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송강호의 열연도 살려내지 못한 ‘관상’

朱雀 2013. 9. 12.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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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조선 제일의 관상쟁이로 등장하고, 김종서역에 백윤식, 수양대군역에 이정재, 설명이 필요 없는 김혜수, 납득이에서 이젠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은 조정석, 요즘대세 이종석까지. <관상>은 소재와 출연진만으로도 200% 기대하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를 감상한 지금의 생각은? 글쎄.

 

*영화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아직 감상하지 못한 분들은 패쓰하셔도 무방합니다.

 


<관상>은 관상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하다. 우리처럼 관상에 사주까지 골고루 보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게다가 어느 기업 회장님께선 신입사원을 뽑을 때 관상쟁이를 활용(?)했다고 하니, 그것을 영화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참으로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관상>은 꽤 영리한 영화다. 우선 주인공 내경의 송강호를 능청스럽게 활용한다. 내경은 역적집안의 자제이기 때문에 벼슬길을 포기하고 소일거리로 관상을 배웠다가 그것 때문에 연홍(김혜수)의 눈에 띄어 한양에 올라와서 판을 깔게 되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가 관상만으로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시대의 두 거두인 김종서와 대면하면서 시대의 앞날을 예견하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슈퍼카처럼 영화는 거침이 없다.

 

마침내 조선 제일의 관상쟁이가 되어 문종 앞에 서서 관상만으로 역적을 가려달라는 대목에 이르면 영화는 그야말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그가 신숙주, 안평대군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시대의 인물들에 대한 평을 하는 대목에선 귀를 쫑긋거리고 듣지 않을 수 없게끔 마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영화의 매력을 딱 거거까지다.

 

조선시대의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는 계유정난에 관한 대목에 들어서면 참으로 영화는 난감해지고 갈팡질팡한다. 물론 수양대군은 어짜피 왕이 될 사람이고, 송강호는 김종서의 곁에 선 순간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대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관상은 결국 재미로 본다는 것? 아니면 시대의 도도한 흐름 앞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는 것? <관상>을 보면서 관객의 입장에서 답답한 것은 도대체 주제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광해>는 비록 안전한 선택을 많이 하긴 했지만,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진부하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없는 화두를 끝까지 지켜냈다. 이에 반해 <관상>은 중반 이후 긴장감은 사라지고 붕떠버린다.

 

<관상>은 가장 큰 단점은 송강호가 열연한 내경 외에는 등장인물들이 단편적인 캐릭터라는 부분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 수양대군은 왜 왕이 되고 싶어했는가? 영화상에선 그저 왕이 되고 싶다라는 야망만 드러낼 뿐, 거기엔 친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삼촌의 고뇌나 왕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 따윈 애초에 보이질 않는다.

 

마치 시대를 뛰어넘어 김종서가 바로 우리 눈앞에 현신한 듯한 백윤식의 신들린 연기는, 그러나 김종서 역시 왜 그렇게 단종을 지키려 하는지 작품이 그려내질 못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또한 수양대군과 김종서 측에서 내경을 모두 욕심내면서도 왜 수양대군 측에선 그를 제거하지 않는 것인지 내내 난감하게 만든다. 물론 <관상>은 나름대론 노력한다. 수양대군의 숨겨진 책사 한명회를 찾기 위해 필사적인 내경의 모습이나, 계유정난을 앞두고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는 수양대군의 광기어린 모습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관상>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이미 알려진 역사를 흥미롭게 포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린 이미 계유정난의 끝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상력이 더해진 영화에선 뭔가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인 되었든지 간에.

 

하다못해 <광해>처럼 사실 광해역할을 대신한 가짜왕이 있었다라는 식으로. <관상>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설명을 관객이 납득하지 못한다. ? 너무나 단편적으로 인물들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수양대군의 마지막 행동이 그러하다-.

 

<관상>은 앞서 지적한 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를 끌어들여 계유정난을 그렸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는 딱 거기까지다! 계유정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나 용감한 해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영화는 중반이후 송강호의 눈물겨운 열연(남우주연상을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잃어버린다. 분명히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도달했음에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질 못한다.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만한 이야기의 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관상>은 그런 면에서 관객의 눈길을 끌어냈으나, 요샛말로 화학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우리 영화에서 잘 만들어진 작품에 쓰이는 웰메이드 사극이란 말을 광고에선 운운하고 있으나, 아무리 요리조리 뜯어봐도 ‘so so’라는 말밖엔 평할 말이 없다. 이렇게 보기 드문 조합으로 배우를 구성하고, ‘관상이란 제법 흥미로운 소재에 계유정난까지 끌어뜰였음에도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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