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왜 사랑이 위기인가? ‘청담동 앨리스’

朱雀 2012. 12.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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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에서 한세경은 자신이 김비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이 주최하는 파티를 준비하면서, 김비서와 무척이나 가까워지고, 급기야 두 사람은 키스직전까지 간다.

 

! 여기서 <청담동 앨리스> 제작진은 두 가지 패러독스를 시청자에게 보여준다. 우선 한세경을 살펴보자! 그녀는 지난 6년간 사랑했던 남자를 돈 때문에 잃은 상황이다!

 

소인찬은 암에 걸린 어머니의 입원비와 그동안의 학자금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빚 때문에 자신이 일한 아르테미스사에서 불량품을 빼돌려서 유통시키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세경이 동분서주한 덕분에 감옥에 갈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한세경이 차승조에게 건넨 통장을 자신의 빚을 갚는 데 쓰고 브라질로 도망가고 말았다.

 

물론 상황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한세경에겐 이건 끔찍한 경험이다. 만약 소인찬이 차라리 다른 여자가 생겨서 배신했다면, 미워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인찬은 돈 문제 때문에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미워하고 싶어도 상황이 너무나 이해되기 때문에 미워할 수 없다! 그래서 소인찬은 한세경에게 트라우마 그 자체다!

 

?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질 수 없는 상황.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에게 접근해서 그를 통해 상류층에 편입하고 싶어하는 것은, 정직한 땀과 노력으론 도저히 그녀가 원하는 디자이너의 꿈과 가난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 없는 김비서로 알고 있는 차승조를 보면서 자신의 심장이 자꾸만 뛰는 상황은 그저 철없는 행동에 불과하다. 게다가 김비서 역시 빚까지 있는 상황이란 사실은, 김비서를 볼때마다 한세경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소인찬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아픈 상처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차승조는 다른 상황이다! 그는 예전에 서윤주를 사랑했다가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일 때문에 정신병에 걸려버렸다. 그는 그 이후로 여자를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세경을 보고 자꾸만 뛰는 그의 가슴은 그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서 치유되고 있다는 신호다!

 

한세경과 차승조의 상황이 대비되는 것은 그들의 경제적 상황 때문이다! 한세경은 돈 때문에 전 남자친구인 소인찬을 잃었다. 아버지의 빵집이 망하고, 어머니가 산 아파트가 날라간 상황에서 그녀는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이란 그녀에겐 철없는 장난이나 사치에 불과하다.

 

반면 차승조는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불편없는 부잣집 도령이다! 그는 비록 로열그룹 회장인 아버지 차일남에게 버림을 받긴 했지만, 조금만 고개를 숙였다면 얼마든지 다시 예전 위치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과감하게 그 길을 포기하고 기꺼이 길거리에서 노숙하면서 절치부심하는 시간을 보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는 성공해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에겐 사실 회사의 매출을 올리는 것도,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그저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거나 재밌게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차승조에게 돈이란 원래 있었던 것이고, 그 자체가 그다지 절실하지 않다. -애초에 '돈'이 목적인 삶이 될 수 없다. 왜 태어날때부터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으니까. 잠시 돈이 없어서 불편했지만, 그것 때문에 끔찍한 상황까지 몰려본 적은 없다-

 

즉 차승조가 한세경을 보면서 떨리는 자신의 심장박동을 느끼고 설레여 하면서 그녀에게 신경 쓸 수 있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따져보자! 한세경에게 비싼 파티복을 마련해주고, 자신의 개인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가 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청담동 앨리스>에서 씁쓸한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오늘날 삼포세대에게 사랑조차 사치에 지나지 않다라는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상류층의 사랑이 연애를 하면서 자유롭게 이루어지진 않는다. 타미홍이란 가상의 인물이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연결해주는 마담 뚜의 역할을 하며, 재벌들은 서로 혼맥을 통해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더욱 강화해간다.

 

이를테면 지앤의류의 오너일가의 차녀 신인화는 로열그룹의 후계자로 떠오르는 차승조와 혼인을 해서, 자신의 야심을 펼치고자 한다. 이건 로열그룹 회장인 차일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똑똑하고 사업적 감각이 뛰어난 신인화를 내심 몹시 탐낸다. 그녀를 통해 자신의 백화점 사업을 더욱 확장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 현실이었다면? 차승조는 별 다른 고민없이 신인화를 선택하고 그들은 혼인을 통해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더욱 강화시키면서 부를 더욱 크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세경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해주고 있는 서윤주는 세 번의 위기를 말했다. 그 세 번의 위기는 모두 사랑이었음이 8화를 통해 밝혀졌다! 왜 사랑이 위기인가?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감정이고, 모든 것을 초월해서 두 사람만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상류층에 편입하고자 하는 한세경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행동이다! 그러나 <청담동 앨리스>의 패러독스는 여기서 시작된다!

 

한세경에게 다가온 두 번째 사랑은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재벌남이다! 그것도 로열그룹의 후계자이자, 아르테미스 코리아의 회장으로 그야말로 대단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차승조의 거짓말 때문에 한세경은 그를 돈 없는 김비서로 알고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려 한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에 있는가? 한세경에게 비법을 전수해주는 스승격인 서윤주 역시 첫사랑 격인 차승조를 보낸 탓에 지옥에 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상류층에 편입하기 위해 차일남과 했던 모종의 거래 덕분에 지앤의류 사장님의 사모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버렸던 차승조는 아르테미스 코리아의 회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고, 그것도 부족해서 지앤의류 오너일가에선 그를 둘째인 신인화의 남편감으로 점찍고 있다.

 

자신의 과거가 들통나면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인 서윤주로선 모든 상황이 지옥이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서윤주가 프랑스에서 차승조를 버리지 않고 함께 했다면? 아마도 힘들지만 그녀는 상류층에 편입했을 가능성이 꽤 높다.

 

그러나 그녀는 확실하게 상류층에 들어가기 위해 차승조라는 카드를 버렸다! 그리고 그건 계속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세경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상대했던 김비서가 실은 차승조라는 사실을 몰랐다.

 

8화 마지막에서야 알게 되지만, 그녀가 의도적으로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에게 접근하고자 했던 사실을 타미홍이 어렴풋하게 알게 된 상황이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스승인 서윤주와 마찬가지로 머리위에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청담동 앨리스>의 서윤주와 한세경은 모두 한때 열렬한 사랑을 했던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의 벽앞에 무너지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사랑보다 돈을 택했다.

 

허나 흥미롭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졌던 차승조라는 패가 사실은 행복의 파랑새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청담동 앨리스>에서 분명히 순수한 사랑은 바보같거나 어리석은 식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8화까지 지나오는 과정을 보면, 순수한 사랑이었다면 한세경과 서윤주가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사랑은 우리에게 짐이 되고 위기만 가져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구원하는가? 어떤 의미에선 참으로 진부하고 유치한 질문이지만, 동시에 한번쯤 곱씹어보게 하는 질문을 <청담동 앨리스>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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