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TV비평

공중파의 위기를 불러올 ‘응답하라 1997’

朱雀 2012. 9.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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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밤 11시에 방송된 <응답하라 1997>은 무려 5.52%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방송가의 놀라운 화제를 뿌리고 있다. 공중파에서 5%라면 코웃음이 나올 시청률이겠지만, 케이블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종편들이 1%도 안 되는 시청률도 소수점 세 자리까지 따지는 상황은 공중파를 제외한 방송사들이 시청률이 얼마나 안나오는 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틀면 전국 어디서나 나오는 공중파와 달리 케이블은 가입자가 직접 신청해야만 볼 수 있다. 따라서 공중파와 케이블은 매체상 체급 자체가 달라서 게임이 성립되질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케이블이 공중파를 이긴 대형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슈퍼스타 K 2>! 시청률 18%를 넘기면서 기염을 토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전국을 오디션에 열광하게 만든 <슈스케 2> 이후로 공중파에서 앞다투어 오디션프로를 만든 것은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일 것이다. 허나 시청자가 보기에 더욱 가소로운 것은 이후 공중파들이 만든 오디션 프로의 포맷이 <슈스케>와 상당 부분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공중파가 얼마나 컨텐츠에 허덕이고 있는지 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측면이라 하겠다. 공중파는 시청률에서 아무래도 케이블보다 높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광고료 집행에 있어서도 훨씬 높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현재 상황을 계속 고수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TV에서 인기있는 드라마라면 평균 40%를 넘어서 50% 심지어 70%를 기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현재엔 30%만 넘어도 대단한 일이다. 왜 그렇게 바뀌었을까? 많은 이들은 변화된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예전에는 일반 시민들이 즐길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TV를 녹화해서 보는 것은 갑부집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본방사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엔 즐길 것이 얼마나 많은가? 영화와 뮤지컬을 비롯해서 각종 공연까지. 게다가 TV방송을 본방사수할 의미가 사라졌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깔린 초고속인터넷 망으로 필요할때는 얼마든지 다운받아서 PC는 물론이요, 스마트폰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된 환경은 공중파의 시청률을 깎아먹었지만, 동시에 케이블에겐 커다란 도약의 기회를 선사해 주었다. 기존 TV환경이었다면, 케이블이 공중파를 뛰어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인구가 무려 2천만이 넘어가는 현상황에선 케이블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 왜냐하면 그 스마트폰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컨텐츠를 제작하면 되기 때문이다.

 

공중파는 아무래도 모든 이가 볼 수 있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 우선 심의를 들 수 있고, 제작여건상 많은 참여가 있다. 제작비 마련과 인지도를 위해 아이돌이나 특정 연기인을 섭외할 수 밖에 없어진다. 인기가 있으면 인기가 있다고 예정에 없던 연장방송으로 인해 완성도가 떨어지고, 인기가 없으면 조기종영이 되어 그나마 완성도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케이블은 심의에서 자유롭다. 또한 모든 연령대를 아우를 컨텐츠를 고민해야 되는 공중파와 달리 특정 시청자층을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제작환경상 간섭이 적기 때문에 PD를 비롯한 제작진은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일례로 엄청난 호평을 얻으며 종영된 <인현왕후의 남자>의 경우,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게 인정된 작품이다. 만약 <인현왕후의 남자>가 공중파에서 편성되었다면? 지현우와 유인나가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인기 있는 연예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공중파에서 인기를 끌었다면 연장되어서 재미와 흥미가 떨어졌을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의 경우엔 케이블 답게 참신한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다. 연예인이 아닌 연예인을 좋아한 팬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 자체가 혁신적이었다. 무엇보다 혁신적인 것은 기존의 드라마를 만들던 제작진이 아니라 예능을 제작하던 이들이 지휘봉을 휘두른 것이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각각 <남자의 자격>과 <1박 2일>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접근법은 이전의 드라마 제작진들과 많이 달랐다. 만약 공중파였다면? 이들이 화요일 밤 11시대를 방송하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은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15화까지 방송된 <응답하라 1997>1997년과 2012년을 넘나들면서 웃음과 감동과 재미를 주었다. 특히 15화에선 과거이야기는 일체 나오지 않으면서 성시원을 두고 윤태웅과 윤윤제 형제가 벌이는 삼각관계를 그리는 대목은 기존의 드라마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어떤 면에서 더욱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성시원네 제사에서 작은 할아버지와 형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던 장면은, 윤태웅이 동생 윤윤제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형이 미안하다라는 감격스런 문자를 보내면서 엄청난 반전을 이뤄냈다.

 

공중파는 오늘날 스스로 위기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위기를 해쳐나오기 위한 노력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반면 tvN과 엠넷을 비롯한 CJ  E&M의 드라마와 방송 프로들은 참신한 시도와 높은 완성도로 시청자에게 어필하며 무서운 기세로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시장을 잠식해나가고 있다.

 


만약 공중파였다면 무명에 가까운 정은지가 여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서인국이
주연을 맡을 수 있었을까? <응답하라 199>는 기획과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케이블
이었기에 가능한 조합이었다!



<슈스케>로 공중파에 한방 먹인 CJ E&M, 이번엔 <응답하라 1997>로 제대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슈스케>보다 <응답하라 1997>의 의미가 더욱 큰 것은 그것은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드라마공화국이다! 평일아침에는 아침 드라마, 저녁에는 드라마, 주말에도 드라마. 공중파에서만 편성되는 드라마가 일주일에만 수 십편이 넘어간다.

 

 

따라서 그 시장에 케이블에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이목이 집중되는 드라마를 내놓았다는 사실은 공중파에겐 <슈스케>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위기를 뜻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 케이블이 공중파를 꺾거나 능가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tvN의 일일드라마 108부작 <노란복수초>는 약 6%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여성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후속으로 방송되는 <유리가면> 역시 괜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기에 앞으로 일일드라마 시장도 공중파가 바짝 긴장해야 될 대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추세라면 머지 않는 사이에 공중파가 쇠락하는 추세가 더욱 빨리지고 tvN을 비롯한 케이블 명가들의 명성이 드높아지면서, 수 년내로 시장이 재편성될 가능성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응답하라 1997><슈스케>처럼 그런 역사의 분기점을 이룬 작품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여겨진다.

 

공중파가 케이블 못지 않게 혁신적인 시도와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현재의 독보적인 위치를 잃는 것은 단순한 시간문제라고 여겨진다. 공중파의 분발을 촉구하고, 아울러 tvN의 시도와 성과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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