있었다. 명분도 없고 국력이 약한 북연을 공격하고 지지한 것에 대해 <고구려, 전쟁의 나라>에선 완충지대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고구려가 시작된 땅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어서 수렵하는 지경이었다. 훗날 국토가 넓어지면서 사정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자연재해가 많았고, 수시로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서 백성이 풍요롭게 살기 어려웠다.

 

따라서 광개토태왕이 전쟁을 벌인 것은 일견 농사지은 땅을 얻기 위한 발로이기도 했지만, 마치 삼한통일의 신라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전쟁의 귀재 광개토태왕이 만약 마음을 먹었다면,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북연을 정복해 한동안은 동북아의 강대국으로 우뚝 서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엄청난 국력이 소모되어서, 다른 중원대륙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나라들처럼 불과 몇십년도 못가서 쓰러졌을 것이다. <고구려, 전쟁의 나라>는 광개토태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만 정복사업을 벌이고, 나머지는 힘의 균형추를 맞추는 등의 일을 통해 백성이 고달프지 않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꾼 군주로 묘사한다.

 

무엇보다 광개토태왕을 전쟁의 패배에 대해 항상 두려워 하는 군주로 그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무적의 군대를 지닌 위대한 정복군주로 오인하기 쉽지만, 광개토태왕은 자신의 할아버지대부터 시작된 비극과 중원의 역사를 보며 배우고 느낀 것이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누구 하나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고독한 군주의 자리에 앉아, 한번이라고 패배하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위태위태한 전쟁을 죽는 날까지 지속해야 했던 그는 충분히 인간적인 고뇌가 넘치지 않았을까?

 

싸움에 나서기만 하면 연전연승을 하고, 무적의 군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항상 중원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힘을 바탕으로 한 정밀한 외교를 펼쳐 자신의 이익을 취하며, 7백년간 나라를 이어간 고구려. 그 힘과 지혜가 몹시나 그리워지는 오늘날이다.

 

참고: <고구려, 전쟁의 나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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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fantasyis.tistory.com BlogIcon 나만의 판타지 아.. 역시 일반적인 사실만으로는 전체를 판단하기 힘들군요.
    그런데 주작님의 글을 읽고나니 오히려 더 대단해보입니다. ^^;;
    2011.03.10 07:1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네 대단한 군주시지요. 이분의 생각이 다시금 이 땅에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2011.03.10 08:4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thinkingpig.tistory.com BlogIcon 생각하는 돼지 이런 왕과 나라가 다시 재현될 수 있을까요?^^* 2011.03.10 07:2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 믿쑵니다~^^/ 2011.03.10 08:4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boyundesign.tistory.com BlogIcon 귀여운걸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2011.03.10 07:54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감사합니다. ^^; 2011.03.10 08:46 신고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1.03.10 08:07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2011.03.10 08:4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crabbit.tistory.com BlogIcon 굴뚝 토끼 뜬금없지만 예전부터 궁금하던 것 중에 하나가
    광개토왕의 실재 이름이었답니다.

    기록이 없으니 알 길이 없으나,
    후대에 붙여진 광개토왕이란 이름 말고
    자연인의 이름은 어떤 이름인지 아직도 궁금하답니다...^^
    2011.03.10 08:1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담덕이 원래 이름 아닌가요? ^^a 혹시나하고 찾아보니 '이름은 담덕 또는 안'이라고 나오는데...이게 아니였나요? 2011.03.10 08:4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slds2.tistory.com BlogIcon ★입질의 추억★ 타임머신으로 과거여행이 가능하다면 고구려를 꼭 가고 싶어요~
    광개토대왕이 좀 만 더 오래살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2011.03.10 08:2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나중에 갈때 저도 꼭 동석시켜주세요.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
    2011.03.10 08:48 신고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1.03.10 09:21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shain.tistory.com BlogIcon Shain 고구려의 왕들이 강인하게 묘사되는 이유가 정말 그럴듯한듯해요
    나약해질 틈이 없을 정도로 치고 밀고 오는 백제와
    치고 내려오는 북방의 나라들 대문에
    쉴 틈이 없었을 듯 합니다...
    근초고왕 이후에 만들어질 KBS 사극의 광개토대퇑은..
    탤렌트 이태곤이 맡는다더군요
    2011.03.10 09:41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이태곤씨가 주인공이라니...상당히 걱정되는데요. -_-;;; 이전에 <연개소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 기억하는지라... 2011.03.10 14:0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log.naver.com/gowk36/10104759959 BlogIcon 예찬 참 항상 군주로써 군사들을 다스려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들은 맘편할 날이 없었을것 같아요,,^^
    광개토 대왕 잘 읽구 갑니다..^^
    2011.03.10 11:37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군주의 자리란 제대로 할려고 드면 끝이 없지요. 참 어려운 자리인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2011.03.10 14:03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니자드 내가 본 분석과도 비슷함. 고구려는 당시 위와 아래로 항상 거듭되는 협공에 힘들어했기에 완전히 본토로 병합하는 것보다는 완충지대를 원했겠지. 신라를 속국으로 삼은 거나 북연의 경우도 그렇겠지. ^^
    2011.03.10 11:44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아! 그리고보니 형이 쓰신 <광개토태왕 정벌기>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군요. ^^;;; 2011.03.10 14:05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yings17.tistory.com BlogIcon 설보라 이제 고구려인가요?ㅎ 정신없어요 중국에서 미국 연예부 기자
    광개토왕이 단명하셨네요~ 지금으로 말하면 한참 일할 나이에~~
    군주의 외로움을 느끼게 하네요~연신 전쟁을 치르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고뇌가 보여요~ 잘 보고 갑니다^^
    2011.03.10 13:4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참 격변기에서 태어나셔서 한 획 굵게 치시고 가셨지요. 참 멋진 분이신 것 같아요. ^^;;; 2011.03.10 14:0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www.ibagu.co.kr BlogIcon 이바구™ - 고구려 입장에서 봐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지금 KBS의 근초고왕에서는 백제 중심으로 서술하니 고국원왕은 되먹지 못한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왕으로서의 영토확장은 모든 왕의 숙원이 아닐런지....
    2011.03.10 14:2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근초고왕>에선 고국원왕이 다소 막되먹은 인간으로 그려지는데,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악역 캐릭터로 설정하다보니 그리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꽤 거리가 있답니다...^^ 2011.03.10 14:5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shlim1219.tistory.com BlogIcon ★안다★ 음...아마도 그 나라는...
    후진주작이 암흑가를 지배하지도 않고,
    애플자드가 혹세무민하지 않는...
    진정으로 강인하고 아름다운 나라였을 것이오.
    인간이 인간다운 나라...흑주작이 백주작이 되는 나라 말이오~^^
    2011.03.10 15:2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저도 그런 나라에 살고 싶어요. 안달복달형님. ^^;;; 2011.03.10 16:0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log.daum.net/frenchlog BlogIcon Lipp 드라마틱한 가족사가 있었군요 ,, 음 ,,
    현명하고 어진 광개토왕 같은 인물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데 말이죠 ..
    2011.03.10 21:49
  • 프로필사진 대빵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011.03.10 22:40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flowers 동아시아에 최고의 군주군여 2011.03.11 04:10
  • 프로필사진 턱돌이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011.03.12 10:32
  • 프로필사진 하모니 음.. 그당시 중원은 실력있는 기마민족이면 누구나 다 한딱거리 했을 만큼 무주공산의 전국시대였는데..
    고구려가 중원의 패자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고구려는 이미 한반도에 정착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기마의 수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죠.. 굳이 중원으로 갈 이유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 때 중원진출했으면 떡실신 당햇을 겁니다. 왜냐면 다른 이민족들은 본진 버리고 아예 중원에 정착할려고 목숨걸고 달려드는데, 식민지좀 넓히려고 원정전 개념으로 접근하는 고구려와는 의지 자체가 달랐으니깐요.. 대신 본진을 지킨 고구려는 오랫동안 만주와 한반도의 패자로 남아있을수 있었죠... 덕분에 한민족은 중화사상에 물들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요...
    2011.03.14 14:29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log.daum.net/crow97-00 BlogIcon 붉은비 시대를 막론하고 고구려는 단 한 번도 백제보다 인구가 많았던 적이 없었다지요.
    정복전쟁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겁니다.^^
    2011.04.12 13:09
  • 프로필사진 ㅇㅇ2222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011.07.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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