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찬란한 유산이 없었던 '찬란한 유산' 스페셜

朱雀 2009. 8. 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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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런 스페셜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매우 좋게 본 드라마의 경우엔 더더욱. 그러나 <찬란한 유산>에 워낙 애정이 많고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 찾아보았다. TV에서 <찬란한 유산> 출연진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이라 여긴 탓도 컸다.

스페셜 방송은 처음부터 불안했다. 진성식품의 회장이자 <찬란한 유산>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 장숙자 역의 반효정 씨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연진 중에서 유지인, 김미숙, 이승기, 한효주, 문채원, 배수빈 그리고 표집사역의 이승형만이 출연했다.

뭐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보기로 했다. 강호동이 MC를 맡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는데, 결국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강호동은 웃기기로 작정한 듯 뭔가 건수가 생기면 오버하고 웃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가 맡은 임무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탐탁치 않았다. 타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스페셜 방송을 본 이유는 <찬란한 유산>의 좋은 기억들을 곰씹고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스페셜 방송은 대부분 엉뚱한 질문과 연기자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파헤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한효주와 문채원에게 둘 중 누가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고, 배수빈이 연기를 위해 스스로 최면을 거는 장면을 왕자병에 걸린 듯 상황을 설정해 곤란케 했으며, 한효주에게 사랑을 고백(?)한 시청자에게 답변을 하게 만들었고, 문채원에게 한효주에 비해 적게 조명을 받은 것이 아닌지 질문 했다.

물론 의미 있는 질문도 있었다. 김미숙에게 이번에 백성희란 악역을 맡은 이유를 물었고, 이승기에겐 <1박2일>과 대박 드라마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매우 난처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런 진지한 질문은 겨우 두 개에 지나지 않았다.

<찬란한 유산> 스페셜 방송은 강호동이 사회를 맡고 엠씨몽과 윤종신 등이 패널로 나왔다는 사실에서 ‘예능’을 표방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찬란한 유산>이 47.1%란 경이적인 시청율을 기록하며 종방했던 것은 단순히 드라마가 재미있거나 출연진이 연기를 잘해서 된 것이 아니다.

<찬란한 유산>은 오늘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한 드라마였다. 부잣집 딸이었던 고은성이 하루 아침에 망해서 길거리에 나앉는 처지는 드라마속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대한민국의 고은성이 실제로 길가로 내몰려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초반에 망나니 연기를 보여준 선우환은 모자람이 없는 요즘 젊은이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풍족하게 자란 이들은 자신밖에 모르고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매우 이기적인 인물이 되어버렸다.

진성식품의 장회장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모습은 불법과 탈세로 자신의 그룹을 경영하는 대다수의 국내 기업가들과 비교된다. 결국 마지막엔 자신의 주식을 전부 사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줘 ‘사원주주제’를 시행케 하는 부분에선, 마치 <홍길동전>과 <허생전>에 나오는 ‘이상향’을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알고 싶었다. 백성희를 연기하면서 김미숙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잣집 딸에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며 동생과 자살을 시도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본의 아니게 사고로 밀어넣고 평생을 한을 간직하고 살아온 삶이 어떠했을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 바라만 보는 박준세를 배수빈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등등.

그러나 스페셜 방송에선 연기자 개인의 소소한 일상이나 다소 곤란한 질문을 던져 웃음을 유발하기에 급급했다. 분명 <찬란한 유산> 스페셜 방송이었으나, 거기에 <찬란한 유산>은 없었다. 한효주와 이승기를 비롯한 출연 연기자들만 있었고 그들을 초대해 시청율을 노린 예능 프로그램만 있을 뿐이었다.

<찬란한 유산> 스페셜이 15.1%의 시청율을 기록하며 동시간대의 <놀러와>와 <미녀들의 수다>를 제쳤다고 SBS방송사는 좋아할지 모르겠으나, 타자 같은 <찬란한 유산> 팬들이 보기엔 입안 가득 씁쓸함만을 남긴 방송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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