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TV비평

국내 공중파 드라마의 한계를 드러낸 ‘유령’

朱雀 2012. 8. 1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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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령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필자 역시 초반엔 미드 못지 않는 박진감 넘치는 화면과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을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이 정도만 유지해주면 미드 못지 않은 명작이 탄생하겠는데?’라고 기대감을 가질 정도였다.

 

그러나 10화를 넘어가면서 반전을 위한 반전은 식상함을 가져왔고, 이연희의 연기력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최종화에서 조차 밀레의 등산복을 광고하는 것도 부족해서, 이연희는 굳이 세수를 하고 (언제 원이 나온지 모르는) SK-II 화장품을 바르고, 신효정은 모전자의 최신형 S 스마트폰으로 범죄현장을 찍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죽은 사람이 최근에 출시된 최신형 스마트폰을 쓰는 이 아이러니함이란) 긴장감을 확실하게 날려주는 기막한 센스를 보여주었다.


 

<유령>의 마지막회는 한국 드라마가 가지는 고질병을 총집합해서 보여줬다고 여겨진다. <유령>의 결말부에서 조현민은 자살로 끝마쳤다. 필자가 이 드라마의 결말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조현민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범의 심판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수십 명의 사람을 죽일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 자신의 손으로 죽인 신효정이 실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뒤늦은 죄책감을 가지고 자살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여태까지 그가 저지른 범죄들을 생각해봤을 때, 이 부분은 매우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회상장면을 보면 그가 신효정의 임신을 의심하고 임신테스트기로 진단한 식의 설정이 등장한다. 만약 신효정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는 범죄를 멈추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복수심에 불타는 그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위에서 지적했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역시 <유령>의 치명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조현민은 국내 기업가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인터넷에 정통한 인물이란 사실을 빼놓으면, 그는 정관계 로비를 했고 엄청난 금품을 뿌렸고, 비자금을 챙기고 정관계 고위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이런 리스트가 공개되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수사가 이루어지고, 조현민은 물론이요, 이와 관련된 인물들은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물론 조현민이 극중 대사처럼 큰 사건 하나 터지면 모든 것이 잊혀질 수 있다’.

 

우린 이미 현실에서 그런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만약 우리가 그런 현실을 드라마로 리바이벌하려고 했다면,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는 현실에서 한발자국 나아가서 조현민을 법정에 세우고, 그가 마찬가지로 비리를 저지른 사회고위층 인사들이 하나씩 소환되어서 어떻게든 심판을 받아야만 마땅하다! 그러나 누가 그런 심판을 받았는가?

 

조현민은 법정에 세울 수가 없어서, 김우현의 꼼수(?)로 스스로 자살하는 방법을 택하고 말았다. 드라마적으로 괜찮은 결말일 수 있으나, 오늘날 우리가 사회에서 원하는 정의를 생각해 봤을 때 이는 극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다.

 

<유령>에서 신경수 수사국장 정도가 어느 정도 죄의 댓가를 받았지만, 그 역시 권혁주 팀장에 협박에 못 이겨서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는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이게 뭔가? 정말 찝찝하기 이를 데 없는 결말이 아닌가?

 

물론 안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 검사, 기업가들이 겨우 리스트 파문 때문에 실제로 법의 심판을 받을 리는 없다는 것을. 그러나, 이건 정말 아니지 않는가?

 

<유령>의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운 것은 20부작이란 분량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비록 케이블이긴 하지만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은 <특수사건전담반 TEN>이나 <신의 퀴즈 3>의 경우 각각 10부작과 12부작으로 길이가 짧은 편이다.

 

이에 반해 <유령>20부작이나 된다. 게다가 이들 케이블 드라마는 일주일에 한편씩 방영되는 것에 비해 <유령>은 수목드라마로 일주일에 2편씩 방송되었다.

 

여기에는 광고료와 오늘날 공중파에선 관성화가 되어버린 잦은 방영 탓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편성은 제작진에게 무리한 부담이 되어 돌아올 수 밖에 없고 완성도를 낮추는 결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사전제작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편수를 적당한 수준에서 낮춰 방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소위 한류라는 것이 지속되기 위해선 품질이 따라줘야 하는데, <유령>을 보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만 더해간다. 이렇게 간만에 나온 괜찮은 작품조차 초반의 완성도를 유지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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