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국내

조선왕들의 시크릿 가든, 창덕궁의 비원을 가다!

朱雀 2011. 11. 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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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시크릿 가든에 다녀왔다! 현빈과 하지원이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눈 곳은 아니다. 바로 조선왕들의 후원이 있는 창덕궁으로 간 것이었다! 비원이란 말은 원래 일제 강점기에 쓰인 말이란다. 따라서 정확히 따지자면, 후원 또는 금원이 맞는 말이라고 한다. 뭐 용어가 중요하겠는가?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는 ‘시크릿 가든’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겠지?

 

창덕궁의 비원 앞에 서니, 벌써부터 ‘쏼라쏼라’하는 외국인들의 말이 들려온다. 중국인, 일본인, 서구 유럽인까지 다양한 인종들의 우리의 후원을 구경하기 위해 매표소에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필자는 서울시의 대표블로그인 ‘서울마니아’의 초청 덕분에 왔기 때문에 편하게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우릴 반긴 것은 단풍이었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과 고즈넉한 궁궐의 담은 특유의 맛과 함께 입장객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맨 처음 우리를 맞은 것은 부용지와 부용정이었다. 부용지는 장방형의 못 가운데 직경 9m의 원형섬을 조성한 것으로, 부용이란 연꽃을 뜻하는 부용정과 부용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연꽃을 형상화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정조는 혜공궁 홍씨의 환갑을 맞아 이곳에서 신하들과 낚시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낚시대를 드리우고, 이곳의 절경을 하루 종일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은 애련지였다. 숙종 18에 세워졌다는 연못은, ‘연꽃이 피는 연못’답게 아직 연꽃이 우리를 반가주고 있었다. 연꽃과 더불어 여기저기 떨어진 낙엽잎은 가을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더불어 엄마와 함께 낙엽을 연못에 떨어뜨리는 아이의 모습은 누구라도 미소가 피어오르게 할만큼 예뻤다.

 

숙종 18년에 지었다는 애련정은 정자 사방을 평난간으로 둘러 후원의 사계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지어놨다.

 

창덕궁을 감상하다보면, 궁궐답지 않은 수수함에 매료되는데, 그중에서 백미는 바로 이 연경당이라고 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를 따로 둔 사대부 집처럼 만든 것인제,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사대부의 집을 후원에 지어놓은 조선왕의 소박함은 미소를 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돌고 돌아 어느새 옥류천에 들어왔다. 널찍한 바위를 두고 U자형의 홈을 파서 마치 작은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게 만든 이곳은 임금이 신하들과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시대때의 포석정이 저절로 떠오르는 대목 아닌가?

 

‘확실히 우리 조상들은 풍류를 알고 즐길 줄 아는 분들이었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700년이 넘었다는 향나무는 독특한 모양새를 뽐내며 창덕궁에 위치해 있었다. 그 묘한 자태 때문에 셔터를 이리저리 눌러댔으나, 부족한 솜씨로 인해 제대로 찍히지 않아 아쉬웠다.

 

창덕궁의 후원은 이곳저곳 그늘진 곳이 많아 1시간 이상 걸어다니니 어느새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오후 2시쯤 간 탓에, 햇빛이 강렬한 곳과 그늘진 곳이 너무나 강렬한 대비를 이루어서, 필자같은 초보찍사가 후원의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하다보니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거나,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 설명을 들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후원 나들이였다.

 

서울에 살면서도 창덕궁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고,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이 여러모로 아쉬웠다. 그러나 아쉬움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사진실력은 찍다보면 언젠가 늘 것이고, 모르는 것은 공부하면 되지 않겠는가?

 

깊어가는 이 가을에 연인과 데이트를 하거나, 우리 선조들의 멋스러움을 음미하기에 최적의 장소중에 하나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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