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단순한 SF액션 영화로 볼 것인가? ‘더 울버린’

朱雀 2013. 7.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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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른 생각없이 즐기기 위해 보러 간 더 울버린그러나 보고 나온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해서 고민케 한다. ‘더 울버린의 액션은 화려하다! 1945년 일본 나가사키 원폭이 떨어진 순간, 한 일본군 장교를 구해준 울버린은 그의 초청으로 현재의 일본에 오게 된다. 그리고 그의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매우 매력적인 제안(?)을 받게 된다.

 

울버린은 엑스맨 멤버 가운데서 가장 참을성 없고 쉽게 흥분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매우 섬세한(?) 인물이다. 그는 진 그레이를 사랑했지만, 엑스맨의 리더이자 연적인 사이클롭스에게 빼았긴(?) 것도 부족해서 결국 피닉스로 폭주한 진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울버린의 삶은 그 자신에겐 고통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떠나보냈고, 심지어 전편에선 자신의 친아버지(모르고 그랬지만)마저 살해했다. 게다가 그를 무적(?)으로 만들어준 아다만티움은 그를 전쟁기계로 만들기 위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밀실험을 통해 주입되었고, 기억마저 지워져버렸다.

 

따라서 울버린의 삶은 그 자신에게는 비극적이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야시다 회장은 어떠한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야시다는 자결을 해야할 순간이 다가오자 망설인다.

 

그리고 울버린에 의해 살아나곤 그를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게 된다. ? 자신은 철문으로 후폭풍을 막아주고, 그는 온몸으로 후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끔찍한 화상을 입은 그의 모습은 이내 순식간에 재생해서 다시 온전한 모습을 찾는다. 만약 야시다가 종교가 없다면, 그 순간 울버린을 신으로 섬기게 되지 않았을까?

 

여기서 뜬금없이 질문 하나를 던져보겠다! 인간은 왜 자식을 낳을까? -넌센스퀴즈는 아니다- 간단하다. 인간 개개인은 유한한 삶을 살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후손을 통해서 이어가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신의 자식과 손자를 통해서 유한한 삶을 영속적인 삶으로 변화시킨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죽고 싶어하는 울버린과 늙어서 죽음을 앞두고도 더 살고 싶어하는 야시다의 모습을 대조해서 보여준다. 사실 울버린과 같은 존재는 실존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탄생을 맞이한 존재가 끝이 없다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린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고,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울버린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울버린의 삶은 끔찍하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랑했던 진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다.

 

그리고 밤마다 죄책감 때문에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그녀가 불길한 예언만 하는 악몽을 꾼다. 야시다 회장은 목적도 의미도 없는 그의 삶을 로닌이라며, ‘주인 없는 사무라이의 삶에 비유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건 맞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그를 위대하게 만들 임무나 모험이 없다면, 그저 힘센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영웅이 영웅이 되기 위해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통 인간은 해낼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해야만 한다.

 

<더 울버린>에서 울버린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야시다 회장의 손녀 마리코를 구하고자 애쓴다.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알 수 없는 적들을 맞이해서, 무슨 이유에선가 갑자기 자기치유능력이 사라져서 보통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고 상처가 잘 낫지 않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겠지만) 마리코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누군가는 잘 먹고 잘 사는 게인생의 목표라고 하겠지만, 우린 그런 단순한 답변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더 울버린>은 블록버스터 영화답지 않게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물론 명쾌한 답변을 주진 않는다. 울버린 스스로는 죽음까지 직면했다가 죽음을 거부한다. 명쾌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아마 그는 마리코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전사로서 자신의 힘과 능력을 다른 사람을 쓰는 데서 이유를 찾지 않았나 싶다.

 

<더 울버린>SF 액션영화로서 그냥 즐겨도 무방하다. 술집과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액션, 고속열차 위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대결, 실버사무라이와 울버린의 대결 등은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볼거리를 확실하게 관객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야생곰처럼 생각할 꺼리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영화 초반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이던 야생곰은 울버린을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들은 재미로 곰을 사냥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독을 묻힌 화살을 이용해서 곰이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어가다 미쳐서 날뛰게끔 만든다.

 

울버린이 곰의 죽음에 분노하는 것을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야생곰에 대한 인간들의 적의가 울버린을 향한 인간사회의 시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더 울버린>의 주무대는 일본이다. 따라서 울버린은 외국인으로서 일본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그것도 부족해서 울버린을 죽이고자 많은 이들이 끝도 없는 공격을 감행한다.

 

울버린이 수십번의 칼을 맞고 총알을 맞는 모습은 그가 죽지 않는 초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아는 관객에게도 끔직하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거기서 우린 죽음 못지 않은 고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치유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의 대다수의 인간들에게 괴물로 낙인찍힐 뿐이다. 영화 후반부에 닌자에 의해 수십발의 화살을 맞는 그의 모습은 사냥 당해서 상처입은 야생곰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친다.-특히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더 울버린>은 분명히 SF액션영화이며 블록버스터다. 앞서 말한대로 생각없이 즐기고자 한다면 그렇게 즐기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던지는 고통스런 영원의 삶과 행복한 평범한 삶 가운데 선택은?’ ‘인간은 왜 영원한 삶을 꿈꾸는가?’ ‘인간에게 자식이란 어떤 존재인가?’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등등의 물음을 음미한다면, 좀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런 생각없이 즐기러 갔다가 2천년이 넘도록 우리 인류를 고민케 한 철학적 난제들을 관객에게 던지는 (물론 심오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더 울버린>은 할리우드 SF액션 영화의 진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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