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일 낮 12시 <대학토론배틀>은 약 두달간에 걸친 여정을 끝이었다. 연고전으로 치러진 결승전의 승자는 연세대의 토론헌터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착토론배틀>의 결승전은 이미 8월 26일에 있었다.
필자는 기회가 닿아 그 녹화현장에 다녀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대학토론배틀>에 호의를 품고 있다. 이유는 20대의 재기발랄한 대학생들이 서로 진검승부를 펼치기 때문이다. 그들은 토론을 펼칠 때는 뜨거운 불덩어리를 토해내는 용처럼, 성난 사자와 같이 서로 불꽃을 튀기며 싸우지만, 끝난 뒤에는 마치 축구선수들처럼 서로 끌어앉거나 손을 잡으며 우의를 다진다.
그러한 무대 뒤의 모습을 본 나로서는 그들에 대해 호의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받아들이는 젊은이다운 모습 역시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결승전에 올라온 고려대의 월화수목금토론팀은 폭풍말빨을 보여준 이재욱과 신아영 때문에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연세대 토론헌터 역시 강한 팀이었고, 토론주제가 ‘대한민국,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인가’란 사실을 알고 나선 더더욱 월화수목금토론을 응원하게 되었다.
고려대팀이 찬성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사는 이들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한국은 이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다. 한달에 500만원을 벌어들이는 가정에서조차 두 아이를 키우기 힘들 정도로 사교육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회각종지표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가 대학진학률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를 상위계층이 걷어차 버린 사회가 오늘날 대한민국 아니던가? 게다가 이 사실은 이미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의식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인식하는 문제다. 그러나 8강전에서 그랬듯이 월화수목금토론이 ‘스무살의 절망 20대의 책임인가? 사회 책임인가?’에서 20대가 사회와 연대할 것을 외치며, 판정단의 공감을 일으킨 것 같은 멋진 반전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고려대팀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세대 토론헌터팀이 예상대로 교육과 취직 문제를 가지고 지적한 것과 달리, 고려대 월화수목금토론은 용의 개념과 가치를 바꿔서 이야기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이 지적했듯이, 오늘날 분명 대한민국은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가 맞다. 따라서 그걸 인정하고 다른 곳으로 향했어야 했다. 물론 그 와중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재욱의 모습은 빛났다.
지원패널들이 지원사격을 날리는 시간에 이재욱은 홀로 연세대팀의 다수의 패널과 맞서 장렬하게 말로써 혼자 모두를 상대했다. 그러나 8강전 때와 달리 그의 주장은 분명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모두가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분명 고려대팀의 주장대로 크레인위에 올라간 김진숙과 피겨여왕 김연아, 안철수 등등은 비록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영웅’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용’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김진숙 위원장은 나오지 말았어야 할 비극적인 인물이 아니던가? 그녀가 나왔다는 사실자체가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폭력성 그리고 모순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연세대팀이 너무 교육과 취업만 가지고 물고 늘어진 부분 역시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세대팀에서 지적했지만 교육과 취업은 계층이동을 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사실이다. 그런 ‘쉬운 문’조차 막힌 사회에서 다른 문을 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말 중에 하나는 오늘날 우리사회를 두고 연세대팀의 송지은이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사과에 집착한 오덕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란 발언이었다. 이전에도 ‘아인슈타인과 퀴리부인이 만약 한국에 태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란 이야기가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로 비유하니 더욱 공감이 커졌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 1학년만 마치고 중퇴했다. 교수들과 학교측의 배려로 그는 상당기간동안 학점과 상관없이 여러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랬다면 그는 그저 학벌도 변변찮은 인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스티브 잡스는 아집과 독선으로 심지어 애플을 망하기 직전까지 내몰았고 이사회에 의해 사장직에서 쫓겨났고, 그후 차린 넥스트 역시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몰고 갔다. 즉, 잡스는 세 번째 기회(다시 애플로 복귀)를 얻고 나서야 애플을 세계최고의 IT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조차 그렇게 어렵게 성공했는데, 잡스가 한국에 온다면? 그는 애플 같은 회사를 창업하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저 허풍쟁이에 사기꾼으로만 몰려서 평생을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며 비참하게 마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가 말한 것처럼, 결승전 토론주제는 분명히 고려대팀에게 전적으로 불리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다시 처음부터 결승전을 시작할 수 없겠지만 다음번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결승전은 각 팀이 한번씩 자신에게 유리한 토론주제를 선정해서 싸우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제작진이 밝힌 것처럼, 오늘날 20대에게 화두를 던지고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에선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곤 본다. 그리고 두 팀 모두 서로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면서 최선을 다해 대결을 벌인 점은 나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결승전다운 불꽃 튀기는 긴장감은 없었다. 애초에 토론은 연세대팀에게 너무나 유리했고, 고려대팀은 이번만큼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리고 폭풍발언으로 유명했던 신아영이 전반전에 너무나 차분하게 말한 것 역시 안타까웠다. 아마 연세대팀의 조곤조곤한 스타일 때문에 자신의 장끼를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았다.
소설가 황석영이 지적했지만, 두 팀의 기량은 비슷비슷했다. 다만 고려대팀이 주제의 열세를 뒤집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대학토론배틀>은 제 역할은 다했다고 본다.
토너먼트 방식의 대결마다 중요한 화두를 던져 20대 대학생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서로 토론을 벌이면서 서로의 주장에서 빈틈을 찾고, 때론 해결책을 만들어 내고자 고심했다. 또한 그들은 그 과정에서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서 배우고 자신의 부족함 점을 메꾸고자 노력했다.
토론할 때는 적이었지만, 끝나고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들은 분명히 10~20년 후엔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인물들이 될 것이다. 그들이 <대학토론배틀>이 자신들에게 내어준 화두를 고민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사회, 아니 개천이 필요 없는 선진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그런 희망을 품어보기에 훌륭한 프로였다고 본다.
부디 내년 시즌에선 패자부활전을 비롯한 보완책을 마련해서 보다 훌륭한 토론을 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토론팀의 수준이 좀 더 올라가서 보는 재미가 더해지길 역시 바란다. 아울러 천만원대의 등록금에 허리가 휘는 대학생과 학부모를 위해 상금도 좀 더 현실화(?)해주길 바라는 마음 역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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